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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로또복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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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는 로또복권이 아니다

홍사종의 ‘문화로 읽는 세상’ <1>

오늘부터 홍사종 관장의 '문화로 읽는 세상'을 연재한다. 현재 경기도 문화예술회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정동극장장,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며 뛰어난 아이디어와 기획력으로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바람과 관점의 전환을 몰고 온 바 있다. 현재는 경기도 구석구석에 예술공연 바람을 일으키는 '모세혈관운동'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편집자

***노무현 정부는 로또복권이 아니다**

IMF체제 하에서 나의 아내가 첫 번 터트린 말은 "생활비를 줄이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잘려나간 비용은 외식비와 음식물비다. 먹고 마시는 비용의 최소화가 당시 아내가 설정한 절약 목표다.

다음으로 아내가 선언한 것은 정말 뜻밖의 내용이었다. "아이들의 과외비만은 절대 줄일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못 났지만 내 자식만은...' 하는 마음으로 한낱 유전적 숙주로서의 삶을 자처하는 이 땅 모든 부모의 마음도 결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모름지기 사람은 어려울 때일수록 '물건'은 안 사도 '꿈'은 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미국 군수산업 다음으로 거대한 산업규모를 자랑하는 헐리우드 영화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시기도 미국 대공황기다. 오늘날의 헐리우드 영화는 공황기의 어렵고 남루한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피땀 배인 임금을 먹고 자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절망에 가까운 삶을 살아가면서 영화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 그들은 꿈을 샀다. 한 신문기자가 유럽 소공국의 공주와 사랑을 나누고 노동자도 금노다지를 발견하여 일확천금의 갑부가 되는 꿈을 그들은 영화에서 산 것이다.

춤 노래 그리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주요 주제인 인도 영화가 하층 카스트인 천민계급의 열렬한 성원(?)으로 두각을 나타낸 것도 어려울 때일수록 인간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 꿈을 향한 구원의 출구가 지난 대통령선거가 아니었을까.

혹자는 지난 선거를 세대간 갈등양상으로 입방아에 올리지만 실은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미래에 절망한 이 땅의 젊은 세대가 꽉 막힌 현실의 장벽을 부수고 솟아오르고 싶은 열망을 그렇게나마 반영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돈 없고 빽없는 사람의 신분상승은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교육현실 속에서 주경야독하며 일류대학 나와 사회지도층이 된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개천에서 용도 나와야 사회가 안정된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도 시대를 거스르며 제3신분인 평민의 권리를 제약하고 특권귀족의 권한을 강화한 데서 시작됐다.

재미있는 사실은 당시의 기록을 보면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의 경제사정이 영국보다 훨씬 더 좋았다는 것이다. 시민혁명의 자양은 영국쪽에서 자라고 있었는데도 영국은 유혈혁명을 치르지 않고 마그나 카르타와 명예혁명 등을 거쳐 입헌군주국가로 성장했다. 평민들에게도 신분상승의 출구를 열어놓은 결과다. 프랑스혁명은 출구 막힌 사회에서 피지배계급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출구를 찾아낸 사건이다.

서울대 신입생의 절반이 재력이 몰려 있다는 서울지역 학생들이고 그 중 상당수가 강남출신이라는 통계만 보더라고 모든 국민의 기회가 균등하다는 헌법의 정신이 무색할 정도다. 높은 청년 실업률 또 일류대 장벽과 학벌사회에 가로막혀 끊임없이 패배자가 되어 가는 젊은이들, 심지어는 지방대 졸업자라고 신입사원 면접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좌절했고 허탈한 가슴을 수없이 쓸어 내렸을 것이다.

낙담한 그들에게 대통령선거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다. 그리하여 상고 학력의 역경을 딛고 우뚝 선 노무현 후보의 모습에서 이 땅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읽었다. 현실 속에서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무현 후보를 통해 대리구현한 것이다.

요즈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있는 로또 복권열풍을 가만히 뒤집어 보면 지난 대통령선거의 양상과 전혀 다를 바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대통령선거가 신분상승의 출구를 노무현 대통령을 통해 찾아냈다면 로또 복권은 정상적으로 노력해도 부자 될 길 없는 오늘날의 우리 사회경제 구조 안에서 부자 될 꿈을 찾아낸 경우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로또 광풍은 말도 안 되는 이벤트요, 속임수다. 수백만 분의 일도 안 되는 확률을 가지고 '부자 되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에 편승하여 가뜩이나 가난한 사람들의 빈 호주머니를 턴다. 이 사회적 폐단은 '어쩌다 한번 터질 대박'을 향한 사행심리로 매도되어 세간의 혹평을 받지만 로또 복권이라는 출구를 통해 폭발 일보 직전의 사회갈등이 그나마 건전(?)하게 해소되고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안에서 봉급생활자가 내 집 마련하기란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연일 폭등하는 집값, 물가, 교육비 부담에 허리 휘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시민은 부자가 되고 싶다. 그 꿈을 구현해 내는 데에 있어 로또만큼 매력적인 상품이 있을까.

