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파트너는 수마트라 출신의 중국계이다. 그는 정치에 관한 얘기는 가급적 피하는 편이다. 오랫 동안 핍박 받아온 대부분의 중국계는 정치문제에 관해서는 매우 무관심한 듯 행동한다. 그들은 사석에서도 그곳이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라면 결코 정치얘기를 하지 않는다. 젊은 친구들은 그래도 좀 나아 자기집이나 개인 사무실등과 같이 제한된 장소에서는 얘기를 쉽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직원들 중 절반 가량은 인도네시아 현지 토착민이다. 몇몇과는 자주 식사도 하고 친하게 지낸다. 그중 통신케이블부분의 판매책임자는 전형적인 인도네시아인 이다. 중부자바출신의 이 사람은 이슬람교도로 하루 5번씩 기도를 할 정도로 신앙심이 깊지는 않으나, 금요일의 예배나 라마단 기간의 금식 같은 행사는 철저히 지킨다. 술은 전혀 안마시지만, 담배는 자신을 굴뚝으로 여기는지 거의 물고 산다. 충분한 급여는 아니지만 그래도 주말에 가족과 함께 가까운 곳에 놀러 갈 정도의 소득을 올리고 있고, 자신의 집은 아직 없지만 그래도 가족과 하녀를 두고 불편없이 살 정도의 공간의 집을 집세 밀리는 일 없이 내고 살 정도는 된다 (이 나라에는 전세란 개념이 없다, 자기집 아니면 월세를 1년치 선불로 내고 산다).
이런 그의 모습은 인도네시아 중산층 좀더 정확하게는 밥술께나 먹고 사는 인도네시아인의 전형적인 모습이다.이 사람과는 정치에 관한 얘기를 하면 재미있는 면이 있다. 매우 극단적인 반미주의(그래서 나와 잘 통하는지도 모른다), 현정부에 대한 불만, 자국에 대한 자긍심, 그러나 가난할 수 밖에 없는 대다수 국민들에 대한 연민 뭐 이런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런 사람이다.
아체의 군사작전 사흘째인 오늘(21일) 이 친구와 차를 마시다 결국 이 얘기 저 얘기 끝에 아체 얘기가 나왔다.
“어제 뉴스를 보니 학교가 불타고 난리가 아니더라, Metro TV 카메라맨은 총격전 중간에 끼어 들어 그걸 다 촬영하고 있더라.” “테러리스트들이 문제다.” “왜?” “뭣 때문에 독립을 하나? 다른 대다수의 아체사람들은 인도네시아의 국민으로 남아 있길 원한다. 몇몇 테러리스트 만이 독립을 원할뿐이다.”
뭐 이쯤 되면 과거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들어온 일본인들의 사고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은 계속된다.
“중앙정부는 그들에게 상당한 자치권을 약속했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이 아닌 이슬람율법에 근거한 관습법도 인정해 주겠다고 했고, 재정지원의 확대도 약속했다. 대통령은 올해 초 아체에 직접 찾아가 평화를 약속하고 그들의 관습을 인정하고 대부분의 요구조건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매일 같은 소리만 한다 ‘독립’? 바보 같은 생각이다. 독립은 그들에게 아무 도움이 안된다, 중앙정부가 아니면 지금은 아직도 서구의 식민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교가 아닌 기독교를 강요 받고 고통 속에서 살고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나는 더 이상 이 사람과의 아체에 대한 논쟁은 포기해야 한다, 다음부터는 논쟁이 아닌 감정싸움이 될 테니까. 이게 보통의 인도네시아인들의 일반적인 아체에 대한 생각이다. 자신들이 아체를 강점하고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원래부터 인도네시아의 국토였는데 일부 불만세력이 이탈을 획책한다는 사고를 지니고 있다.
아체가 '제2의 동티모르'가 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우선 인도네시아 정부의 아체에 대한 집착이 동티모르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나라의 재정은 매우 빈약하다. 국민들의 소득이 형편없다 보니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는다. (사실 국민들도 별로 세금을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세무공무원과 협상(?)을 잘만 하면 세금도 깎아준다. 그것도 대폭…)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은 칼리만탄에서 채벌되는 원목, 이리얀자야(서부 파푸아)에서의 구리와 금, 아체와 기타 지역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판매수익금에 의존하고 있다. 그 중 아체의 가스와 원유수익금이 국가재정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아체를 잃는다면 인도네시아는 당장 국가재정에 상당한 압박을 받게 된다. 거기에 암본,이리얀자야 등의 독립운동이 가속화될 테고 그러면 더 많은 군인, 더 많은 무기가 필요하다. 이 나라 군인은 모병제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군인의 수를 늘리기도 쉽지 않다. 또 군비를 확충하자면 결국 다른 곳의 재정을 삭감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분류하는 빈민층은 3천 8백만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도 가난하다고 분류하는 사람의 수가 3천8백만 이라는 얘기다. 이들은 정부의 보조금이 없으면 초등교육조차 받을 수 없다. 물론 수도나 전기의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 1천 2백만은 정부보조금이 없으면 당장 생계가 어렵다. 이들은 만성적인 영양실조 상태의 인구이다.
