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상윤의 미식관광 산업 읽기] ⑦ 저녁을 팔아야 하룻밤이 팔린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상윤의 미식관광 산업 읽기] ⑦ 저녁을 팔아야 하룻밤이 팔린다

숙박여행 지출은 당일여행의 3배…섬마을 '밥 주는 민박'이 보여 준 가능성

▲ 이탈리아 마사루브렌세의 한 농가 숙소. 주인은 직접 기른 과일과 농장에서 거둔 꿀로 손님에게 간식을 차리고, 그 꿀을 상품으로도 판다. 숙박과 먹거리, 기념품 판매가 한 농장 안에서 이어진다. ⓒ프레시안(문상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25 국민여행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이 지난해 다녀온 국내 여행의 58.8%는 당일여행이었다. 열 번 가운데 여섯 번은 하룻밤도 묵지 않고 돌아왔다는 뜻이다. 여행 한 번에 쓴 돈은 당일여행이 평균 6만 9000원, 숙박여행이 22만 1000원이었다. 여행객이 하룻밤을 묵느냐에 따라 지역에 남는 돈이 세 배 넘게 차이 나는 셈이다.

숙박여행에서 돈이 더 쓰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숙박비가 더해지고 저녁과 다음 날 아침 두 끼를 그 지역에서 먹는다. 저녁에 술 한잔을 곁들이고 다음 날 시장에 들러 지역 특산물을 사 가는 일도 숙박여행에서 주로 일어난다. 국내 여행 지출 가운데 식음료비 비중은 19.0%로 교통비 다음으로 크다.

한국은행도 지난 8월 관광산업 보고서에서 같은 지적을 했다. 방문객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체류 일수와 1인당 지출을 함께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광상품과 교통·숙박을 연계하고 예약과 안내를 디지털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다르지 않다. 전주시 조사에서 지난해 전주를 찾은 외국인의 74%는 숙박을 하며 여행했다. 머무는 관광객이 많은 도시일수록 관광의 실속이 커진다.

그런데 맛집을 찾아 지방에 가는 여행은 당일치기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점심에 이름난 식당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 들렀다가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간다. 하룻밤 묵고 싶어도 저녁을 먹을 곳과 잘 곳이 가까이 붙어 있지 않다. 시골 식당은 저녁 장사를 일찍 접는 곳이 많고 숙소는 대개 고기를 사 와 직접 구워 먹는 펜션이다.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저녁을 먹고 바로 그곳에서 잠드는 여행은 생각보다 만들기 어렵다.

제도도 이 둘을 떼어 놓고 있다. 농어촌정비법은 농어촌민박을 주민이 사는 집을 이용해 '숙박·취사시설·조식 등을 제공하는 사업'으로 정해 두었다. 아침밥까지는 법에 적혀 있지만 민박에서 저녁 식사를 정식 메뉴로 팔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은 식품위생법상 음식점 영업신고 대상이고 일반음식점은 원칙적으로 근린생활시설 같은 용도의 건물에서만 신고할 수 있다. 살림집을 쓰는 민박이 이 요건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반대로 식당이 손님을 재우려면 숙박업을 따로 갖춰야 한다. 먹는 곳과 자는 곳이 제도상 서로 다른 칸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남해와 서해의 섬마을에서는 이 칸막이를 넘어선 숙소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주인이 직접 배를 타고 나가 잡거나 섬에서 나는 제철 해산물로 점심과 저녁, 다음 날 아침까지 차려 주는 이른바 '밥 주는 민박'이다.

경남 거제의 작은 섬 이수도가 대표적이다. 여행 매체 소개에 따르면 이 섬에서는 숙박과 함께 세 끼를 제공하는 '1박 3식' 민박 10여 곳이 운영되고 있다. 점심과 저녁에는 자연산 회와 돌문어, 전복, 멍게 같은 제철 해산물 요리가 아침에는 미역국과 게장 같은 한식이 나온다. 요금은 1인당 10만 원 안팎이다. 입소문과 방송을 타면서 섬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이 됐고 이 민박들 덕분에 섬에 사는 주민이 늘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인천 옹진군 대이작도에서도 꽃게탕과 간장게장, 회무침을 내는 '1박 4식' 민박이 '섬 한정식'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인기다.

이 민박들이 보여 주는 것은 분명하다. 손님은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을 먹으러 기꺼이 하룻밤을 묵고 숙박비와 세 끼 식사비가 모두 그 섬의 주민에게 돌아간다. 식재료도 섬 앞바다에서 나온다. 하룻밤 머무는 미식 여행의 한국형 모델이 이미 섬마을에 있는 셈이다.

다만 이 성공은 대부분 주민 개인의 솜씨와 입소문에 기대고 있다. 식사를 숙박 요금에 포함하는 방식이나 신고 형태도 곳마다 다르고 이를 분명히 뒷받침하는 제도는 아직 없다. 잘되는 곳이 늘어날수록 위생 관리와 가격 표시, 소비자 분쟁 같은 문제도 함께 늘 수 있다. 섬마을 민박의 방식을 제도 안으로 들여와 다른 지역으로 넓히는 일이 필요한 이유다.

