"학교에서 하는 일 하나하나를 진영 대결로 문제 제기하면 학교는 교육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조용식 울산시교육감은 영화 <암살자(들)> 단체관람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학교의 자율적인 판단이 외부 압력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육청이 관람 취소를 압박했다는 주장에도 "확인해보니 전혀 그런 사실은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본격화된 UNIST 부설 AI과학영재학교에도 무조건적인 유치론과는 거리를 뒀다. 영재교육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과학고 위에 또 영재학교가 생기는 구조가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고민과 함께 전체 학생에 대한 교육재정의 형평성을 짚었다.
조 교육감은 울산시교육청 교육감 집무실에서 <프레시안>과 만나 교육공동체 신뢰 회복과 기초학력, 교권 보호, AI·미래교육부터 최근 울산교육을 둘러싼 현안까지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취임 이후 울산교육청은 전체 사업 1171개를 전수 점검해 유사·중복·형식적 사업 등 776건을 폐지하거나 정비했다. '오늘이 행복한 울산교육'을 비전으로 47개 공약과 155개 세부사업도 확정했다.
인터뷰 이후 AI과학영재학교 추진은 실제 공모 단계로 넘어갔다. 울산교육청과 UNIST는 울산미용예술고를 후보 학교로 정해 지난 1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과학기술원 부설 영재학교 지정·전환 공모'에 참여했다. 가칭 '울산AI과학영재학교'는 2031년 개교를 목표로 신입생 60명, 4학급 규모로 출발하며 지역인재 30%인 18명을 울산 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안이 담겼다. 정부는 11월 평가 등을 거쳐 12월 최종 지정할 예정이다.
다음은 조 교육감과의 일문일답.
프레시안 : 취임 100일을 지났다.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먼저 체감하길 바라는 변화는 무엇인가.
조용식 : 교육공동체의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교 현장을 다니다 보면 같은 사안을 놓고도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의 입장과 생각이 상당히 다르다.
교육청이 정책을 일방적으로 정해서 학교에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함께 해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악성 민원, 교육 주체 간 갈등 등 학교가 겪는 여러 문제도 결국 서로에 대한 신뢰가 약해진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입장과 역할을 존중하고 대화와 협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를 학교에 정착시키고 싶다.
인터뷰 이후 조 교육감이 강조한 '교육공동체 신뢰 회복'도 후속 실행에 들어갔다. 울산교육청은 지난 13일 학생·학부모·교직원과 시민사회 등 400명으로 구성된 '울산 교육공동체 신뢰 회복 범시민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조 교육감을 단장으로 한 추진단은 토론회와 실천 활동 등을 통해 학교와 지역사회에 존중과 소통 문화를 확산한다는 계획이다.
프레시안 : 교권 보호와 학생의 권리를 함께 지켜야 한다는 요구가 크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원칙은 무엇인가.
조용식 :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을 보호하는 것과 학생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다. 교사의 교육활동이 존중받아야 학생의 학습권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다.
악성 민원이나 학교폭력처럼 학교가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학교와 교사가 감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 교육청과 교육지원청이 더 책임져야 할 부분이다.
교사가 악성 민원이나 부당한 교권 침해에 대한 걱정 없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학교폭력이나 갈등이 발생했을 때도 처벌에만 머무르지 않고 관계를 회복하고 서로의 책임을 배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학생 역시 학습뿐 아니라 심리·정서와 복지 등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필요한 지원을 제때 연결하고 학교와 교사가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하는 체계를 만들어가겠다.
프레시안 : 기초학력과 울산형 공교육 모델인 '외솔교육'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두 정책은 어떻게 연결되나.
조용식 : 기초학력은 모든 배움의 출발점이다. 특히 초등학교 1·2학년 시기의 문해력과 수리력은 이후 학습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에 학습 격차가 커지기 전에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정적 시기 책임 보장제'를 추진하고 초등학교 1·2학년 전체 학급을 1수업 2교사제 지원 대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난독이나 경계선 지능 등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는 학생도 조기에 발견해 맞춤형으로 지원하려 한다.
외솔교육은 단순히 읽고 쓰는 교육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학생이 기초학력을 갖추는 데서 출발해 깊이 읽고 분명하게 표현하며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힘까지 키우는 것이 외솔교육이 지향하는 울산형 공교육이다.
프레시안 : 교육재정 여건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래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는 분야는 무엇인가.
조용식 : 학생의 배움과 성장, 안전과 복지에 직접 연결되는 부분은 지켜야 한다. 학령인구가 줄어든다고 교육에 필요한 비용까지 똑같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신도시에는 학교를 새로 지어야 하고 농어촌에서는 학생 수가 적더라도 학교를 유지해야 한다. 노후 학교시설 개선에도 재정이 필요하다.
기초학력과 학생 마음건강, 위기학생 지원, 특수교육과 교육복지처럼 도움이 더 필요한 학생을 위한 지원도 중요하다.
교육재정 여건이 어려워질수록 무엇을 먼저 지키고 어디에 우선 투자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중복되거나 효과가 낮은 사업은 조정해야겠지만 재정이 줄어든다고 학생들에게 직접 돌아가는 교육 기회와 기본적인 교육복지부터 줄여서는 안 된다.
조 교육감은 인터뷰 이후인 지난 13일에도 교원 정원 감축과 지방교육재정 축소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울산의 2027학년도 공립 중등교사 선발 인원이 전년도보다 31% 줄었고 정부안대로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축소될 경우 울산의 보통교부금이 기존 추계보다 7562억원 감소할 수 있다는 게 교육청의 분석이다. 조 교육감은 당시 학생 수 감소만을 기준으로 교육재정을 줄이는 것은 교육현장의 지출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프레시안 : AI와 산업 변화가 빠르다. 울산이 앞으로 키워야 할 인재는 어떤 모습이라고 보나.
