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1월13일 전태일이 산화하면서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그 중심에는 근로기준법이 있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스물두 살 청년 노동자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면서 외친 절규였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이 안 지켜진다고 새 법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이미 존재하는 근로기준법을 제대로 지키라고 요구했다. 대한민국은 전쟁통인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17년이 흐른 1970년에도 평화시장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은 있으나 마나 한 법이었다. 장시간 근로와 저임금, 열악한 근로환경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에게 한문으로 가득한 법전 속의 권리는 현실의 권리가 아니었다.
전태일은 노동청을 찾아 근로감독을 요구하고, 노동실태를 조사하고, 동료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국가에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은 근로기준법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니었다. 그 법을 만들어 놓고도 지키지 않는 국가에 대한 항의였다.
전태일 산화로부터 56년이 흘렀고,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이 됐다. 그의 이름을 딴 기념관이 세워지고, 동상이 만들어지고, 해마다 그의 무덤에서 추모행사가 열린다. 이제는 11월13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움직임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전태일이 목숨 걸고 요구했던 근로기준법은 오늘날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고 있는가.
국회에서는 지난해 11월 13일 매년 11월 13일을 '노동인권의 날'로 지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전태일의 희생을 기리고 노동인권을 증진하겠다는 취지다. 전태일재단을 비롯한 시민사회에서는 국가기념일 지정을 위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나는 전태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데 반대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조차 실현하지 못하는 국가가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다 산화한 전태일을 국가적으로 기념하겠다는 것은 위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근로기준법의 주요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특수고용 노동자와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하는 수많은 사람은 근로자성 인정 여부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보호에서 배제된다. 자본가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 일하면서도 법률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법기술자들의 해석으로 노동법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이 내놓는 해법은 근로기준법의 단계적 확대 적용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 기본법'이라는 별도의 법률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 노동자의 권리를 보편화하기보다,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별도의 법체계를 마련해 2등 노동자라는 현실적 굴레를 법률적 낙인으로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노동자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를 구분하는 기존 구조를 유지·확대할 위험이 있다.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차별을 없애기보다 서로 다른 법적 보호체계로 노동시장을 분단해 관리하는 방식이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확대에는 자본가의 비용 부담과 국가의 감독 책임이 따른다. 노동자의 권리를 확대하는 만큼 자본가와 국가의 의무도 커진다. 반면 국가기념일 지정에는 그러한 이해관계의 직접적인 충돌이 상대적으로 적다. 전태일의 이름을 기념하는 일과 전태일의 요구를 실현하는 일은 다른 문제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두 개의 전태일이 존재한다. 하나는 진보 리버럴이 호명하는 전태일이다. 다른 하나는 근로기준법의 보편적 적용을 요구하는 노동계급 하층의 전태일이다. 진보 리버럴의 전태일은 인간 존엄과 희생, 사랑과 연대의 상징이다. 전태일의 삶을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하며, 국가와 사회가 그의 도덕적 의미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기념일 지정과 노동인권교육, 기념사업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노동계급 하층의 전태일은 다르다. 그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구체적인 이해관계 속에 존재한다. 장시간 근로를 줄이고, 휴일을 보장하고, 근로환경을 개선하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요구를 제기한 노동자다. 그의 요구는 자본가에게 비용과 책임을 부담시키고, 국가에는 법을 집행할 의무를 부과한다.
