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대미 핵공세가 위험수위에 육박하자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때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한 토론이 벌어졌었다. 중론은 역시 선제공격의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주한미군을 포함하여 한국과 일본에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기본적인 문제점 외에도 여러 가지 ‘기술적인’ 이유들이 제시되었다.
우선 선제공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영변을 비롯한 이미 알려진 핵시설에 국한 될 수밖에 없고, 우라늄탄 제조시설과 1993년 이전에 생산된 플루토늄에 대해서는 여전히 선제공격의 손이 닿을 수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또한 선제공격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보복공격에 대비하여 미군을 증강 배치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최소한 3-4개월이 필요하기 때문에 선제공격의 유용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선제공격을 위해서는 한국의 용인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미국이 외교적 수단을 총동원하는 데에도 미온적인 상황에서는 한국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또한 북한과 상호방위조약을 유지하고 있는 중국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북한의 핵개발 시인 이후 부시 행정부가 문제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면서 이라크 문제와는 대조적으로 평화적 해결을 고수해온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라크와의 전쟁 준비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 북한문제에 시간을 빼앗길 여유가 없다는 상황도 있지만, 이라크 문제가 없었어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렇게 북한 핵위기의 대응책 가운데 미국의 군사적 옵션이 제거된 것으로 보이자 강온파 양측으로부터 부시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 ‘외교를 통한 평화적 해결’은 최소한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선제공격 전략을 포기하고 억지전략을 고수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문건에서 탈냉전시대의 위협에 대응하는 데는 봉쇄 및 억지전략은 더 이상 효과적일 수 없고, 대량살상무기를 취득하려는 적성국가들에 대한 선제공격 전략만이 유효한 외교정책수단임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당연히 부시가 천명한 소위 ‘탈냉전시대의 미국 외교정책’에 일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현재 한반도 상황은 미국 스스로 대북 억지전략이 여전히 효과적으로 작동함을 증명한 셈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미국 역시 억지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보수파들은 부시 행정부가 정책혼선에서 벗어나 실제로 군사행동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미국 단독으로라도 북한 핵시설을 폭격할 수 있다는 것을 천명한다면, 혹은 최소한 이를 암시한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사태의 긴박성을 인지하고 지금까지 보여준 미온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에 압력을 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지금처럼 ‘나쁜 행동에 대한 보상은 없다‘는 식의 소극적인 대응에서 벗어나,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된다면 지금처럼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할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촉발할 ‘넘지 말아야 할 선 (red line)’을 천명할 경우 북한은 이를 ‘초대장’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여기에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 있다.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는 외교적인 해결을 촉진하는 차원에서 군사행동을 선택지에 포함시키는 것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분명히 하기보다는 암시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실 그동안의 부시 행정부의 공격적인 언사들로 미루어봤을 때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후 부시 행정부가 보여준 ‘침착함’과 ‘인내심‘은 놀라울 정도다. 부시 행정부의 전략은 북한을 더욱더 초조하게 만들어 궁지에 몰아넣고, 북한이 위기를 고조시킬수록 부시 행정부의 공격적 언사들이 사실 정확한 진단이었음을 내외에 알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전에 암시해온 ‘넘지 말아야 할 선’ (red line)을 계속 모호하게 유지하여 북한의 어떠한 도발적 행동도 무시하면서 문제해결을 지연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듯하다.
부시 행정부의 지연전략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데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미 여섯달 전부터 이를 주장해왔고, 최근에는 파월 국무장관까지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이들의 목적은 북핵문제의 위기감을 희석시키는 동시에 북한에 대한 응징에 나서라는 강경론자들의 주장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도 있다. 파월의 말을 빌자면 "북한이 이미 1-2기의 핵폭탄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6개월후에 몇 기를 더 보유하게 된들 근본적으로 무슨 큰 변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에는 비확산이라는 명제는 신앙과도 같아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지켜야하는 것이었다. 북한 핵위기도 이런 차원에서 다뤄졌었고, 이 때문에 94년 북미간 교섭도 한국문제 전문가가 아닌 비확산 전문가들이 담당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인도와 파키스탄의 NPT 가입 거부에도 불구하고 핵확산금지조약의 레짐자체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인 핵확산이라는 파국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도 큰 위험이 될 수 없고, 핵폭탄을 탄두화할 정도의 기술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북한은 결국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부시 행정부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비록 부시 대통령이 식량과 에너지 지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이는 본질을 호도하는 처사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불가침협정을 통한 자신의 체제보장을 줄곧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원하는 당근은 줄 생각이 없고, 그렇다고 채찍을 휘두를 생각도 없는 상황에서 미국이 가까운 장래에 북한과 어떤 ‘빅딜’을 도출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핵문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거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까지 끌고 가서 이 문제를 다자적으로 접근하도록 만드는 것이 북핵 ‘위기’의 미국 책임론을 피하는 방법일 것이다. 이에 반해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은 북핵 문제가 기본적으로 북미간 쌍무적 현안으로 다뤄지길 희망하고 있다.
이런 줄다리기 속에서 북한과 미국이 서로 체면을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일정한 합의에 이르도록 중국과 러시아가 어떠한 역할을 해 줄 수 있는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이라크 문제에 이어서 또다시 정치적 문제에 끌려들어가기를 꺼려하는 IAEA의 반응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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