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시간) 치러진 이스라엘 총선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여당 연합과 가디 아이젠코트 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이끄는 야당 연합이 접전을 벌인 가운데, 아랍계 정당들이 의석 수를 크게 늘려 정부 구성의 캐스팅보트로 떠올랐다. 아랍 정당과 손을 잡으면 쉽게 과반 의석을 점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랍계 차별 속 야당 연합조차 협력 방침을 명시적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개표가 84.5% 진행된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 연합이 54석, 아이젠코트 연합이 49석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됐다. 아랍계 두 정당도 17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됐다. 각 방송사 출구조사도 대체로 야당 및 여당 연합의 각 50석 내외 박빙 승부를 예측했다.
중간 집계 결과에서 단일 정당 기준으로 보면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당이 27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아이젠코트의 야샤르당이 22석으로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됐다. 이어 야당 연합에 합류한 나프탈리 베네트 전 총리의 비야하드당이 12석, 아랍계 정당인 공동목록(Joint List)이 11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됐다.
여야 연합 모두 120석인 이스라엘 의회(크네세트) 의석 과반(61석)을 점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연정 구성을 위해 최소 연말까지 혼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연정 구성 완료 때까지 네타냐후 총리가 임시 총리직을 수행하게 된다.
여당 연합이 과반을 점하지 못할 걸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아이젠코트는 개표 도중 연설을 통해 "이스라엘 국민은 네타냐후가 총리직을 이어가는 데 반대하는 표를 던졌다"며 "진정한 지도자라면 국민의 판단을 받아들이고 오늘 정치 인생을 접겠다고 발표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개표 도중 연설에서 "리쿠드당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정당"이라며 "강력한, 국가적 우익 정부가 구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주목받은 건 아랍계 정당의 약진이다. 이스라엘 유권자 20%를 차지하는 아랍계 주민들은 그간 이스라엘 정치권에 대한 불신 탓에 투표를 꺼려 왔지만 이번 선거에서 높은 투표율을 통해 의석을 거의 두 배로 늘릴 전망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27일 이른 오후 기준 아투아나 지역 무허가 베두인족 마을 투표율이 이미 64%를 기록해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이 시각 투표율 2위와 4위를 기록한 곳도 아랍계 마을이었다.
높은 투표율은 네타냐후 극우 연립정부 아래 아랍계 주민들의 삶이 극도로 피폐해진 데 대한 절박함에서 기인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생애 첫 투표에 참여한 56살 베두인족 여성은 현 정부의 행태가 "우리 영혼을 할퀴었다"며 전기와 수도 없이 무허가 마을에 살고 있는 그와 그의 자녀들이 극우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의 전면 철거 방침 탓에 오두막 한 채도 지을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베두인족 남성 님르 아부 시반은 "예전 같으면 아내와 딸들은 투표하지 않았겠지만 나라가 너무 엉망이 되며 오늘 모두 투표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만수르 아바스가 이끄는 아랍계 정당 라암(Ra’am·아랍연합명부)의 거점인 베두인 도시 라하트 주민 에이나드 알카시시는 "우린 벤그비르를 싫어하지만 동시에 감사하다. 그가 아랍계 이스라엘인을 뭉치게 했다"고 꼬집었다. 아랍계 주민들은 현 극우 정부 방치 아래 지역 사회에서 범죄와 폭력에 시달렸고 많은 베두인 구성원들이 가옥 철거에 직면했다.
의석 14퍼센트가량을 점유할 걸로 예상되는 아랍 정당의 손을 잡으면 다수 연정을 쉽게 구성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선거 운동 과정에서 네타냐후와 아이젠코트 모두 사실상 아랍계와의 연정에 선을 그은 상태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아랍계 주민들이 네타냐후 연정에 반대해 투표장으로 나섰고 네타냐후 총리 또한 아랍 정당과의 동맹을 공개적으로 거부했기 때문에 이러한 연합이 구성될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개표 진행 중 행한 연설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험에 빠뜨리고 반시온주의 아랍 정당들을 기반으로 한 정부를 구성하는 건 절대 금지"라고 분명히 했다.
아이젠코트 연합의 경우 반네타냐후 기치의 아랍계 정당들의 협력을 더 수월하게 이끌어 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아이젠코트 또한 아랍 정당들이 이스라엘을 유대인 민주주의 국가로 인정할 것, 이스라엘 독립선언에 명시된 가치를 수용할 것,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테러 조직으로 규탄할 것 등을 연합 조건으로 제시하며 이를 충족하는 아랍 정당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베네트도 아랍 정당과의 연합에 반대한다. 베네트는 2021년 아랍 정당이 참여한 '무지개 연정'을 이끌었지만 연정은 내부 견해차를 이기지 못하고 1년 만에 붕괴했다.
역시 야당 연합에 참여한 민주당 야이르 골란은 아랍 정당과의 연합을 촉구했다. 그는 28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두려움과 인종차별을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미래가 없다. 우린 더 이상 네타냐후가 유대인 표와 아랍 표를 인종차별적으로 나누려는 걸 용납해선 안 된다"며 "우리는 다수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우린 이스라엘의 아랍 시민들과 협력해 변화를 이끌어낼 정부를 구성할 기회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물밑에선 양 연합 모두가 아랍 정당들에 접촉하고 있다는 보도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을 보면 아바스는 이스라엘 채널12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진영이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며 아이젠코트 뿐 아니라 네타냐후 진영도 접촉해 왔음을 시사했다.
아랍 정당 중 라암은 2021년 네타후를 실각시킨 무지개 연정에 참여한 바 있고 최근 국가중대범죄수사단을 이끈 예시 아티드당 출신 유대인 요아브 세갈로비츠를 전격 영입하는 등 행보를 보여 연정 참여 가능성이 더 높게 평가된다. 아바스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네타냐후 총리, 극우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 벤그비르 장관을 끌어내리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밝힌 바 있다. 라암은 중간 개표에서 6석을 확보할 걸로 예상됐다.
