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가 미쉐린가이드에 2028년까지 내는 돈은 40억원 수준이다. 국비나 기업 협찬 없이 모두 부산시 예산이다. 지난 3월 부산지역 방송 KNN이 보도한 내용이다. 레스토랑 평가서로 유명한 미쉐린가이드가 한 도시를 다루려면 그 도시가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서울도 사정은 비슷했다. 미쉐린 가이드 서울판이 처음 나온 2016년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관광공사가 광고에 참여했지만 금액은 공개되지 않아 정부 예산을 쓰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듬해 국정감사에서는 관광공사가 서울판 발간을 지원하며 해마다 수억원을 미쉐린에 지급하는 계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졌다.
부산은 2023년 6월 서울에 이어 국내 두 번째 발간 도시로 선정됐고 2024년 2월 첫 부산 편이 나왔다. 부산시는 미쉐린에 선정된 식당을 찾아오는 여행객이 외식과 숙박에 돈을 쓰면서 지역 관광과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미쉐린 측은 관광 당국이 내는 돈은 홍보에 쓰일 뿐 식당 평가와는 완전히 분리돼 있고 평가 비용은 미쉐린이 모두 부담한다고 설명한다. 다만 계약의 세부 내용은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시민의 세금이 들어가지만 얼마를 어떤 조건으로 냈는지는 알기 어려운 구조다.
미쉐린가이드가 손님을 끌어모으는 힘이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지난 3월 발표된 '미쉐린가이드 서울&부산 2026'에는 서울 178곳, 부산 55곳 등 233곳이 실렸다. 별을 받은 식당은 46곳이고, 1인 4만5000원 미만으로 좋은 식사를 내는 '빕 구르망'이 71곳, 추천 식당인 '셀렉티드'가 116곳이다.
발표가 나면 예약이 몰린다. 지난해 발표 당일 예약 앱 캐치 테이블의 미쉐린 가이드 기획전 방문은 1년 전보다 169% 늘었고 3스타를 받은 식당은 몇 달 치 예약이 금세 마감됐다. 해외 미식 여행자에게 미쉐린은 여전히 가장 널리 알려진 맛집 안내서다.
문제는 그 효과가 누구에게 얼마나 돌아가느냐다. 부산편에 실린 55곳 가운데 별을 받은 식당은 4곳이다. 별을 받은 식당은 대부분 예약제로 운영되는 고급 식당이어서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손님 수가 정해져 있다. KNN 보도에서도 선정 식당 수가 적고 예약이나 수용에 한계가 있어 관광객 대부분은 결국 현지 맛집을 찾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부산시의회에서는 미쉐린 식당보다 일반 식당에 들어가는 지원이 적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더 큰 문제는 성과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40억원을 들여 외지 관광객이 얼마나 늘었는지 그들이 부산에서 얼마를 쓰고 갔는지, 미쉐린 식당 주변 상권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측정해 공개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지원의 근거는 '기대효과'인데 그 기대가 실제로 이뤄졌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는 셈이다. 같은 보도에서는 부산시가 미쉐린 선정 셰프 모임에 출장뷔페와 와인파티 등으로 수억원을 썼고 행사를 맡은 업체가 시의 미식고문 쪽이었으며 수의계약 요건에도 맞지 않았다는 문제도 함께 제기됐다.
평가의 독립성도 짚어야 한다. 미쉐린은 지원금이 평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평가를 받는 도시의 정부가 평가하는 회사에 돈을 내는 구조 자체가 오해를 부르기 쉽다. 국내에서도 2019년 미쉐린 선정을 둘러싸고 이른바 '컨설팅 비용' 의혹이 제기된 적이 있다. 미쉐린은 이를 부인했지만 계약 내용이 비공개인 상황에서는 이런 의혹이 나올 때마다 신뢰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는 미쉐린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자체가 돈을 내고 외부의 평가를 사오는 방식은 어떤 평가서든 같은 질문을 피할 수 없다. 그 돈은 결국 평가서에 실리기 위한 비용인지, 도시를 홍보하기 위한 비용인지, 홍보비라면 다른 홍보 수단과 비교해 효과가 있는지 따져야 하고 평가를 위한 비용이라면 독립성을 지키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미쉐린 유치를 무조건 반대할 일은 아니다. 해외 관광객에게 미쉐린만큼 잘 알려진 안내서는 아직 없다. 필요한 것은 유치 여부를 둘러싼 찬반이 아니라 세금을 쓰는 만큼 따져보는 절차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계약과 성과를 공개하는 것이다. 지자체가 낸 금액과 기간, 그 돈으로 기대하는 효과, 그리고 실제로 측정한 결과를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 외지 방문객의 카드 소비, 선정 식당 주변 상권의 매출, 숙박 증가 같은 지표는 지금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지역 스스로 믿을 만한 맛집 안내를 만드는 일도 검토할 때가 됐다. 국내에도 2005년부터 독자 평가로 맛집을 고르는 '블루리본 서베이'가 있고 중소벤처기업부는 30년 이상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를 '백년가게'로 인증하고 있다. 평가기준을 공개하고 식당에서 돈을 받지 않고 평가자가 손님처럼 방문하는 원칙만 지킨다면 지역 안내서도 충분히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특히 고급 식당보다 그 지역 사람들이 오래 다닌 향토 음식점과 노포를 소개하는 안내서는 미쉐린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을 채울 수 있다.
별을 받을 만한 식당 몇 곳보다 지역 식당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데 돈을 쓰는 방법도 있다. 외국어 메뉴판과 위생, 예약과 결제 환경을 갖추는 데 쓰는 예산은 별을 받지 못한 수많은 식당에도 고루 돌아간다.
미쉐린의 별은 돈을 내고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별을 보고 찾아온 손님이 다시 그 도시를 찾게 만드는 것은 별이 없는 식당들을 포함한 지역 전체의 실력이다. 별값을 치르기로 했다면 그 값이 제대로 쓰였는지 확인하는 일까지가 지자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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