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플라스틱 오염 문제로 유럽에서는 단계적 폐지가 확정된 인조잔디의 인공(합성 고분자 화합물) 충진재가 국내에서는 사용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가 노후 인조잔디의 실태와 충진재 종류의 현황 등을 전면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더불어민주당 박해철 의원실이 기후에너지환경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서 받은 인조잔디 충진재 현황 답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국내 전체 인조잔디 운동장 중 합성고무 등 인공 충진재가 쓰인 시설이 몇 곳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부처는 한 곳도 없었다.
전국 인조잔디 운동장 현황에 대해 기후부는 "학교는 교육부, 공공체육시설은 문체부 소관"이라고만 박 의원실에 답했다. 교육부는 "(운동장 조성은) 시도교육청의 자치 사무여서 중앙 부처에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노후 인조잔디 운동장 현황이나 충진재 종류 등의 정보도 제출하지 않았다.
문체부 또한 공공체육시설 인조잔디 현황과 최근 5년 인조잔디 유해 물질 검사 결과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천연 충진재나 충진재를 쓰지 않은 인조잔디 현황, 노후 인조잔디 폐기물 처리 현황 등에 대한 자료 역시 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즉 공공시설 인조잔디의 미세플라스틱 배출 및 환경 유해성을 관할 부처 어디도 관리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충진재는 인조잔디 잎이 한쪽으로 눕지 않게 지탱하고, 운동 시 충격을 흡수하는 탄성을 제공하는 인조잔디의 구성 요소다. 보통 작은 알갱이 형태로 잔디 가닥 사이 바닥에 채워 넣어 충진재 혹은 충전재라고 불린다.
이 중 합성 고분자 화합물로 만들어진 인공 충진재는 미세플라스틱을 다량 배출하는 오염원이다. 특히 타이어, 플라스틱 등이 마모돼 생기는 2차 미세플라스틱이 아니라, 특정 목적을 위해 '의도적으로 제조된 1차 미세플라스틱'으로 분류된다.
유럽화학물질청은 EU 내에서 매년 1차 미세플라스틱으로 인해 배출되는 4만 2000톤의 미세플라스틱 중 최대 1만 6000톤이 인조잔디 인공 충진재에서 비롯된다고 밝혔다. 단일 배출원으로는 가장 큰 규모다.
이에 유럽연합(EU)은 2023년 합성 고분자 성분의 충진재를 전면 퇴출하는 'REACH 미세플라스틱 규제안'을 승인했다. 8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31년 10월부터 플라스틱 및 고무 성분 등의 충진재 판매가 전면 금지된다.
반면 한국은 인공 충진재의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규제·감독할 법적 근거도 없는 상황이다. 박 의원실은 "기후부는 1차 미세플라스틱 배출원을 화학제품안전법으로 관리한다고 밝혔으나, 이는 생활화학제품 5개 품목에 국한된다"며 "충진재는 어느 법의 미세플라스틱 관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화학제품안전법은 세정, 연마, 탈취 등 특정 목적의 제품군만 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어, 다른 목적으로 생산되는 충진재 같은 품목은 규제 공백 상태로 광범위하게 방치돼 있다.
환경단체 등에선 유럽연합 규제 수준에 준하는 정책 도입을 촉구하며 '미세플라스틱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통과를 요구한다. 미세플라스틱을 오염물질로 정의하고, 안전 기준을 정해 오염원을 포괄적이고 종합적으로 규제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그러나 기후부는 "(미세플라스틱의) 국제적 정의 미정립, 인체·환경 유해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 미흡 등 현실적 여건을 고려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박 의원실에 답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현재 집행되는 인조잔디 교체 예산이 친환경 인조잔디 확대에 쓰이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코르크나 식물 껍질 등 생분해성 충진재나 무충진 인조잔디로 교체되는지, 혹은 또 다른 합성고무 소재의 인조잔디로 교체되는지가 파악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체부는 2022~2026년 공공체육시설 인조잔디 교체에 88여억 원(36건)을 집행해 왔으나, 박 의원실은 "충진재 유형에 대한 구분 없이 사업명과 금액만 제출됐다"고 밝혔다.
교육부 또한 2027년 65개 학교, 약 26만㎡(제곱미터) 인조잔디 운동장을 교체할 계획이지만, 박 의원실은 "이 계획 역시 충진재 종류는 분류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해철 의원은 이에 "EU는 인공 충진재의 판매 금지 시점까지 지정했는데, 한국은 합성 충진재가 깔린 운동장이 몇 곳인지조차 모른다"며 "정부가 당장 현황 파악에 앞장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기후부가 교육부·문체부·지자체와 함께 전국 인조잔디 운동장의 현황과 충진재 종류, 설치연도부터 전면 조사해야 한다"며 "충진재를 미세플라스틱 관리 대상에 포함할지와 대체 충진재·무충진 전환 지원 계획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엔환경계획(UNEP), 미국 해양대기청(NOAA), 유럽연합 등은 직경 5밀리미터 이하의 물에 녹지 않는 고체 플라스틱 입자를 미세플라스틱으로 정의한다. 미세플라스틱은 생태계에 유입되면 쉽게 분해되지 않고 잔류해 먹이사슬을 통해 생물 체내에 축적된다. 주변 독성물질을 흡착해 전달하는 오염 매개체 역할도 한다.
유럽연합 등은 위험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이 우려된다면 선제적 조처를 해야 한다는 '사전 예방 원칙'에 따라 미세플라스틱 배출을 규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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