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설맞이 생협 이용기를 마련했다. 생협에 대한 오해를 깨고, 생협 활동을 하면서 바뀌는 것들을 알기 위해서다. '덜 소비하고 사는 방식'으로 일상적인 실천을 한다는 명인 씨는 "생협을 이용하자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생각이 바뀌면서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편집자>
설이 코앞이다. 나는 시댁에 가는 일이 별로 싫지 않은데, 명절은 싫다.
우리 식구들은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웬만한 집안일은 할 줄 아는 편이고,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 일은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며, 대체로 일상적인 모든 일은 네 일 내 일 따로 없이 시간 있는 사람이 하는 편이다. 시부모님이나 시동생 가족, 그리고 시누이 가족이 함께 모여도 이런 형편은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데 명절만은 좀 다르다. 둘째 셋째 작은 댁 어른들, 사촌 시동생들, 동서들, 조카들까지 꽤 많은 친척들이 모이는 명절에는 남·여·애·어른 구분 없이 함께 일하고 서로 돕는 우리 집은 아주 별난 집안이 되어버린다. 외국에 사는 시동생 가족과 자기 시댁에 가느라 먼 친정엔 시누이 가족이 못 오는 경우가 많으니, 오히려 작은 댁 식구들이 훨씬 더 많아져서 대세는 기울고 분위기는 완전 주객전도다. 부엌은 당연한 듯이 여자들 차지가 되고 남자들은 손 하나 까딱 안 한다. 평소와 전혀 다른 분위기에 오히려 쩔쩔매는 것은 내 남편 하나다.
설 선물로 '천연염색 스카프' 만들기, 생협 아니면 엄두도 못 냈을 것
그런저런 명절 생각을 하던 참에 희권이(작은아이)가 때마침 학교에서 우리 옷 한 벌을 지어왔다. 나는 아이가 지어온 옷을 입고 입이 함빡 벌어져 패션쇼를 하는 것을 보다가 어릴 적 받던 '설빔' 생각이 났다. 요즘 애들은 새 옷이 흔해서 설빔이 따로 있을 필요도 별로 없지만, 맛난 음식도 먹을 수 있고 새 옷 한 벌을 얻어 입을 수 있어 명절이 참 좋았던 어린 시절 생각. 나는 올해 처음으로 설빔을 지어보기로 했다. 작은아이는 제가 만든 옷이 있으니 남편 것, 내 것, 큰아이 것을 짓는다. 평소에도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외출복으로도 손색없는 우리 옷 한 벌이 크기에 따라 3만 원 내외로 만들어졌다.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가서 친척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싱글벙글하는 표정은 아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
그러다가 설 선물 생각도 났다. 외국에 살고 있는 시동생 가족도 오고 그 덕분에 시누이 가족도 온다니 올 설에는 오랜만에 남편 형제 가족들이 다 모이게 됐다. 그럼, 작은 댁 식구들이 많더라도 명절 분위기가 예년과는 좀 달라지겠지. 나는 명절마다 특별히 수고해 온 여자들에게 줄 선물을 생각해냈다. 그리고 염색용 스카프를 주문한다. 추운 계절이니 빠알간 소목으로 물들이면 좋겠다. 빨간색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매염제를 바꿔 보라색도 몇 장 준비해야지. 열 명에게 줄 천연염색 실크 스카프가 재료비로 8만 원 정도 들었으니 나름대로 저렴한 비용으로 받는 사람 기분 좋고, 주는 사람 뿌듯한 선물이 되면 좋겠다.
