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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으로 도피한 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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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왕성으로 도피한 하데스

이향순의 '우주 읽어주는 엄마' <18>

제우스, 하데스, 포세이돈 따위의 형제들이 똘똘 뭉쳐 티탄족을 쳐부수어 ‘무한지옥’ 타르타로스로 귀양보내고 각기 맡은 우주 영토를 나눠 통치하며 세력을 다지고 있을 무렵, 새로운 적들이 나타났다.

티폰, 브리아레오스, 엔켈라도스 따위의 거신족이 제우스 형제들에게 도전장을 냈다. 그들 가운데는 팔이 백 개나 달린 괴물과 불을 뿜는 괴물 따위가 있었다.

그러나 거신족의 도전은 싱겁게 끝났다. 그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아이트나 산밑에 산채로 묻혔다. 그들은 지금도 가끔 그 곳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을 쳐 섬 전체에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화를 삭히며 내뿜는 숨결은 아이트나 산을 뚫고 오르는데, 사람들은 이를 화산의 분출이라고 부른다.

괴물들이 요동을 쳐대는 바람에 저승의 사자 하데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가 다스리고 있는 저승까지 이들의 파장이 미치지나 않을까 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그는 땅속에 숨겨둔 금은보화가 털리지는 않을까 은근히 신경 쓰이기도 했다.

끙끙 앓던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걱정을 털어놓았다.

“우주의 우두머리 제우스 신이여, 아이트나 산밑에 묻힌 괴물들이 다시 들고일어나기라도 하는 날엔 우리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요.” 하데스는 제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하데스는 제우스보다 먼저 태어났지만 아버지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낳는 대로 삼켜버린 탓에 뱃속에 들어갔다가 아우인 제우스의 구출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서열 가르기가 애매한 지경이었다.

“딱히 걱정이 되면, 저승 세계를 한번 두루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은데요.”

“그렇지요?”

제우스에게 확신을 얻은 하데스는 몸통이 온통 잿빛을 띤 흑마가 끄는 이륜차를 타고 피해 상황을 점검하러 시찰에 나섰다. 다행히 걱정할 만큼 큰 피해는 없었다. 하데스가 시찰하고 있는 광경이 에릭스산에서 아들 에로스와 놀고 있던 아프로디테의 눈에 띠었다.

“듣거라 에로스. 네 화살이 어떤 화살이더냐? 제우스가의 대신들이 네 화살 앞에서야 무사할 수 있겠느냐?”

“예, 어머니.”

“이제 그 화살로 저기 가는 저 어둠의 왕, ‘무한 지옥’ 타로타로스의 통치자의 가슴을 향해 쏘아버리는 것이 좋겠지?”

“좋은 기회이군요.”

“천상에까지 우리 힘을 무시하는 자가 있다는 것을 너는 잘 몰랐지? ‘지혜의 여신’ 아테나,‘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가 우리 모자를 업신여기고 있는 게야.”

에로스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아프로디테는 목소리를 더 크게 높이며 말을 이었다.

“그 뿐이 아니야. 저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 있지? 그 어린것까지 아테나와 아르테미스 짓을 따라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 노릇이냐.”

“내 생각이 옳다면, 쏘아라. 그래서 저 어린 계집과 하데스를 꼴 좋게 한 줄로 묶어 버려라.”

아프로디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로스가 화살 통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는 허리를 굽혀 화살 통에서 가장 날카롭고 명중률이 뛰어날만한 놈을 골라 들었다. 무릎으로 활을 구부리고 시위에 화살을 먹였다. 그리고 살촉에 뾰쪽한 미늘이 달린 화살이 하데스의 가슴에 꽂혔다.

이 때, 엔나 골짜기에 있는 호수가에서 포레세포네가 친구들과 백합꽃잎과 오랑캐꽃잎을 따 앞치마와 바구니에 담으며 이야기를 즐기고 있었다.

상사병이 옮은 에로스의 화살을 맞은 숙부 하데스가 꽃에 취한 페르세포네를 보자 단숨에 나꿔채 달아났다.

페르세포네는 하데스의 아우인 제우스와 데메테르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복자매인 아테나와 아르테미스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쳐녀들의 수호신 아르테미스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도무지 결혼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데스의 왼손에 매달린 채 끌려가는 페르세포네는 비명을 지르며 살려 달라고 아우성쳤다. 그녀의 허리띠가 벗겨져 땅위에서 나뒹굴었다.