외국에서는 식당과 숙소를 합친 이런 형태를 '오베르주(auberge)'라고 부른다. 프랑스어로 시골 여관을 뜻하는 말로 지금은 요리를 중심에 둔 작은 숙소를 가리킨다. 손님은 그 지역 재료로 차린 저녁 코스를 천천히 즐기고 술을 곁들인 뒤 운전 걱정 없이 그 집에서 잠든다. 다음 날 아침 식사까지 그 집에서 해결한다. 이웃 일본에서는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이런 숙소가 늘면서 일부러 찾아가는 여행지가 된 곳도 적지 않다.

섬마을 민박 말고도 우리에게는 재료가 많다. 농촌진흥청이 향토 음식을 관광자원으로 키우기 위해 육성한 '농가맛집'이 전국 66곳에서 운영 중이고 숙박과 농촌 체험을 함께 제공하는 농촌체험휴양마을도 전국에 있다. 지역마다 한옥 숙소와 민박도 많다. 이미 있는 식당과 숙소, 체험을 하나로 묶기만 해도 하룻밤 머무는 미식 여행의 기본 틀은 갖출 수 있다.

지방에 숙소가 부족하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숙소의 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숙소에서 지역의 음식이 소비되느냐다. 손님이 도시 마트에서 고기와 술을 사 들고 와서 펜션에서 구워 먹는다면 숙박비는 지역에 남아도 저녁값은 대부분 지역 밖에서 쓰인다. 하룻밤을 묵더라도 저녁을 지역 식당이나 숙소에서 지역 재료로 먹어야 지역 농가와 식당에 돈이 돌아간다.

위생과 안전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일이 늘면 식중독 같은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당한 걱정이다. 그래서 제도를 풀 때는 조리 공간과 위생 교육, 식재료 관리 기준을 함께 정해야 한다. 지금도 농어촌민박 운영자는 해마다 식품위생 교육을 받는다. 이 교육을 강화하고 저녁 식사 제공에 맞는 시설 기준을 더하면 안전과 영업을 함께 챙길 수 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섬마을 민박처럼 이미 자리 잡은 방식을 제도로 인정하는 것이다. 객실과 손님 수를 제한하고 조리 공간과 위생 기준을 갖춘 민박이라면 투숙객에게 지역 재료로 세 끼를 차려 낼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하고 요금에 식사가 포함됐음을 분명히 표시하게 하면 된다. 전국에 한꺼번에 적용하기 부담스럽다면 섬과 어촌, 미식 관광을 키우려는 몇몇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해 보고 넓혀 가면 된다.

이탈리아가 좋은 참고가 된다. 이탈리아는 농가민박인 '아그리투리스모(agriturismo)'가 숙박객에게 저녁과 아침을 차려 낼 수 있도록 법으로 인정하면서 그 식사에는 자기 농장과 인근 지역에서 난 식재료를 주로 쓰도록 정해 두었다. 구체적인 기준은 주마다 달라, 에밀리아로마냐주는 식재료의 80%를 자기 농장이나 지역 농가, 지역 인증 제품으로 채우게 한다. 식사 제공을 허용하되 지역 식재료를 쓰게 하는 조건을 붙이면 민박에서 내는 식사가 그대로 지역 농어민의 판로가 된다. 우리도 섬과 어촌 민박에 식사를 허용할 때 그 지역 수산물과 농산물을 일정 비율 이상 쓰도록 하는 조건을 함께 둘 만하다.

식당과 숙소를 하나의 상품으로 묶는 일도 필요하다. 농가맛집이나 지역 식당의 저녁과 가까운 민박이나 한옥 숙소를 한 번에 예약하고 다음 날 아침 시장이나 양조장 방문까지 이어지는 일정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은 개별 식당이나 숙소가 하기 어렵다. 지역 관광 조직이나 지역의 여행 사업자가 맡아야 한다.

저녁 시간을 살리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소도시 원도심은 해가 지면 문을 닫는 가게가 많다. 저녁 영업을 하는 지역 식당에 홍보나 인력 지원을 집중하고 숙소와 식당 사이를 오가는 교통편을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머무는 손님이 늘어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성과를 재는 방식도 바꿔야 한다. 지자체가 미식 관광의 성과를 말할 때 방문객 수와 함께 숙박으로 이어진 비율, 숙박객이 지역 식당에서 쓴 돈을 따져 보면 어떤 정책이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점심 한 끼는 손님을 부른다. 그러나 지역에 돈을 남기는 것은 그 손님이 저녁을 먹고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까지 머무는 시간이다. 미식 관광의 다음 목표는 맛집 하나를 더 알리는 것이 아니라 맛있는 저녁 뒤에 묵어 갈 곳을 만드는 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문상윤

세종충청취재본부 문상윤 기자입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