조용식 : AI가 손쉽게 답을 만들어주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질문하고 그 답이 맞는지 검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 AI가 만들어낸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울산의 산업도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에서 미래차와 이차전지 등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직업계고의 학과와 교육과정도 산업 변화에 맞춰 재구조화하고 기업과 대학,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학생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도 울산에서 충분히 좋은 교육을 받고 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프레시안 : <암살자(들)> 단체관람을 둘러싼 논란이 울산 학교에서도 있었다. 이 사안을 어떻게 봤나.
지난 15일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은 이어졌다. <프레시안> 취재진이 영화제 현장을 취재하는 동안 관련 플래카드가 등장했고, 일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12년 전 <다이빙벨> 상영 논란을 떠올리는 이야기도 나왔다.
울산에서는 한 고교가 학생 투표를 거쳐 <암살자(들)> 단체관람을 추진했다가 논란 끝에 취소했고, 이 문제는 국회 교육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교육부가 개별 학교의 영화 관람에 일일이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조용식 : 학교에서 영화를 단체로 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문제에 교육청이나 정치인, 학부모단체 등 외부에서 부당하게 압력을 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암살자(들)>만의 문제도 아니다. 반대되는 정치적·역사적 관점을 가진 영화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불편하게 느끼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하는 일 하나하나를 진영 대결로 문제 제기하면 학교는 교육을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이번에도 교육청이 압력을 넣어 관람이 취소됐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확인해보니 그런 사실은 전혀 없었다. 다만 국회에서 자료 요구가 오고 이를 학교에 전달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부담을 느꼈을 수는 있다고 본다.
민감한 문제일수록 학교의 자율적이고 자치적인 결정이 제대로 보호될 수 있도록 교육청도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학교 안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면 토론하고 갈등하는 과정에서도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을 학교를 흔드는 방식으로 가면 학교는 교육을 못 한다.
프레시안 : AI과학영재학교 유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서열화와 교육재정 형평성에는 고민이 있는 것으로 안다. 어떤 입장인가.
조용식 : 처음부터 입장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서열화 체계를 더 심화시키는 또 다른 학교를 만드는 것에는 반대한다. 기존 과학고를 영재학교로 전환하는 방식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다.
다만 통합되는 학교가 있고 그 부지와 건물을 활용해 과학기술 분야의 영재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라면 열어놓고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영재성을 가진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도 있다. 그렇다고 전국적으로 영재학교가 계속 만들어져 과학고 위에 다시 영재학교가 생기는 구조가 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교육감 입장에서는 전체 학생과의 형평성도 함께 봐야 한다.
지역인재 비율도 현재 협의된 것은 30%다. 지역인재 비율을 높이면 울산교육 재정의 부담 역시 커지는 구조다. 지역 학생을 많이 선발하는 것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할 교육재정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조 교육감이 인터뷰 당시 밝힌 지역인재 30% 구상은 이후 공모계획에도 반영됐다. 울산교육청이 마련한 계획에는 신입생 60명 가운데 18명을 울산지역 학생으로 선발하는 방안이 담겼다.
프레시안 : 지난 추경에서는 일부 사업 예산이 삭감됐다. 앞으로 시의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가져갈 생각인가.
조용식 : 교육감은 정당 소속이 아니지만 저를 이른바 진보 진영으로 평가하는 시각이 있고 현재 시의회의 구성도 있기 때문에 더 많은 협력 노력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까지 큰 문제는 없다. 지난 추경에서 예산이 삭감된 부분은 우리도 조금 더 면밀하게 계획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시의회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시의원들은 결국 시민의 대표다. 지적할 것은 지적받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 한다. 본예산에서는 계획을 더 잘 짜고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임기를 마쳤을 때 시민들이 '이것 하나만큼은 달라졌다'고 평가해주길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조용식 : 학교가 지역사회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학령인구는 줄고 있지만 학교가 가진 공간과 역할의 가치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운동장과 체육시설, 도서관, 유휴공간 등을 지역사회와 공유하는 '울산교육누리'를 추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학교를 단순히 학생들이 수업받는 공간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교육·문화·체육·평생학습이 이뤄지는 지역의 거점으로 만들고 싶다. 학교와 지역사회가 더 가까이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배움과 성장을 함께 책임지는 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겠다.
임기가 끝났을 때 울산 곳곳의 학교가 지역의 중심이 되고 시민들이 학교를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현장의 작은 목소리도 놓치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시민과 끊임없이 소통하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내는 오늘 하루가 행복하고 그 하루하루가 더 나은 미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
조 교육감의 답변에서 일관되게 드러난 것은 '학교가 스스로 판단하고 교육할 수 있는 영역은 존중하되, 개별 학교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는 교육청이 더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 이었다.
<암살자(들)> 논란에서는 정치적 진영 대결이 학교 안의 교육활동까지 흔드는 데 선을 그었다. AI과학영재학교에는 지역의 새로운 교육 기회를 열어두면서도 과학고 위에 또 다른 서열이 만들어질 가능성과 소수 학생에게 교육재정이 집중되는 형평성 문제까지 짚었다.
취임 100일을 넘어선 조 교육감에게 이제 남은 것은 이 같은 원칙을 학교가 체감하는 변화로 옮기는 일이다. 교육공동체 신뢰 회복과 기초학력, 교권 보호, 미래교육, 학교의 지역사회 개방까지 내놓은 구상이 학생·학부모·교직원의 일상에서 어떻게 구현될지가 '조용식표 울산교육'을 보여줄 잣대가 될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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