뿐만 아니라 아체는 자카르타와 말레이지아 타일랜드를 연결하는 해상항로인 말라카 해협의 요충지이므로 이곳을 잃을 경우 해상로의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지금도 해적이 들끓어 올 1.4분기에만도 8건의 해적피해가 이곳에 있었고 1년이면 10여명의 인명피해가 나는 지역이다. 인도네시아정부는 이곳의 해상 치안확보에 골치를 앓고 있다. 해상치안력의 부족한 데다 말레이지아 정부와의 협조가 원활치 않아 해적의 소탕에 애를 먹고 있다.
그러한 재정적 문제, 국가의 사분오열등이 정치적 이해득실에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는 아체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아체의 자유독립운동(GAM)측은 국제사회의 지원도 기대하기 어렵다. 동티모르의 경우 수십년간 호주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호주는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10여년간 국제여론을 조성해 왔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에 병합되기 전까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관계로 대부분의 국민이 가톨릭신자이다. 그리고 동티모르가 독립하던 날 제일 먼저 도착한 UN평화유지군은 호주군이었고, 제일 먼저 진출한 기업도 호주자본이었고, 지금도 그 나라의 자원은 호주자본가의 손에 있다. 주인만 바뀌었지 동티모르는 여전히 '경제식민지'로 남아 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만 독립했을 뿐이다.
그러나 아체의 경우는 다르다. 이미 아체에는 아룬을 통해 서구자본가인 모빌이 진출해 있다. 미국은 석유 때문에 이라크와 전쟁도 한 나라이다. 그런데 멀쩡하게 석유를 잘도 퍼내 팔아먹는 서구자본이 구태여 아체의 독립을 지지하는 모험을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아체에서 이 모빌의 이름은 식민지 자본수탈의 대명사가 되어 버렸다. GAM측은 19일 정부군의 토벌작전이 벌어지자 아룬의 노동자에게 파업을 하라고 촉구한바 있다. 그러니 아체의 독립은 서구자본에게 별로 달가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미국은 이라크전후 이슬람세력의 동조를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은 굳이 인도네시아 정부를 자극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권에 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지지해줄 동조자를 확보하는 데 급급하다. 유럽은 그런 미국을 거스릴 용기가 없다. 이미 프랑스와 독일은 이라크전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흔히 인도네시아라는 국가의 이미지는 그저 칼리만탄(흔히 보르네오라고 알고 있지만 정식명칭은 칼리만탄이다)의 풍부한 목재, 이슬람이 대부분인 나라, 지지리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땅, 발리의 휴양지 뭐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1만개가 넘는 크고 작은 섬, 그리고 그 섬들에 사는 2백30여개의 종족(어떤 사람은 3백여개라고도 한다), 가톨릭,개신교,이슬람교,불교,힌두교 등의 복잡한 종교에 따른 상호간의 갈등 등이 있는 문제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저 단편적인 외신란의 소식만을 접한 채 인도네시아의 내정에 이러쿵 저러쿵 얘기할 뿐이다. 그리고 비단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의 대부분의 저개발국 인도,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시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아체가 옳다. 그러니 독립을 지지한다"거나 "인도네시아의 입장이 이해된다. 그러니 군사행동이 정당하다"는 따위의 섣부른 판단을 하지 못하겠다. 독립을 원하는 소수민족이 어디 아체 뿐인가?, 중국에게 억압받는 티베트, 인도의 카슈미르지역의 힌두교 정권하의 다수 이슬람교도, 영국의 지배를 받는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한 북아일랜드 등도 있다. 서양이나 동양이나 분리독립을 원하는 다양한 계층의 여러 인종과 지역이 있다.
현실과 이상은 분명 괴리가 있다. 다만 아체의 문제가 인도네시아 군부와 재선을 노리는 현직대통령의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른 문제가 되어 애꿎은 민간인이 피를 요구하는 일은 중단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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