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사회와 김치와 분단 너머
재일동포 사회 조사를 목적으로 하여 그들이 주최한 여러 행사에 참관하다 보면, 해외에서의 지친 삶에 위로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학교가 주최하는 행사에 참관하면 일석 이, 삼조로 흥겨워진다. 학생들의 예쁜 모습을 보는 것도 행복하고, 재수가 좋으면 귀한 김치를 듬뿍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주에도 조선학교에서 주최하는 운동회에서 그런 자그마한 행운을 얻을 수 있었다. 교토조선 중·고등학교에서 개최된 교토조선 제1, 제2, 제3 합동운동회가 바로 그것이었다. 3개 학교라 해봐야 학생 수 190명 정도. 소자(少子)사회의 영향이나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 문제나, 재일동포의 일본 사회 동화 문제 등으로 인해 학생 수가 과거 10년 전에 비해서도 1/3 이하로 줄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서로 간의 친선 도모와 3개교 통합 가능성을 전망하며 운동회를 하고 있었다. 운동회 덕분에 조선 중·고등학교 모습도 구경할 수 있었다. 학교 강당에는 교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기가 걸려 있었다. 얼마 전에 방문한 교토국제학원(구 교토한국 중·고등학교)의 모습이 대비되어 연상되었다. 그 학교에는 교기와 함께 대한민국기가 걸려 있었다.
| ▲ 교토조선학교 운동회(2011. 6. 5) ⓒ김귀옥 |
이 모습에서 일차적으로 느끼는 것은 한반도 분단이다. 남북분단의 그림자는 교토 내 동포 사회에도 학교들에도 길게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좀더 들어다 보면 중요한 공통성이 있다. 두 학교 어디에도 일본의 히노마루가 걸려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일본은 2차대전 패전 이후 한동안 국기·국가를 법률로 지정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99년 '국기는 히노마루, 국가는 기미가요로 한다'는 국기국가법을 제정했다. 아무튼 국기 앞에서 국가를 부르는 일이 일본 왕과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일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현재 이 일은 일본사회에서 논쟁거리로 잠복해 있다.
국적과 정대세
또 하나의 공통성은 두 학교 모두 재학 중인 학생들의 국적이 단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교토국제학원의 경우 이미 2003년 12월부터 일본의 교육기본법 1조에 의거하여 '한국'을 '국제'로 바꾸어, 크게 말하면 일본 문부성 인정의 일본의 국제학교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 학교는 '한국적'을 가진 재일동포뿐만 아니라, '일본적' 동포나 일본인, 뉴커마(new comer) 등 국적 구성이 다양하게 되었다.
이 점은 조선학교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략 조선학교의 1/3은 조선적을 가진 동포들이지만, 1/3은 한국적 동포, 1/3은 일본적 동포라고 한다. 적은 수이긴 하지만, 뉴커마들도 있다. 잘 알려졌듯 축구 스타인 정대세는 한국적을 가지고 있으나, 아이치현의 조선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형인 정이세는 작년 3월까지는 충주 험멜 축구단의 골키퍼로도 활약한 바 있다.
말이 나왔으니 정대세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 지난 5월 28일에는 현재 독일 보훔 팀에서 뛰고 있는 정대세가 일시 일본을 방문하여 교토강연회에 참가했다. 수많은 팬이 운집했고, 상당수는 아이들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했다.
뿌리는 한국 경상북도, 태어난 고향은 일본 나고야, 조국은 조선
그에게 조선은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일차적으로는 북조선을 의미하지만, 원천적으로는 분단되지 않은 통일된 조선이라고 한다. 이런 생각은 많은 재일동포들에게서 발견되고 있다.
| ▲ 교토강연회의 정대세. ⓒ김귀옥 |
이제 재일동포 사회의 국적 구성만으로도 더이상 '단일성'을 찾기 어렵다. 또한 재일동포의 활동 반경이 1, 2세대와 달리 재일동포 사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 보니, 재일동포 간의 결혼은 앞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오죽하면 어떤 1세 동포 할아버지는 손자며느리는 꼭 재일동포로 해달라고 유언을 남겼으랴. 여러 재일동포들의 국적가계도를 그리다 보니, 국적의 다양성은 한눈에 나타나고 있다.
