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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종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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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레 종처럼

[반전평화 릴레이 글] 부끄러운 나라의 부끄러운 국민

***에밀레 종처럼**

아침이면 연초록빛 모자를 쓰고 긴 막대에 초록 깃발을 매달아 집을 나섭니다. 여린 눈망울의 아이들을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로부터 지켜내려 깃발을 붙잡고 섰습니다. 허리춤 아래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도로를 건너 교문으로 들어설 때까지.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사람이 존엄한 까닭을 눈치 챕니다. 어린 아이가 한 뼘 자라는 데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로움과 염려와 따스함이 필요한 지를. 그 사랑의 질량으로 온몸을 가득 채우고서야 사람은 비로소 세상에 우뚝 서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그토록 소중한 이 땅의 아들이 멀고 낯선 이국에서 울부짖던 소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 돋은 태양이 세상을 비추는 동안, 당신의 목은 베어지고 갈라진 틈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 사막을 적시는 동안, 당신 조국의 텔레비전에서는 파병강행이란 죽음의 선고와 몸이 아름답다는 여배우의 방자한 웃음이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공기 중에 떠다니던 음모의 냄새, 피의 비린내…….

어린 아이를 녹여 종을 만들던 전설 속의 낡은 습속이 21세기 내 조국에 남아있었습니다. 국익이라는 비열한 명분의 쇳물에 당신을 내던진 채 조국은 귀 막고, 눈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또 다시 젊은 아들들을 전장에 보내려 합니다. 아름다운 청춘의 목숨 대신 얻어지는 국익으로 온 국민이 한 끼 육식을 먹은들 우리가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어린 생명을 돌보느라 초록 깃발을 들었던 어머니들은 이제 촛불을 듭니다. 우리는 오욕과 처참한 죽음이 기다리는 전장으로 사랑하는 자식을 보낼 수 없습니다. 길을 나선 가족이 폭발하는 기차에 올라탈까, 가슴 졸이는 테러 대상국의 어머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오늘의 이라크가 내일의 북녘 땅이 되었을 때, 세계 어느 나라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부끄러운 나라의 부끄러운 국민이고 싶지 않습니다.

먼 사막의 모래바람 속에서 울부짖던 당신의 절규는, 아니 이라크 무고한 민중의 아우성은 우리들 가슴에 남아 언제까지고 울려 퍼질 것입니다. 에밀레, 에밀레, 울어대는 종소리처럼 나는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살고 싶다…….

***작가 소개**

소설가, 경기 여주 출생. 2000년 계간 '내일을 여는 작가'로 등단. 작품으로 '치어들의 꿈', '물 밑에 숨은 새', '자정의 불빛' 등이 있음.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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