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2억2천명. 1인당 GNP 7백불. 절대빈곤 인구 3천8백만, 그 중 1천2백만의 기아선상의 빈민. 아시아 국가부패지수 1위. 수도 자카르타 시내의 도로변에서 구걸로 생계를 이어가는 13세 미만의 아동의 숫자 1만1천명.
이게 오늘의 인도네시아의 현실이다. 처음 자카르타를 방문했던 3년전 처음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서면서 매우 놀랐다.시내는 마치 폐허와 같았다. 군데군데 98년의 폭동의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방치된 수많은 건물들, 곳곳에 중단된 건물들, 길거리에 아무렇게 쓰러져 자는 사람들, 그리고 밤에는 가로등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아 어디나 어두운 시내.
한 국가의 수도라고 하기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다. 지금도 자카르타의 풍경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큰 길가의 건물 뒤에는 여전히 빈민들이 초라한 판잣집에서 비를 겨우 피하고 있고, 건물 처마 밑에는 어디에나 간단한 의자에 불편하게 웅크리고 자는 많은 도시 빈민들이 있다.
어제는 도련님(내게 골프를 가르치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노력한 친구, 지금 그는 결국 내게 골프 가르치길 포기했다)과 사업얘기 하다가 엉뚱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 친구 한달 수입은 이 나라 도시근로자 수입의 30배가 넘는다. 비록 아버지의 집에서 함께 살지만 그 집은 2층의 건평만 3백평이 넘는다. 그 집에 작은 유리 온실이 있는 뒷마당이 있다는 것은 나도 어제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여름휴가는 푸켓을 하거나 말레이지아의 크루즈 여행을 떠난다.
이 정도면 결코 이 나라에서 평범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기준으로 봐도 재벌은 아니라도 부자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죽어도 자신은 '중산층'이란다.
어제 물건값 흥정하느라 반나절을 입씨름하고도 결론이 나지 않아 결국은 그의 집에 가게 되었다. 저녁이나 먹으려고..
“너 부자잖아, 이런 큰집에 살면서, 자꾸 깎아달란 소리말고 우리의 가격을 받아 들여라.”
이런 문제로 옥씬각씬하다 결국 얘기가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내가 저를 부자라고 하는데 이 친구 자신은 죽어도 중산층이라는 거였다.
“야, 무슨 중산층이 하녀를 3명이나 두고 아버지하고 두 식구가 살면서 어떻게 차가 2대나 있냐?”(참고로 이 나라의 차 값은 한국보다 거의 2배가 비싸다. 전부 수입차인데 수입관세가 50%란다. 그러니 다른 세금을 더한다면 얼마나 많은 세금을 물고 차를 사여 하는지 상상을 해봐라. 한국의 경차 비스토도 여기선 세금 뺀 딜러의 판매가만 한화 1천2백만원이 넘는다, 10년된 중고고물차도 4백백만원이 넘는 나라이다.)
"너 정말 부자를 못 봤구나. 난 정말 중산층이야."
결국 이 친구는 자신의 말을 증명하기 위해 나를 자신이 말하는 부자들의 동네로 끌고 갔다.
동네를 빙 둘친 높은 담장, 동네 입구에서 일일이 차량을 확인하는 사설경비업체, 센서에 의해 작동하는 가로등, 수시로 돌아다니는 사설경비업체의 순찰차량.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는데, 유럽 풍으로 지어진 학교만한 3층집이 가정집이라는 데야 할 말이 없었다. 집안에 수영장을 설치한 집도 흔하단다. 집 마당에 풀 장을 만든 게 아니라, 집안에 실내수영장을 설치한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서초동의 집들은 완전히 국민주택이더군. 강남 아파트는 판자 집이고…
그리고 집 뒤편의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운하에 즐비하게 늘어선 보트들, 우리나라 낚시배만한 크기에서부터 주문진항의 오징어잡이 배만한 것까지 전부 알루미늄과 FRP로 건조된, 헐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옴짐한 그 보트들은 한 척의 가격이 싼 것은 10만불, 비싼 것은 70만불까지 한다고 했다. 보통 한 채에 50만불쯤 하는 이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 중국계 주민들이 그 소유주이고, 그들 중국계는 허름한 여러 채의 소매상을 시내곳곳에 가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달 수입 1백불의 현지인들이 이런 50만불짜리 집을 사기 위해서 도대체 몇 년을 쓰지도 않고 저축만 해야 하나? 아니 공짜로 주어진다 해도 유지비나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런 집과 그곳에서 희희낙락하며 자신의 성공을 스스로 만족하는 사람을 보면서 난 부러움이 아닌 분노를 느꼈다.