“어머니, 어머니, 저를 살려 주세요.” 아름다운 꽃들만이 발버둥치며 끌려가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들아, 어디 있니? 제발 나를 구해주렴.”

겁에 질린 나머지 앞치마 양쪽 귀를 놓쳐 버려 꽃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 모습까지도 그녀의 마음을 저리게 했다.

밀턴은 <실락원>에서 페르세포네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 아름다운 엔나 들판에서
페르세포네는 꽃을 꺾고 있다가,
저 자신이 또한 꽃다운 꽃이어서,
저 음험한 하데스에게 꺾이고 만다.’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숙부 하데스는 마차를 끄는 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대며, 적갈색 채찍으로 말들의 머리와 목을 마구 내리치며 도망쳤다.

하데스가 숨가쁘게 이륜마차를 몰고 키아네 강에 이르렀을 때 강이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가 삼지창으로 강둑을 몇 번 쳐대자 대지가 갈라지며 입을 벌렸다. 그리고 무한 지옥으로 가는 통로가 열렸다.

이런 사건을 알 턱이 없는 데메테르는 실종된 딸을 찾기 위해 온 세상을 헤맸다. ‘새벽의 신’ 에오스가 금발 머리를 찰랑이며 아침 일찍 일어날 때도, 저녁 무렵 헤스페로스가 별들을 데리고 나올 때도 오직 딸 생각뿐이었다. 밥은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얼굴에 물 칠 한 번 해대지 않고, 옷은 첫 날 입은 채로, 두 손에 횃불을 들고 땅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지 아흐레가 넘었다. 모든 것이 허사였다.

열흘째 되던 날, 데메테르는 딸의 행방을 알기 위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첫 걸음을 시작한 시실리 땅으로 돌아와 키아네 강둑에 섰다. 이곳은 하데스가 납치한 페르세포네를 데리고 자기 땅 저승으로 달아난 통로가 있는 곳이었다.

강의 요정들은 목격한 사실들을 어미에게 모두 들려주고 싶었지만 저승사자 하데스가 두려워 입이 떼이지 않았다.

요정들은 딸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데메테르가 가엾어 페르세포네가 끌려가면서 떨어뜨린 허리띠를 그녀의 발 밑에 슬그머니 밀어 놓았다. 이것을 본 순간, 그녀는 딸이 죽었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아픔을 참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리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 배은망덕한 대지야, 나는 너를 비옥하게 하고 각종 풀과 영양분이 넉넉한 곡물로 덮어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 내가 내리는 은총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가축은 모두 죽어 버렸고, 쟁기는 이랑을 파다 부러지고 씨앗은 싹을 틔우지 않았다. 가뭄이 계속되지 않으면 장마가 오고, 새가 씨앗을 훔쳐가 버려 자라는 것은 엉겅퀴와 가시덤불 뿐이었다.

그녀는 넌더리가 쳐지는 올림포스산의 신들과 작별하고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고 남루한 옷차림으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아테네 근처 엘레우시스 사람들은 그녀가 여신이란 것을 알아차리고 극진히 대접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신전을 짓고 그곳에 살도록 하였다. 데메테르는 크로노스와 레아 사이에 태어난 딸로서 농업을 주관하는 여신이다.

애지중지 키운 딸을 잃고 망연자실한 어미의 분노를 보고 있던 샘의 요정 아레투사가 황폐해진 땅을 위해 화해를 시도했다.

그리고 아레투사는 페르세포네를 본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페르세포네가 암흑의 여왕으로 사자의 나라를 다스리는 왕의 신부가 되어 있다며 위로하였다.

자초지종을 들은 데메테르는 얼이 빠진 듯이 한참 동안을 서 있다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천상의 올림포스 산으로 가기 위해 이륜마차를 몰았다. 그녀는 제우스 신을 만나 담판을 짓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신 중의 신이시여, 애지중지 키운 딸아이를 잃고 아흐레 낮과 밤을 헤매는 이 가엾은 당신의 종을 보살펴주소서!” 그녀는 머리를 땅 바닥에 조아렸다.

“도대체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하였단 말이오?” 제우스도 측은하긴 마찬가지였다.

“제 딸을 납치한 신은 다름 아니라, ....”

데메테르가 말끝을 못 잇자 제우스가 재촉했다.

“말해보시오.”

“다름이 아니라, 제우스신의 형님인 하데스입니다.”

제우스는 이러한 내용들을 들리는 소문으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페르세포네가 얼마나 서럽게 자라났습니까? 당신의 핏줄을 받았지만 큰어머니 헤라 여신의 눈총이 무서워 아버지의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은 적이 있습니까? 양심이 있다면 바른 대로 말해보세요.” 데메테르는 그 동안 억눌린 자신의 처지까지도 마구 쏟아냈다.