로또의 매력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민참여를 강조하는 참여정부처럼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있고, 당첨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이 상품의 마력은 어쨌든 당첨자를 낸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당첨이 안 되도 타인의 대박 꿈 구현을 보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나도 언젠가 저렇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지속적으로 간직하게 된다.

다행히 이 사업은 매주 계속 시행된다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비록 오늘은 당첨자를 못내도 모아서 한꺼번에 내는 운영방식도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끌어들인다. 부익부 빈익빈의 빈부 격차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경제 모순을 잠깐 잊게 해주는 이 복권프로젝트야말로 우리나라처럼 경제구조가 더 많이 왜곡된 나라에 적합(?)한 상품이 아닐 수 없다. 로또 복권 열풍을 망국병이라고 지탄하는 사람들이 먼저 펼쳐야 할 논지는 바로 이 삐뚫어진 경제구조를 바로 잡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애꿎은 로또는 연일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절망한 젊은이들이 신분상승의 사회적 욕구의 출구를 노무현 대통령에게서 찾아낸 것이라면 로또 복권의 탄생과 열풍의 진원은 우리 사회의 공정하지 못한 경제구조와 그로 인한 질곡의 삶이 찾아낸 출구다.
아주 묘하게도 노무현 정부의 탄생과 로또는 비슷한 시기에 태동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재미있는 것은 태동의 배경도 같지만 두 사건 모두 이 시대가 갈급해 하는 '꿈의 대리구현'이라는 점에서도 같다. 어두운 사회가 노대통령과 로또복권을 통해 희망을 찾아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로(盧)'정부의 탄생과 로또는 같은 '로'자 돌림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로또는 그 자체가 허상에서 출발한 상품이지만 사람들에게 허상을 일깨울 일도 실망시킬 일도 없다. 언제가 '나도 당첨될 수 있다'는 꿈이 지속되는 한 '로또'는 버림받을 일도 없다.

그러나 이 시대의 온갖 아픔과 패배자로서의 설움을 안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희망 속에 탄생한 노무현 대통령 정부의 경우는 다르다.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데도 당첨자를 낸 것까지는 같지만 불행히도 당첨자를 낼 기회가 한 번밖에 없다는 점에서 '로또'와는 확연히 다른 운명고리를 갖고 있다. 둘 다 꿈을 먹고 탄생했지만 노대통령을 향한 젊은이들의 '꿈'은 구체적 실현을 요구하는 냉혹한 현실의 알레고리가 담겨있다. 잘못하면 버림받고 내쳐질 일이 더 많다는 뜻이다.

노무현 정부가 탄생한지 벌써 1백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돈없고 빽없는 사람이 신분상승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지 않다. 여전히 학군 좋은 강남 집값은 천정부지를 유지하고 있고 발랄하게 자라나야 할 이 땅의 청소년들은 아비규환 입시지옥 속에서 한 발자국도 벚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왕좌왕 갈피 잃은 노조편향의 경제정책 때문에 청년실업은 더욱 큰 사회문제를 예고하고 있다. 거기다 NEIS시행 등 교육정책의 혼선과 분명치 않은 남북관계 등은 온 국민을 허탈과 불안에 떨게 했다. 기타의 정책혼선과 그로 인한 혼란을 다 열거해서 무엇 하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게 마련이다. 급격히 하락한 노대통령의 지지도를 언론의 탓으로 책임회피할 일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노대통령을 통한 사회구조의 모순타파를 강렬하게 원했던, 젊은 지지자들까지 등 돌린 현상은 아니었을까 돌이켜 볼 일이다. 노정부는 대중의 얄팍한 기대에 기대어 막연히 꿈만 팔아도 장사가 되는 로또복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소개**

1955년 경기 화성 출생. 서경대 철학과.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 러시아 HERZEN 국립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현 경기도 문화예술회관장. 극작가. (사)공공자치연구원 이사. 전 정동극장장. 세종문화회관 이사. 숙명여대 문화관광학과 교수. 동대학 문화예술경영연구소장. 교내 벤처기업 (주)아트노우 대표이사. (주)삼성전자, 삼성물산 마케팅 자문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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