전자의 전태일은 누구나 존경할 수 있는 도덕적 위인이다. 후자의 전태일은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현실 속의 노동자다. 이러한 차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누가 노동문제(the Labour Questions)를 말하고, 누가 노동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며, 누구의 이해관계가 그 과정에서 관철되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고학력 전문직과 지식인, 법률가, 정치인,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노동자의 권리를 말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들은 노동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 차별 해소를 강조한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둘러싼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관계와 물질적 평등의 실현이 그들의 언어 속에서 얼마나 구체적으로 다뤄지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안타깝게도 이제 전태일의 이미지는 노동계급의 집단적 권리를 요구한 역사적 노동자에서 누구나 존경할 수 있는 도덕적 위인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계급 관계는 추상적인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노동법의 적용과 집행은 인권과 존엄의 문제로, 노동계급의 집단적 요구는 사회적 공감과 인식 개선의 문제로, 노동시장 하층 노동자의 물질적 이익은 도덕적이고 추상적인 권리 문제로 옮겨간다. 이런 과정 속에서 전태일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지만, 전태일이 요구했던 근로기준법은 우리의 시야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가가 기념하는 전태일은 어떤 전태일인가.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와 자본가에게 저항한 역사적 노동자인가. 아니면 인간 존엄과 사랑, 연대를 실천한 도덕적 위인인가.
물론 두 모습이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가 전태일의 희생을 기념하면서도 그가 제기한 노동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기념은 그 요구를 인권과 도덕 담론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전태일을 국가의 공식역사 속에 편입시키는 것과 전태일이 요구했던 노동자의 권리를 현실에서 실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노동인권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중고등학생들에게 전태일을 가르치는 문제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아이들은 치열한 입시경쟁과 학업 부담에 시달린다. 자신의 일상에서 충분한 휴식과 자유를 누리기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태일의 희생과 정신을 배우라고 이른바 '노동인권교육'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우리 교육의 중심이 돼야 하는가.
노동인권교육 자체를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권리를 제대로 가르치자는 것이다. 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 근로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최저임금과 휴게시간은 어떻게 보장되는지, 임금을 받지 못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노동시장에서 근로기준법 적용을 못받는 자영업자로 취급될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필요하다. 자신이 노동자가 됐을 때 어떤 권리를 갖고, 자본가는 어떤 의무를 지며,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도록 하는 교육이 중요하다.
그런데 노동인권교육이 '풀빵'으로 상징되는 감상적 희생과 도덕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면, 노동법의 구체적인 내용과 노동자의 권리와 자본가의 의무는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전태일의 '풀빵'을 모르는 것이 문제인가. 아니면 근로기준법을 모르고,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방법을 모르는 것이 문제인가.
국가기념일 지정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태일의 이름을 내세워 국가기념일 지정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에도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전태일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일이 노동운동의 성과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이 노동자의 삶을 바꿀 수 있는가. 근로기준법의 적용 범위를 넓히고, 자본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노동감독을 실효성 있게 만드는 일과 비교할 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전태일의 도덕주의적 의미를 국가가 인정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노동운동의 목표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개선하고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힘의 관계를 바꾸는 데 있어야 한다.
근로기준법의 확대 적용은 쉽지 않은 과제다. 자본가들의 반발이 따를 것이고, 노동시장의 기존 질서와 충돌할 것이다.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져야 하고, 노동조합도 조직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전태일이 국가에 요구했던 것은 자신의 기념일로 박제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6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크게 달라졌다. 노동조합이 성장했고 노동법도 발전했다. 평전이 외국어로 출판되면서 전태일은 한국 노동운동을 넘어 'K-노동'을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돼야 한다는 역사적 과제의 실현은 반세기 전 그의 시대보다 오히려 아득해지고 있다.
전태일을 기념하는 국가와 전태일이 요구했던 근로기준법을 집행하는 국가는 같지 않다. 전태일을 가르치는 학교와 노동자의 권리와 이익을 가르치는 학교도 같지 않다. 전태일을 추모하는 노동운동과 전태일의 요구를 실현하는 노동운동 역시 같지 않다.
전태일의 이름을 국가의 달력에 새기는 것보다 근로기준법을 노동자의 일상에 새기는 일이 백배천배 시급하다. 1970년 282 달러였던 한국의 1인당 GDP는 2026년 4만3000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도 근로기준법은 간데없고 전태일만 나부끼는 스산한 날씨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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