'저들은 단돈 5불이 없어서 아파도 약 하나 마음 놓고 사먹지 못하는 다른 1천만이 넘는 자카르타시민의 고통을 알까?' '12평짜리 작은 판자 집에서 9명의 식구가 부대끼며 열대의 밤을 지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알까?' '한달 10불의 학비가 없어 초등학교교육을 중단하는 아이들이 있는 판에, 그 집의 잔디를 키우기 위해 쓰이는 물값은 얼마만한 큰돈인지 이해는 할까?'
98년 폭동때 현지토착민은 중국계 주민들의 가게를 약탈하고 주택을 불지르고 길거리에서 차량을 부셨다.
'그게 전부 토착인니인들이 단순히 난폭하기 때문이었을까?' '그 50만불짜리 집과 10만불짜리 보트를 소유한 중국인들은 아무 잘못이 없을까?'
국가는 하나의 공동체이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배려를 가난한 이들에게 해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곳의 중국인들은 50만불 짜리 주택에 살면서 자신의 경제적 성공에만 만족해 했지, 가난한 이들은 멸시해왔었다.
결국 98년의 폭동 당시 현지 토착 인도네시아인은 그 소외감을 폭력으로 복수했다. 그 후에 그곳의 중국계가 도출해낸 결론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지아로 재산을 빼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회공동체와 공존하는 방법이 아닌 타인을 배척하고 자신의 고립화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인니의 부자들은 98년의 폭동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 것이다.
다시 98년과 같은 폭동이 일어난다면 그 집들은 다 불타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사설 경비원들이 날고기는 무술의 고단자들이라 해도 성난 수천의 폭도를 무슨 재주로 막을 수 있겠나?
여기는 내년에 새 대통령 을 뽑는 선거를 한다, 직년 가을부터 선거문제로 정치권은 혼란스럽다. 노조는 지난 3년간의 2백60%의 임금상승이라는 그 전무후무한 성과에도 만족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국가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이 뇌물을 챙기기 바쁘다. 정치인은 이 모든 사실을 알지만 제일 급한 것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라 상관 않는다.
한국에서 부자들이 더욱 부자가 되기 위해 서민들을 무시하는 행태를 일삼는 모습들이 신문에 나온다. 뭐 하긴 있는 사람들에게 술값 7백만원이 돈이겠나?, 7천만원도 대가성 없이(?) 주고 받는 것이 재벌과 정치가들인데...
그러나 그렇게 '자신들만의 세상'을 한국이란 사회 안에 다시 만든다면 그들은 결국 일반국민들의 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도 인니의 중국계처럼 대가를 치루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그 부를 이루었다고 강변하지만, 그들의 시작은 일반 서민들과 달랐다, 출발점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었겠나?
여기의 부자들도 98년 폭동 때 자신들의 집이 불타고 사업장이 강탈 당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한국의 부자들도 예상치 못한 일이 그들에게 일어날수 있다. 당신들의 그 위대한 부도 결국은 한국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들은 그 공동체를 붕괴시키려 한다. 공동체가 붕괴된다면 당신들은 안전하리라 생각하나?
여기의 부자들이 말레이지아와 싱가포르에 재산을 빼돌렸듯이 당신들은 L.A에 빼돌린 재산으로 여생을 살겠다는 생각이라면 내 말은 잊어라. 그러나 미국에서도 당신들은 결국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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