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2001년을 ‘문명간 대화의 해’로 정했다. 그러나 지난 해 가장 널리 인용된 말은 새뮤얼 헌팅턴이 예견한 ‘문명의 충돌’이었다.
벤자민 바버가 1992년에 쓴 에세이 '성전 대 맥도널드’(Jihad vs Mcworld)는 결국 우리 시대의 가장 예언적 작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글에서 그는 두 가지 상충되는 힘, 즉 종족주의(tribalism)와 세계주의(globalism)의 임박한 충돌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이 두 가지 모두 음산한 현실이며 동시에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또 종족주의는 되살아난 지역적 증오에 의해, 세계주의는 세계시장에 의해 가속화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해 9월 11일에 발생한 참사는 바로 그 충돌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충돌의 근본 원인인 종족주의와 세계주의는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9.11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충격적 경험이었다. 단순히 그 날 일어난 일 때문만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생각했을 때 더욱 충격적이었다. 우리는 뉴욕과 워싱턴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 일이었는지를 잘 알지만, 더욱 참혹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9.11 이전, 관심은 주로 세계화에 쏠렸었다. 그러나 수많은 경고 신호에도 불구하고 가장 극악한 형태로의 종교의 재흥(再興)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명은 맹목이 됐을 때 위험에 처한다. 지난 수 세기동안 유럽은 종교가 소멸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소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새롭고 때로는 치명적인 형태로 돌연변이할 가능성에 대해 눈을 감았다.
우리들의 세계는 현재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테러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한다. 미지의 것들이 도처에 있으며 전쟁은 거의 시작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정치에서 민족국가의 역할은 점차 중요치 않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민족국가는 작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커졌고 큰 문제에 대응하기에는 너무 작아졌다. 그것이 남긴 간극은 세계관(the world faiths)에 의해 메워지고 있다. 종교는 세계적 사건을 형성하는 주요한 원동력이 됐다. 그리고 종교가 해결책의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문제의 일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거대한 신념의 창조적인 힘과 파괴적인 힘은 종종 동시에 나타난다. 종교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낸다. 그것은 의미와 인간관계의 다른 구조들이 지리멸렬해진 오늘날. 종교가 갖는 강점이다. 그러나 서로의 보호를 위해 우리 주변에 세운 바로 그 벽이 벽 바깥에 있는 외부인들과 우리들을 분리시킨다. 모든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만들어낸다. 바로 그 때문에 하나의 종교 영역 안에서는 평화가 증진되지만 각 종교간에는 전쟁을 촉발한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 살아 왔다. 역사의 페이지들은 십자군, 지하드, 종교재판, 유대인 학살, 그리고 16세기와 17세기에 유럽을 할퀸 종교전쟁에서 뿌려진 피로 얼룩져 있다. 과거,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신념을 공유하는 타인들에 에워싸여 있었다.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멀리 떨어진 지역들의 갈등과 우리들 자신과는 전혀 다른 문화들에 복잡하게 얽혀 있다. 서로 다른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다시 말해 이교도-즉 회개하지 않은 자-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세우는 것은 현재 종교가 직면한 최대의 과제다.
우리들의 이미지와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신의 이미지를 볼 수 있을까? 우리들 언어와는 다른 말로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낯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을까? 신은 우리들에게 많은 신념을 선사했다. 그러나 함께 살 세상은 하나이며, 세상은 갈수록 점점 작아져간다.
조지 해리슨의 죽음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비틀즈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사랑이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모든 것은 ‘평화에 기회를 주라’고 외치던 그때를. 그 시절 이후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가고 있다. 그러나 때때로 구름이 흩어지고 태양이 살짝 얼굴을 내비쳤을 때, 나는 여전히 조지 해리슨이 부르던 노래 가사의 메아리를 듣는 듯하다. “여기 태양이 있네”라는. 우리는 그를 잃었지만 노래는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희망의 조각이 남아 있다.
테러의 근절은 폭력이 아닌 문명ㆍ종교간의 화해와 공존에 있음을 주장한 이 칼럼은 영국내 유대교회의 수석 랍비 교수인 조나단 삭스가 쓴 것으로 원문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 1월 1일자에 실려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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