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상반기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였던 ‘언론개혁’ 논쟁에서는 정작 중요한 문제 한가지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바로 언론에 대한 자본의 지배, 즉 광고주 압력의 문제였다. 우리 신문은 세계에서 가장 광고 의존도가 높다. 그것도 거의 대부분이 대기업 광고로 채워지고 있어 우리 신문은 유난히 대기업에 약하다. 90년대 이후 생활정보지의 등장으로 이른바 ‘풀’뿌리 광고’가 일간지에서 사라지면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생활정보지의 성장사를 통해 한국 신문의 생존 기반과 위상을 알아 본다. 편집자
"당연히 보도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파장을 고려해 달라. 이게 공식화되면 다른 기업들도 광고를 끊어버릴 수 있다. 한겨레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귀사 사장이 사원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일인데, 그것을 보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다. 언론계 입소문이 얼마나 빠르냐. 며칠 안 되면 언론계에 쫙 퍼질 텐데 그것을 보도하지 말라는 것은 곤란하다.”
1996년 12월 16일 저녁 10시경, 서울 종로구 신문로 한글회관 3층에 위치한 미디어오늘. 다음날 발행될 신문의 기사 마감을 앞두고 마지막 손질에 바쁜 편집국은 때아닌 손님들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밀고 당기는 입씨름이 계속되고 있었다.
미디어오늘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발행하고 있는 미디어 비평 전문 주간지. 언론계 내부의 비판과 견제만으로는 언론개혁이 어렵다는 판단 하에 대중과 같이 하는 언론개혁을 위한 매체로 1995년 창간됐다.
밤늦게 미디어오늘을 찾은 사람들은 한겨레 김성수 경영기획실장과, 미디어오늘 편집국 간부와 오랜 친분이 있는 한겨레 기자 한 명. 권근술 한겨레 신문 사장이 직접 보냈다는 이들 한겨레 ‘특사’들은 다음날 발행될 미디어오늘에 실릴 한겨레 관련 기사 보도를 재고해줄 것을 거듭 요청하고 있었다.
***미디어오늘을 찾은 ‘특사’들**
한겨레 특사팀은 1시간 여에 걸친 끈질긴 재고 요청 끝에 “한겨레 상황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판단하겠다”는 미디어오늘 측의 ‘결론 아닌 결론’을 듣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한겨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다음날 미디어오늘에는 안기부가 한겨레의 광고 수주를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기사가 1면 머릿기사로 실렸다. 이틀 전인 16일 한겨레신문 사원총회에서의 권근술 사장의 발언 내용에 기초한 기사였다.
권근술 사장은 그날 사원총회에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최근 광고 수주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데 여기에 외부세력이 개입돼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밝히고 “안기부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해 외부세력이 바로 ‘안기부’임을 분명히 했다.
권사장은 “편집국에 이 문제와 관련해 특별취재팀의 구성을 요청해 놓은 상태”라고 밝히고 “(안기부와의) 싸움에 들어갈 경우 상당한 파문이 예상되는 만큼 자금 확보 등 비상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며 한겨레 사원들에게 ‘전시 상황’에 대비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한겨레 사람들에게 이 같은 소식은 ‘충격’이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는 자칫 과거 동아일보 광고 사태와 같은 상황도 우려됐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광고 수주가 격감하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던 한겨레로서는 안기부가 조직적으로 한겨레 광고를 끊도록 유도하고 있다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한겨레가 이상 징후를 포착한 것은 두 달쯤 전인 10월초. 한겨레21 등에 예약돼 있던 광고가 돌연 취소되면서부터였다. 일부 기업체 광고담당 실무자들로부터 “안기부 때문에 광고를 주기 곤란하다”는 말들이 흘러 나왔다. 정부투자기관과 모 대기업 임원도 이 같은 사실을 간접 확인해주었다.
그러나 결정적인 증거는 한겨레도 포착하지 못한 상태였다. 안기부 개입 의혹을 간접 확인해주었던 사람들도 한겨레가 정색을 하고 확인에 들어가자 이를 부인하는 등 안기부의 개입 의혹을 공개적으로 ‘규탄’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한겨레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아직 명확하게 입장을 정리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분명한 물증 없이 ‘의혹’만을 공개했다가는 괜히 다른 광고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었다. 미디어오늘이 보도할 것이라고 알려지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증폭됐다. 권근술 사장의 사원 총회 발언이 성급했다는 내부 비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한겨레 특사들이 돌아간 다음, 미디어오늘 편집국에서는 긴급 회의가 열렸다. 한겨레 사정을 감안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일부 의견이 있었지만 대체적인 의견은 이미 ‘공개된 사실’이라는 쪽으로 모아졌다. 언론계는 물론 관계 기관에서도 하루 이틀이면 다 알게 될 일을 잠시 묻어 둔다고 한겨레에 별다른 ‘실익’이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판단이기도 했다. 기사는 당초 예정대로 내보내기로 결정됐다.
***안기부에 전면전 선언한 사원총회**
96년 세밑에 한겨레를 발칵 뒤집어 놓은 안기부의 광고 탄압 의혹은 그러나 의외로 싱겁게 끝났다. 여러 경로를 통한 한겨레측의 ‘항의’와 청와대측의 ‘접수’로 사태는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당시 김광일 대통령 비서실장은 “정권 차원의 일은 결코 아니라”고 확인하고 “그런 일이 있었다면 다시 없도록 하겠다”는 언질을 주었다는 후문이다.
권근술 한겨레신문 당시 사장은 97년 9월 30일 관훈클럽의 한국언론2000년위원회 초청 간담회에서 아직도 정권의 광고탄압 같은 게 있느냐는 한 참석자의 질의에 이렇게 답변했다.
“지난해 그러잖아도 김현철씨와 송사로 불편한 관계에 있던 터에 노동법과 안기부법 개정을 앞두고 갑자기 예약광고가 취소되는 등 광고가 크게 줄었다. 몇몇 기업을 통해서 들려오는 얘기도 심상치 않아 여러 채널을 통해 대통령에게 항의했다.
다만 한겨레와 안기부의 갈등이 알려질 경우 우리처럼 취약한 자본구조를 가지고 있는 신문사로서는 큰 어려움에·처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이 컸다. 그리고 서너 달 후 대체로 일이 가라앉았다. 아직도 공식기구가 그랬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와 관련된 집단이 그렇게 접근한 사례가 아닌가라고 생각된다.”(프레시안 9월 25일자 <언론개혁 위한 한국언론2000년위원회 간담회 기록 전문-고민만 하다 ‘타율’ 맞았다②>)
확증은 없지만 안기부의 일부 집단이 광고주에 압력을 가했던 것은 분명하다는 이야기다. 한겨레 관계자들은 압력의 주체로 당시 김기섭 안기부 운영차장 등 김영삼 대통령 차남 현철 씨의 안기부 인맥을 지목하고 있다.
한겨레가 한약업자 정재중씨의 ‘김현철 1억원 수수 폭로’ 보도를 비롯해 김현철씨 관련 비리 의혹 사건을 지속적으로 보도해온 데다가 당시 현안이 됐던 안기부법 개정 반대 여론 조성에 앞장 선 것 등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현철씨측 안기부 인맥이 ‘비공식 라인’을 통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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