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누르며 우는 기자를 보면서는 그 와중에도 '저러다 사진이 제대로 찍히겠어?'하며 쓸데없는 걱정을 했던 기억도 난다. 덕분에 피식 헛웃음이 난다.
김진숙,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눈 주위로 피가 몰리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자그마치 204일이다. 정작 본인은 날짜가 중요한 게 아니라지만, 나는 안다. 아니,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아무도 없는 공중에서 그 많은 낮과 밤을 홀로 맞이하는 일이 얼마나 무섭고 두렵고 외롭고 쓸쓸한 일인 줄을.
그래서다. 김진숙이 기다리는 건 단지 몇 대의 버스가 아닐지 모른다. 그녀가 기다리는 건 어쩜 자기 자신일지 모른다. 아직은 살아서 이승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은 걸 꺼다. 그마져도 없다면, 그마져도 할 수 없다면, 김진숙은 이미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지 모른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음을 증거 할 아무런 수단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건 곧 죽은 사람이니까.
30일, 3차 희망버스는 부산의 김진숙을 만나러 가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러 가는 거다. 마침내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 되는 거다. 우리 모두가 김진숙이 되었을 때 비로소 이 땅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 모두 하나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노동자든 자본가든 다 같은 사람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게 되는 것이다.
송경동 시인을 체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부산시민들 부추겨 마음에도 없는 반대구호 외치게 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 아무리 경찰차벽을 높게 쌓고, 제 아무리 경찰병력을 쏟아 붙는다고 해도 결코 막을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3차 희망버스는 김진숙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만나는 게 아니라 김진숙이 김진숙을 만나는 것이며, 산자들이 살아있음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 모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느새 이 땅엔 수만, 수십만의 김진숙이 살고 있다. 두려워 할 것도 겁낼 것도 없다. 이미 김진숙은 부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도 있고, 서울의 변두리 수퍼마켓에도 있고, 지하철역에도, 버스 안에도, 강원도 산골에도, 충청도에도, 전라도 섬에도, 제주도 강정마을에도 있으니까. 서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을 알 수 있는 내가 너고 네가 나인 세상인 걸. 두려울 것이 무엇이고, 망설일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 ▲ ⓒ프레시안(손문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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