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편의점 앞이었다. 아침 운동을 마치고 따뜻한 햇볕을 쬐며 잠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고래 멱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왜 이리 시간이 안 가노?”
한 할아버지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연신 탄식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가지 않으면 시간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올까.
시간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치는 세상에서 시간이 가지 않아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니 마음이 묘했다.
얼마 전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도 마음 아픈 광경을 목격했다. 길가 귀퉁이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엉엉 울고 있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으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빨리 죽고 잡다. 어서 죽고 잡다.”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저분을 저토록 서럽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사는 것이 고통스러우면 죽고 싶다는 말을 저렇게 되뇌고 있을까.
그분들의 사정은 알 수 없었다. 다만 두 노인의 모습이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사람은 시간이 가지 않아 괴롭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운 듯했다.
문득 우리가 그토록 외치는 노후 대비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결국 간다.
며칠 전에는 국민 아버지로 사랑받던 배우 최불암 선생도 영면에 들었다. 평생 수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던 그분도 세월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누구도 예외가 없다. 재산이 많든 적든, 이름이 알려졌든 아니든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죽지 않을 사람처럼 살아간다.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더 풍요롭고 편안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 젊어서부터 열심히 돈을 벌고 저축하고 투자한다.
노후 자금은 얼마나 필요한가. 연금은 얼마를 받아야 하는가. 집은 있는가. 병원비와 간병비는 충분한가. 온통 돈 이야기다.
노후 대비라는 말이 어느새 노후 자금 마련과 같은 뜻이 되어버렸다. 물론 돈은 중요하다. 가난한 노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는 바 아니다. 돈이 없으면 아플 때 치료받기도 어렵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돈이 충분하고 오래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노후 준비가 끝나는 것일까? 우리는 노후를 이야기하면서 이상하게도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외면한다.
언젠가는 걷는 일조차 힘겨워질 수 있다. 좋아하던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눈이 침침해 책을 읽기 어렵고, 귀가 어두워 대화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
친구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난다. 평생 함께했던 배우자도 먼저 떠날 수 있다. 자식들은 저마다의 삶이 있다.
결국 혼자 남겨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침에 눈을 뜨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기다리는 약속도 없다. 창밖을 바라보다 시계를 본다. 한참 지난 것 같은데 겨우 십 분이 흘렀다.
그때 통장에 돈이 넉넉하다는 사실만으로 하루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배고픔에 대비해 돈을 모은다. 질병에 대비해 보험에 든다. 오래 살 것에 대비해 연금을 준비한다.
그런데 외로움에는 무엇으로 대비하고 있는가? 하루 종일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사라지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런 문제에는 얼마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젊을 때는 먹는 즐거움이 있다. 여행하고 친구와 어울리고 사랑하는 즐거움이 있다. 일에서 보람을 얻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부심도 느낀다.
그러나 그런 즐거움이 하나씩 사라진다면 무엇이 남을까? 그때는 남에게서 얻던 즐거움보다 자기 안에서 발견하는 기쁨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은 사람,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를 즐길 줄 아는 사람, 무엇인가를 잃어가면서도 아직 남아 있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부럽다. 그런 능력은 돈처럼 모아둘 수 없다. 퇴직금을 받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연금이 많다고 저절로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젊어서부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생각하고, 읽고, 쓰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돈을 모으는 데는 평생을 바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연습에는 얼마나 인색한가.
젊어서는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은퇴하면 여행도 하고, 책도 읽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한다.
모든 것을 나중으로 미룬다. 그러나 평생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 은퇴한다고 갑자기 혼자 노는 법을 알게 될까? 평생 자신을 돌아보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고독을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더욱 이상한 것은 노후에 행복하기 위해 오늘의 행복을 끊임없이 미룬다는 사실이다.
오늘을 누릴 줄 모르면서 내일은 잘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노후 대비라는 이름으로 정작 살아 있는 오늘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고독을 견디는 일이 개인의 마음가짐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가난과 질병, 사회적 고립을 줄이는 일은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다. 누구도 홀로 방치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한 노후 대책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가 마련되어도 결국 자신이 살아내야 할 시간이 있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시간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날이 아주 먼 훗날의 일인 것처럼 살아간다. 더 오래 살기 위한 방법에는 관심이 많지만, 어떻게 늙어가고 어떻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가에는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닌데도 말이다. 공원에서 들었던 할아버지의 탄식이 다시 떠오른다.
“이 노무 시간이 웬수다.” 그 말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는다.
언젠가 나에게도 시간이 너무 길어지는 날이 올 수 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갈 수 없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날 나는 무엇으로 하루를 살아갈 것인가? 돈이 부족하지 않더라도 외로울 수 있고, 오래 살아도 삶이 기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노후를 위해 돈을 모으는 것만큼 고독을 살아낼 힘을 기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무조건 참으라는 말이 아니다. 혼자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힘 말이다.
우리는 노후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끊임없이 계산한다. 그런데 정작 계산하지 않는 것이 있다.
혼자 보내야 할 그 수많은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노후를 준비하느라 오늘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결국 간다. 그날이 언제인지만 모를 뿐이다. 그렇다면 죽지 않을 것처럼 노후를 준비하기보다, 언젠가 떠날 사람답게 오늘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