정파 연합으로 구성된 또 다른 아랍계 정당 공동명부는 직접 참여보다 네타냐후를 교체할 정권과의 외부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 아랍 공동체 내 범죄 척결, 아랍 지자체에 대한 정부 투자 확대, 베두인 가옥 철거 중단 등이 아랍계 정당들이 내세우는 목표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야당은 모든 아랍 정치인이나 정책을 수용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연정 협상 시작 전 적어도 한 곳의 아랍 정당이 정부 구성의 정당한 파트너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아랍계가 "손길을 내밀었고 야당은 이 손을 잡고 이스라엘을 다른 미래로 이끌 수 있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선택은 야당의 몫이다. 이스라엘을 모든 투표가 존중 받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 것인가, 고립되고 비민주적인 인종차별적 민족지배체제(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지만 소수 민족에겐 민주주의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사회)로 전락할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정치 분석가 댄 페리는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아이젠코트가 아랍 연합과 협력하지 못해 네타냐후 축출에 실패하면 "거의 본 적 없는 수준의 정치적 무능"으로 평가될 거라고 말했다.
아랍계 정당과 아이젠코트 연합이 일단 협력해 정부를 구성하더라도 이후 정치적 견해 차이, 우파 유대인 지지자들의 거부감 등으로 쉽게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과제로 꼽힌다. 2021년 라암이 참여했던 반네타냐후 연합 정부는 1년 만에 붕괴했다.
독립 언론인 안토니 로웬스타인은 알자지라에 "아랍 정당들이 아이젠코트와 협력하는 건 가능하다고 본다. 문제는 아이젠코트와 그 주변인들이 아랍인들의 존재를 받아들일지 여부"라며 연정이 성립해도 "오래 지속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로선 아이젠코트 연합이 아랍계 정당 지지를 얻어 정부 구성 가능성이 더 높다고 평가되지만, 아이젠코트의 팔레스타인 및 이란 전쟁 관련 인식이 네타냐후 총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큰 차이는 없을 거라는 전망이다.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을 지냈고 가자지구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아이젠코트는 2국가 해법을 지지하지 않고 가자지구 문제에서도 필요하다면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취임 뒤 18개월 이내 하마스의 가자지구 통치를 끝내겠다고 말하는 등 네타냐후 총리와 견해 차가 크지 않다. 그는 이스라엘 불법 정착촌 정책도 지지한다.
다만 서안지구를 두 동강 내 내 국제사회의 반대가 특히 큰 E1 정착촌 및 무허가 전초기지 설립엔 반대한다. 따라서 서안지구 정착민 폭력 감소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아이젠코트에게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일 수 있다.
대이란 정책도 크게 변화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을 보면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이란 프로그램을 이끄는 라즈 짐트는 "이스라엘 좌파, 우파, 중도의 이란 위협, 특히 핵위협에 대한 인식엔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차기 정부 구성과 관계 없이 이란과 그 대리세력에 대한 이스라엘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있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란에 대한 군사적 긴장 고조는 이스라엘 총리가 누구인지보다 "미국 대통령의 결정"에 훨씬 더 좌우된다고 덧붙였다.
INSS 선임연구원 대니 시트리노비츠는 "현재 이스라엘 정치권에서 핵협정 복귀는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대이란 외교 복귀 가능성을 낮게 봤다.
'9개의 정치적 목숨을 가진 자'로 불리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에 대한 전면전 재개를 포함해 어떻게든 재기를 시도할 거라는 전망도 지우기 힘들다. 현재의 극우 연정을 버리고 경쟁자 아이젠코트와의 연합을 꾀할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적극 추진 중이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호의적 태도라고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젠코트가 네타냐후 총리에 대립각을 세우며 지지를 모은 만큼, 연립 정부 구성 땐 신뢰 훼손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 이러한 구상에 동의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한 주 앞으로 다가온 미 중간선거 종료 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재개할 경우 전시 상황 탓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합 내각 구성 압력이 커질 수 있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란 공격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아이젠코트는 선거 뒤 연설에서 "네타냐후는 이스라엘 안보를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지 말라"며 "안보기관 및 공무원 조직 수장들에 직접 말씀드린다. 네타냐후는 권한도 없고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임시 총리다. 여러분들은 오직 이스라엘 시민과 국가에 봉사한다는 걸 기억하라. 어떤 압력에도 단호히 맞서라"고 촉구했다.
아이젠코트 연합이 정부 구성권을 얻더라도 6주 안에 정부 구성을 하지 못할 경우, 아랍 정당이나 또 다른 정당의 도움을 급히 얻더라도 안정성을 확보 못해 조기 붕괴 국면으로 나아갈 경우 등 여러 경로에서 일단 임시 총리직을 수행할 네타냐후 총리는 기회를 엿볼 수 있다.
결과 확정 뒤 아이작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은 가장 정부 구성 가능성이 높은 정당 대표에 정부 구성권을 부여할 예정인데, 6주 안에 정부 구성이 완료돼야 한다. 정부 구성에 실패할 경우 다른 정당에 구성권이 주어지고 4주간의 구성 기간이 주어진다. 이마저 실패할 경우 의원 과반이 특정 의원에 정부 구성을 맡겨줄 것을 대통령에 요청할 수 있고 이 기간은 3주다.
정부가 출범하려면 과반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일부 정당 기권 등을 통해 과반이 아닌 다수 지지만 얻은 소수 정부 출범도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이 실패하면 총선이 다시 치러져야 하고, 이 기간 동안 네타냐후 총리는 임시 총리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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