근대 국민과 글로벌시대 시민으로 산다는 것
한국이나 북한에서는 민단이나, 총련으로 분단적 사고를 하고 있고, 일본의 동포 사회에서도 공식적으로 두 단체는 냉전적 경쟁상태에 여전히 빠져 있다. 2000년 6∙15 이후 공동행사가 많았으나, MB정권 출범 이래로 다시 도루묵이 되었다고 할까. 그런데 그들의 생각에서 발견되는 것은 대한민국 국적이건 조선적(朝鮮籍)이건 어떤 영주권을 가졌더라도 차별당하고 있는 일본 사회의 문제, 설령 일본적을 취득한 경우에는 '동화'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부정당하고 마는 일본 사회에 대한 회의감이다. 중국의 경우, 대부분의 조선족이 중국적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 민족 정체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이다. 21세기에도 여전히 1868년 메이지유신 당시의 '국민' 개념에 고착된 일본 사회는 글로벌 시대에서 후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시하고 있다.
지난 4월 4일 자 <교토신문>에 따르면 미야기현의 센다이시는 말할 것도 없고, 후쿠시마현의 고리야마(郡山)시에 있는 조선학교 등에서도 국적 불문하고 지진 피해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학교 문을 개방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이 전해지자, 일본 전국 각지에 흩어진 재일동포들은 그들 학교에 모인 피난민들이나 일반 재난민들을 돕기 위해 성금이나 물품을 모으는 일에 앞장섰다. 일본 정부가 가기를 꺼리는 곳에 성금과 물품을 신속하게 전달하기 위해 차를 대절하여 가는 재일동포들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그렇게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같은 사람이고, 같은 시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지진과 방사선 피해는 핏줄이나 국적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인들도 말할 것도 없고, 재일동포들 역시 일본 땅에서 태어나거나 자라고, 공부하고,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고, 세금을 내며,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행하고 있다.
일본 스스로는 특별영주권을 가진 재일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없다고 인식한다. 그것은 실제와 동떨어진 인식일 뿐이다. 어떤 일본인은 재일동포도 이제 일본 사회에서 교사가 될 수 있을 만큼 차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교사의 경우, 일본 공립학교 교사가 되는 데에는 '한국적'을 가졌더라도, 정식 교사가 되기 어렵다. 된다고 해도 기껏해야 '상근 강사'의 자격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인 교사라면 7, 8년이 되면 주임교사가 될 수 있으나 재일동포에게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아, 만년 비정규직 상근강사가 될 운명이다. 그러다 보니, 사정을 모르는 학부모들은 그 교사가 뭔가 문제가 있다고 추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재일외국인 2, 3세라 할지라도 간신히 일본의 공식사회부분에 들어갈 기회가 어렵게 생겼더라도, 입직에서부터 승진 모든 부문에 차별이 존재한다. 국가 공무원의 경우에는 공권력을 행사한다 하여 입직의 기회 자체가 부여되지 않는다. 재일동포 1, 2세대들의 고생은 그랬다고 치더라도, 3, 4세대와 그 후손들의 전망조차 아직도 밝지 않다. 더 이상 재일동포로는 살 수 없고, 귀화, 동화하는 것만이 정답인가? 그것도 다문화, 다민족사회가 추세가 될 이 시대에 말이다.
이런 일본 사회와 100여 년의 재일동포의 차별의 역사를 생각하면서, 한국 사회에 사는 외국인들을 생각해본다. 그들은 한국 사회에서 일하고 세금을 내고 나름대로 의무를 치르고 있으나, 과연 '시민'으로서 안녕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21세기 과연 한 사회의 구성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갖고 산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글로벌 시대, 이제는 국적 불문하고 그 사회에서 부여한 의무를 다하고 산다면 시민으로서 권리를 부여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은 아닌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