| ▲ (양쪽) 외출복으로도 손색없는 우리 옷 한 벌이 크기에 따라 3만 원 내외로 만들어졌다. 자기가 만든 옷을 입고 가서 친척들에게 자랑할 생각에 싱글벙글하는 표정은 아이나 나나 다르지 않다. / (가운데) 열 명에게 줄 천연염색 실크 스카프가 재료비로 8만 원 정도 들었으니 나름 저렴한 비용으로 받는 사람 기분 좋고, 주는 사람 뿌듯한 선물이 되면 좋겠다. ⓒ명인 |
설 선물로 옷을 직접 만들기가 번거롭지 않을까? 재주 있는 사람만 만드는 거라고? 고백컨대 나는 손재주도 없었고 고등학교 때까지 가사 시간을 제일 싫어했었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느리게 사는 삶에 익숙해진 것이다. 가장 큰 계기 중 하나는 생협을 이용하면서 만들어졌다. 만약 생협 조합원이 아니었다면 설빔으로 옷을 지을 생각도, 선물로 천연염색을 하려는 수고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생각이 바뀌고 나니 조그마한 것도 내 손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생협은 불편하고 비싼 것?…"얻는 게 훨씬 많더라"
우리 가족은 근처에 재래시장이 없는 아파트촌에 살면서도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다. 농수축산물은 물론 두부·식용유 등의 가공식품 등 먹을거리는 물론 각종 세제, 화장품까지…, 지금은 우리가 사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생활재를 생협에서 구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작은 아이의 아토피가 문제였다. 어쩔 수 없었다. 아이는 인스턴트 식품과 공장 과자를 끊었고, 나는 생협의 조합원이 되었다.
처음엔 가끔씩 희권이에게 눈을 흘기며 구시렁거렸다. '친환경' 이름만 붙어도 비싸서 겁나! 게다가 요즘은 24시간 문 여는 마트도 흔한데 일주일에 한 번 공급? 직장 다니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는 건데? 매장은 또 어디 붙은 거야? 고기 싫어하는 엄마는 김치찌개에 뭘 넣어 먹으라고 참치통조림도 없는 거야? 과일은 또 왜 이렇게 한꺼번에 많이씩 사야하는데?
대형마트의 '던져넣기'와 생협의 '구하기'
그런데 생협에서만 장을 보기 시작한지 몇 달이 지났을 때였다. 당연히 한 달 생활비가 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어라? 이건 뭐지?' 그때부터 꼼꼼히 따져보기 시작했다.
첫째, 생협의 생활재가 생각만큼 비싸지는 않더라니~. 물론 생협 생활재가 조금씩 비싼 것도 꽤 많다. 하지만 뜻밖에도 어떤 것은 일반 마트랑 비슷하고, 심지어 어떤 것은 일반 마트보다 싸기도 하다. 거의 다 '친환경'인데도 말이다. 가령, P사의 국산콩두부가 3,600원인데 D생협의 우리콩두부는 2,400원이라는 사실~!
둘째, 나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을 사지 않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만 공급을 받으니 꼼꼼하게 장보기를 계획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다 가격비교를 해보지도 않고 친환경 물품이 비쌀 거라고 지레 겁을 먹었으니 쓸 데 없는 것까지 살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때부터였을까? 간사하게도 한 달 생활비 계산을 해보고 나서야? 아토피가 있는 아이에게 흘기던 눈이 이제는 예전의 나를 찌르게 되었다.
대형마트에서 주로 장을 볼 때 우리집 장바구니엔 이런 것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1+1이어서 던져 넣은 상품들, 기획상품이라 평소보다 좀 싸다고 던져 넣은 상품들, 재미삼아 시식코너를 기웃거리다가 마트 노동자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던져넣은 상품들, 무언가를 끼워주는 신제품이라고 던져넣은 상품들…, 알다시피 그런 건 대개 냉동식품이거나 가공식품들이고, 막상 장바구니를 비우고 보면 꼭 필요했던 것은 많지 않다.
이렇게 쓰고 보니 재미있다. 나에게 생협과 대형마트의 차이는 '던져넣기'와 '구하기'인가보다. 언제고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물건들이야 깨질 것이 아닌 담에야 장보기 카트에 던져넣게 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들, 그리고 때로는 필요에 따라 때로는 생산자의 사정에 따라 계획적으로 주문하고 공급받는 물품들은 던져넣기엔 귀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얘기지만 귀한 것은 아끼게 된다. 그리고 거기에선 관계가 생긴다. '상품과 소비자' 사이에선 사라져 유령이 되어버렸던 관계들. 내게 필요한 귀한 생활재를 생산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공급해주는 사람들….