겸연쩍은 제우스는 데메테르가 측은했다. 그래서 하소연을 들어주기로 약속하고 조건을 하나 붙였다.

“여신의 딸이 저승에 머무르는 동안 식사를 한 번도 한 일이 없어야 할 텐데....”

그리고 제우스의 아들로 페르세포네와는 이복 사이인 헤르메스가 이 사건의 중재자로 뽑혔다. 아버지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그는 마법의 신이건 인간이건 건드리기만 해도 잠이 들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팡이와 하루에 만리 길도 가볍게 달릴 수 있는 날개 달린 가죽신을 신고 다니며 수완이 뛰어난 신이다

그는 ‘봄의 여신’을 대동하고 하데스를 찾아가 페르세포네를 돌려보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교활한 저승사자 하데스는 흔쾌히 승낙하였다. 그러나 속마음으론 계산이 모두 끝났다. 그는 페르세포네가 그가 건네 준 석류의 빨간 알맹이 속에 있는 과즙을 빨아먹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은 불발이 되었다. 그래서 제우스는 타협책을 내놓았다. 1년 가운데 반년은 올림포스 산에서 어머니와 지내고 반년은 남편 하데스와 저승에서 살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어머니와 함께 세상에 머무는 반년동안은 농업의 신 데메테르가 꽃과 곡식을 싹트게 하고, 딸이 지상을 떠나 저승으로 가면 대지는 말라붙고 음산한 겨울이 된다. 페르세포네는 매년 봄 밭이랑에서 첫 싹이 솟아오르면 지하를 떠나 천상에 올라갔다가 농부들이 한참 추수하는 가을이 지나면 다시 지하로 돌아간다.

한편, 데메테르는 스스로 여신의 자리를 내놓고 인간세계에 왔을 때 따뜻한 대접을 해준 엘레우시스 왕의 아들인 트립톨레모스가 성인이 되자 쟁기 쓰는 법과 씨뿌리는 법 따위를 가르쳐주며 거두었던 풍요로운 은혜를 다시 대지에 베풀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립톨레모스는 여행에서 돌아와 엘레스우스 땅에다 장엄한 신전을 세우고 이를 데메테르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는 용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귀중한 곡물과 농사짓는 기술을 가르쳤다.

부도덕하게 조카딸이나 납치해 아내로 삼은 일 따위로 뻔뻔스런 하데스가 통치하는 우주는 태양계의 변방 명왕성이다. 10번째 행성이 정식 인정되지 않은 지금까지 이 명왕성은 태양계의 막내이다.

‘저승의 신’ 하데스의 나라 명왕성은 지구에서 망원경으로 살짝 훔쳐보면 희미한 별처럼 보일 뿐이다.

태양에서 지구까지 떨어진 거리의 40배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명왕성은 지금까지 밝혀진 태양계의 마지막 행성으로 알려져 있다.

정확히 말하면 명왕성은 태양과 약 60억 ㎞ 떨어져 있다. 지름이 약 2천 9백 60㎞에 불과해 태양계 아홉 아들 가운데 가장 작은 편이다. 이 행성의 크기는 지구의 위성 달보다 더 작을 정도이다.

지구촌의 천문학자들은 태양계의 여덟 아들에 비해 체구가 워낙 작아 볼품없는 명왕성을 태양계 가족의 일원으로 쳐야 할지 많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워낙 길면서도 큰 기울기를 가진 궤도는 명왕성의 정체에 대한 신비감을 더욱 부채질한다.

사실 이 명왕성은 우주 멀리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 알려진 것도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명왕성이 태양계의 막내아들로 등극되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발견 초창기부터 족보 문제로 많은 시비가 오갔던 행성이다.

명왕성의 하루는 지구 시간으로 따져 6일 9시간 남짓 된다. 명왕성의 사계는 지구 나이로 환산해 248 년만에 한번 씩 바뀐다.

명왕성의 통치자 하데스,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 그리고 데메테르는 천상과 지하를 오가며 공존한다. 페르세포네는 곡물의 ‘씨앗’이 되어 땅속에 묻히게 되면 그 모습을 감추고 지하의 신 하데스에게 납치 당한 신세가 된다. 그리고 ‘봄의 여신’이 다시 ‘씨앗’ 페르세포네를 햇볕 비치는 곳으로 데려올 때면 어머니 데메테르와 상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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