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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아이가"…우리에게 '친구'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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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아이가"…우리에게 '친구'는 무엇인가?

곽한주의 '대중영화 읽기' <5> '친구'

탁월한 대중영화는 1년에 한두 번 극장을 찾을까 말까한 사람들까지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힘을 지닌다. 2001년 개봉된 <친구>가 그런 영화였다. 이해관계를 초월한 친구 관계를 향수 어리게 재현함으로써 엄혹한 IMF 한파를 거친 한국인들, 특히 중장년 남성들에게 크게 어필했고 영화 흥행기록을 다시 썼다.

<친구>의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를 밝히기 위해서 이 영화의 이원적 구조와 그 효과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곽경택 감독이 자신의 친구들을 모델로 했다는 <친구>는 뚜렷이 구분되는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전반부의 성장영화와 후반의 깡패영화가 그것이다. 전반은 과거의 어린 시절 이야기고 후반은 깡패 간의 숙명적 대결 이야기다. 이 둘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스토리 시간상의 갭을 메워 주는 상택의 보이스오버이고 실질적으로는 '친구'라는 개념이다.

전반부는 또래 4명-상택, 준석, 동수, 중호-이 어린 시절을 함께 겪으면서 친구로 자라나는 모습을 상택의 시점에서 꼼꼼히 그린다. 동네 골목을 지나며 연막을 뿌리는 소독차, 그 뒤를 졸졸 따라 다니는 아이들을 보여주는 오프닝 장면부터 바다에서 타이어 튜브를 함께 타며 "조오련과 바다거북의 헤엄치기 시합"을 두고 말싸움을 하는 장면, 그리고 단체관람 극장에서 벌어지는 패싸움에 이르기까지 1970~80년대 부산을 무대로 우리의 기억에 잠겨 있을 법한 과거의 디테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건져 올린다.

꼭 좋아서가 아니라 지금은 사라져서 아련하게 그리운 그러한 것들이다. 이것들은 당시 과거를 전체로서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또는 일부로 떼어내 현재의 우리에게 결여된 것을 채워주는 것으로 제시된다. 전형적인 노스탤지어적 시선(nostalgic gaze)이다. 이것이 "추억의 노를 저어 기억 속의 섬들을 찾아가 본다"는 오프닝 장면 상택의 보이스오버가 의미하는 것이다.

이처럼 따스하게 그려지던 네 친구의 과거는 이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하거나(준석과 동수) 졸업하고(상택과 중호) 각자의 길로 흩어지면서 온기를 잃는다. 대신 마초적 남성성이 지배적 무드가 된다. 왜냐하면 이제 영화는 노스탤지어 전략에 바탕을 둔 성장영화의 틀을 거두고 준석(유오성 분)과 동수(장동건 분)의 대립에 초점을 맞춘 깡패영화의 틀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준석과 동수가 각각 라이벌 깡패로 성장, 대립하는 과정이 핵심 내러티브가 된다. 그 중에서도 준석과 동수의 기싸움이 후반부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영화는 어린 시절 친구였던 이 둘이 필연적으로 충돌과 파국의 코스로 향하는 과정을 솜씨 있게 보여주며 관객을 극적 긴장감으로 몰아넣는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동수 살해 장면을 보자. 상택이 미국 유학을 떠나는 날 준석은 이제 라이벌 조직의 중간 보스로 큰 동수를 만난다. 그 간의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동수에게 하와이로 도피하라고 권한다. "니가 가라, 하와이." 잠시 침묵한 뒤 동수가 천천히 이 말을 내뱉을 때 파국의 예감은 절정에 달한다.

물론 영화는 관객의 이런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잠시 뜸을 들이던 준석은 부하들에게 동수를 살해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뒤늦게 상택을 배웅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은 동수는 살롱을 나오다 대기하던 준석의 부하의 칼을 맞는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길가에 쓰러진 동수가 "많이 묵었다 아이가. 그만 해라"라는 명대사를 날리며 죽어가는 모습은 1990년대 중장 깡패영화가 끝내 성취하지 못했던 깡패의 신화화를 단숨에 이뤄낸다.

여기에다 이런 스토리가 허구가 아니라 사실이었다는 데에야 관객의 감정은 고조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이렇게 보면 전반의 성장영화 부분은 후반 준석-동수의 대결을 드라마틱하게 보이도록 하는 수단으로 쓰인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볼 만도 하다.