나는 어느새 날씨에 따라 생산자 걱정을 하게 되었고, 또 직접 만나 생활재를 구하면서 생활재 공급자나 매장 지기들을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소비자이기 전에 조합원인 것이다. 여전히 생협의 이용은, 특히나 직장이 있는 사람에겐 더욱이 불편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가 감수해야할 불편이란 대개 느리게 살아야하는 일을 뜻한다. 생협 조합원이 되면서 그것을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설빔으로 옷을 지을 생각도, 선물로 천연염색을 하려는 수고도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습관이 바뀌면서 생각이 바뀌었고, 생각이 바뀌면서 생활이 바뀌기 시작했다.
재래시장 이용하는 시어머니, 손자에게 상처(?)받다
그러나…, 한동안 아이들을 돌봐주시느라 시어머니가 살림을 해주실 때의 일이다.
[남편] "엄마, 이 고기 어디서 샀어?"
[시어머니] "어디서 사긴~ 생협에서 샀지이~" (더듬거리며)
[남편] "또 그냥 정육점 가서 샀지?" (눈을 흘기며)
[시어머니] "아니라니까~ 고기가 어떻길래 그래?"
아이는 '아빠, 귀신이다~' 하는 표정이지만, 어머니는 매번 들키시면서 또 매번 속이시다 남편에게 한 소릴 들으신다.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는 우리 집은 아직, 이런 어머니가 명절 장보기의 주도권을 갖고 있다. 평소 우리 어머니는 대 여섯 정거장 정도는 당연히 걸어 다니신다. 바로 앞에 마트 놔두고 100원을 아껴 더 좋은 두부를 사신다고 먼 재래시장으로 가시는 분이고 로션은 샘플만 얻어 쓰시는 분이다. 선물로 들어온 세 겹 화장지는 장롱 위에 아껴두셨다가 자식들이 올 때마다 차에 실어주시고, 당신은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얻어온 업소용 화장지를 쓰시는 분이다.
어머니는 칠십 평생을 그렇게 사셨다. 그렇게 사셔서 자식들을 공부시켰고, 그렇게 사셔서 집이라도 장만하셨다. 나는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형편이지 않느냐고, 설득도 해보고 생협 자랑도 해보고 때로는 희권이의 아토피를 핑계로 협박도 해본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어머니에게 생협은 너무 멀다. 이번 설에도 어머니는 재래시장에서 제수를 장만 하실 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작년 추석 때였나 보다.
[시어머니] "이것 좀 먹지 왜 안 먹어? 할머니가 너 오면 준다고 부러 사다가 한 거여."
[희권] "싫어." (그릇을 밀쳐내며)
[시어머니] "왜 맛이 없어?"
[희권] "생협 것도 아니잖아~"
제가 좋아하는 것이면 몸에 나쁜 것이라도 기회만 있으면 먹고 싶어하는 녀석이 제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은 생협 것이 아니라는 핑계로 밀쳐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아차, 싶었다. 나는 희권이가 밀쳐낸 음식을 빼앗아 내입에 넣으며 말한다. "수돗물이라도 아쉬울 땐 얼마나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 되는데, 그런 식으로 생협 것 타령 하려면 앞으로 너도 생협이고 뭐고 없어~!!!"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가리는 것들…
이런 어머니를 두었기 때문일까? 나는 모 생협의 슬로건인 '윤리적 소비'라는 말이 싫다. 생활협동조합 운동이라는 게 제 식구 좋은 것 먹이자고 시작한 게 아닌 건 자명할 텐데 생협도 점점 소비자 중심이 되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나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들이 대형마트의 진실에 눈 떴으면 좋겠다. 그래서 소비자 중심이 아니어도 생협 조합원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생협이, 우리 어머니 같은 사람들이 가깝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친정에 올 때마다 언제나 그랬듯이 이번 설에도 시누이가 들고 오는 설 선물은 온통 메이드인 생협일 거다. 나는 내가 만든 설빔을 입고, 내가 소목으로 염색한 설 선물을 들고 시댁에 간다. 그리고 나는 우리 어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재래시장으로 갈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설엔, 모처럼만에 종갓집 주도권을 되찾아 남녀노소 안 가리고 하하호호 웃으면서 함께 일하고 함께 먹을 거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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