<친구>는 장 루이 코몰리와 장 나르보니가 "카테고리 e"로 분류했던 비균질적 텍스트(incongruous text)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친구 관계 위에 조직폭력 세계의 비정함을 올려놓고 신화적 질감을 부여함으로써 우정이 조폭 세계의 논리에 희생된 듯이 그리지만, 다른 한편 준석-동수의 우정이란 그리 단순치 않은 것임도 암시한다. 이전의 권력 서열 관계, 그들을 조폭 세계로 내모는 가정 환경이나 학교 등이 배경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삶의 현실이 친구 사이를 갈라놓고 친구를 죽이게 만들었다고 속삭인다. 그럼에도 적어도 화면 위에서 현실은 노스탤지어의 필터를 거쳐 따사롭게 그려지거나 단편적으로 스치듯 재현될 뿐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 대신 친구 간의 살인이라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정서적으로 착취하는(exploit) 데에 중점이 놓인다.

이렇게 보면 <친구>는 체험/기억으로 시작해서 풍문/신화화로 끝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상택과 준석이 핵심적 인물로 나오는 전반부에서 그토록 풍부하고 정감 있었던 세부 묘사는 후반부 준석-동수로 영화의 초점이 옮겨가면서 찾아보기 어려워진다. 이는 깡패란 모두 고만고만해서 그들의 삶이 실제로 그렇기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감독의 원체험이 없는 부분이어서 그러한지, 또는 의도적으로 깡패를 신화화한 때문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이들을 일반적 깡패영화 주인공과 구분해주는 것은 부산 사투리에 실린 대사다. 한국 영화에 사투리를 되살린, 그래서 한국에는 서울 아닌 다른 지역도 있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언한 공로는 쉽게 잊히지 않을 것이다.

<친구>는 우정을 다뤘으되 우정에 대해 성찰하는 영화는 아니다. 우정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혐의를 벗기 어려운 것은 영화 속에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전체 맥락에서 그것이 어떻게 보이는가와 관련된다. 우정을 환기하긴 하지만 나의 우정을 남의 우정보다 우위에 놓는다. 그럼으로써 우정은 보편적 가치라기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가치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에게 우정이란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준석-상택 간의 지속적인 우정보다도 준석-동수의 친구 관계(애증 관계)의 변증법이 더욱 흥미로웠다. 준석과 상택의 우정은 공생, 상보, 기브 앤 테이크 관계에 가깝다. 준석에겐 똘똘한 상택이 밝은 세계로의 통로와 같은 역할/의미였을 것이고 상택에겐 준석의 주먹이 든든한 '백'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석은 동수를 친구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동수가 줄 수 있는 것은 준석이 이미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동수는 준석뿐만 아니라 상택, 중호도 멀리 한다. 그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어둠의 자식'이 되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준석이 상택에게 날리는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대사가 공허한 수사로 다가오는 반면, 동수가 준석에게 한 마디 한 마디 밀어내듯 하는 말 "내가 니 시다바리가"에선 이면의 진실이 감지된다.

어쨌거나 <친구>는 전반의 성장영화의 노스탤지어 전략으로도, 후반의 깡패영화의 신화화 전략으로도 대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여기서 성공이란 대중적, 상업적, 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성공이다. 극장을 나선 많은 관객들이 옛 친구와 동창을 찾아 술잔을 기울이며 "우리 친구 아이가"를 외쳤다는 풍문은 이 영화가 실어 나른 '친구 이데올로기'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인지는 동수의 처절한 말로가 단적으로 보여주는 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술잔을 부딪치고 어깨동무를 했다는 것은 우리가 그러한 '친구'가 필요한 시대에 산다는, 그러한 친구가 존재하기 어려운 시대에 산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니었을까. 우리가 갈망하는 것은 지금 여기에 부재하는 것이지, 이미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니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친구>의 '친구' 개념이 이데올로기적이란 점은 임순례 감독의 1996년 작품 <세 친구>와 비교해보면 뚜렷이 드러난다. <세 친구>의 주인공 3명은 고교를 졸업한 단짝들. 그러나 이들에겐 <친구>의 주인공과는 달리 드라마틱한 점이 하나도 없다. 각기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삶의 전선으로 내몰리거나 군에 입대하면서 현실 속에서 마모되고 스러져간다. 그들에게 "우리 친구 아이가"라는 말이 별다른 의미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물론 <친구>보다 우리 현실과 더욱 닮은, 그래서 '영화 같지 않은' 영화 <세 친구>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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