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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의 석방과 조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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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김의 석방과 조국의 미래

<기고> 그의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 를 읽고

2004년 7월 27일, 조국을 위해 조건 없는 헌신과 희생을 한 로버트 김(김채곤)이 64세의 백발이 되어 석방되었다.

그는 '가난한 친정인 한국이 정보 부재로 허덕이며 올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미 해군성 정보국이 보유한 북한 관련 정보를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제공했다가 1996년 9월 미 연방수사국 FBI에 체포되어 8년이라는 긴 인고의 세월을 감옥에서 지낸, 이 시대 분단의 비극이 낳은 상징적 인물이다.

그의 석방에 맞춰 발간된 그의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에는 미 해군에서 개발해 한국군에 팔려고 했던 C41 컴퓨터시스템에 대한 한국 해군정보장교의 문의를 받고 그는 한국의 지정학적 대치관계를 감안하여 독자적인 시스템을 개발할 것을 권유하였는데 이 장면이 미 FBI에 포착되어 그의 재판과정에서 증거자료의 일부로 채택되었음을 기술하고 있다.

수년전 로버트 김은 알렌우드 감옥에서 수감 중 본인에게 보내온 서신을 통해 그가 제공한 50건의 정보 중에는 '군수물자를 구입하는 일부 한국 장교들이 공명심에 들떠 분별없이 소중한 외화를 낭비하는 현실을 보다 못해' 국제 군수시장에서 상호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데이터도 포함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는 미 국적을 가진 이민자이면서도 진정으로 자신의 안위보다는 조국인 한국을 먼저 생각하고 일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로서 앞으로 한국정부는 물론 예산을 다루는 국회가 경각심을 갖고 값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로버트 김은 떠나온 조국의 장래를 걱정해 미국의 국익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외비 수준'의 정보를 제공했다가 평생 그가 이룩한 부와 명예를 한꺼번에 잃고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한 채 50대, 60대 인생 황금기를 미 연방교도소에서 보낸 것이다.

그는 옥중에서도 굴하지 않고 고도절해에 갇힌 빠삐용같이 줄기차게 자신의 과오에 비해 지나치게 부과된 9년 장기형과 3년의 보호관찰이라는 가혹한 미 연방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변호사도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항소장을 작성, 제출했으며 정치적 사면권을 가진 클린턴, 부시 대통령과 라이스 보좌관 등을 향해 자신의 억울함을 계속 호소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제공한 정보만 취하고 막상 로버트 김 사건이 한미간 외교 사안으로 비화되자 '나 몰라라' 등을 돌린 비겁한 한국정부를 향해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3대 정권에 걸쳐 구명에 나서줄 것을 처절하게 호소해 왔다.

그런 그가 끝내 미 법원이나 대통령, 사면국으로부터 과다 부과된 형기에 대한 감면 조치를 받지 못하고, 한국 정부로부터도 어떠한 가시적 성의표시도 받지 못한 채 9년 형기의 85%를 채운 모범수로서 주어진 형 7년 10개월을 꼬박 다 살고 석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3년의 보호관찰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완전한 자유의 몸이 되지도 못한 채...

그는 1966년 자유민주주의와 활기에 넘치는 시장 경제를 찾아 기회의 땅 미국으로 건너갔던 한국의 이민 1세대다. 그는 미 국적을 취득했으나 늘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와 하던 중 1995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한국 해군 고위장성들이 미 해군성 고위직을 만나는 공식 회의석상에 함께 배석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후 한국대사관 무관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 인권이 무시된 북한 주민의 실상과 경제난에 허덕이는 북한 관련 정보를 건네 주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동해안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과 관련된, 상식적으로 한미 우방국간에는 당연히 사전협조가 이루어졌어야 할 정보도 포함되어 있다.

로버트 김은 지난 2000년 미선ㆍ효순양 미군탱크 압사사고로 한미간 SOFA 불평등협정이 재론되며 온 나라가 촛불시위로 떠들썩했을 때 반미 감정의 확산을 우려하면서 선진정보와 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을 용미(用美)해야 한다는 뜻을 언론을 통해 밝힌 바 있다.

또 그는 북한이 학생들에게 철저한 주입식 사상교육을 시키는데 반해 한국은 청소년들에게 제대로 된 국가관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는 교육 현실을 걱정하면서 특히 가족이 해체되면서까지 귀중한 외화를 낭비하는 그릇된 해외연수 풍조를 개탄하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를 통해 남은 그의 여생을 어려운 환경의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사업에 바칠 뜻을 비쳤다. 짐작컨대 그가 미국 감옥에서 성찰해 본 조국은 근본이 잘못 되어가고 있으며, 제대로 된 국가관과 교육관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심어주는 일이 남은 여생을 바쳐 봉사해야할 보람으로 여긴 듯하다.

그는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선공후사(先公後私)정신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 희생했으나 정작 그의 도움을 받은 한국정부로부터는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는 '기도 말씀은 한 알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과 백절불굴의 의지로 홀로 외롭게, 뜻있는 한국민․재외동포들의 격려에 힘입어 캄캄한 터널과 같은 기나긴 역경을 이겨냈다.

로버트 김의 석방에 즈음해 우리 국민들은 그가 조국에 제공한 북한 관련 정보는 바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기 위한 그의 신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러한 그의 신념을 바탕으로 조국의 자라나는 2세를 위해 올바른 교육과 국가관을 정립하는 일에 봉사하고자 하는 로버트 김의 뜻은 바로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조국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 정체성 시비가 일고 있는 현 시점에서 대단히 현실적이고도 유효하다 하겠다.

로버트 김의 석방에 즈음하여 발간된 그의 자서전 '집으로 돌아오다'(한길사 펴냄)를 읽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나의 조국 한국을 사랑하는 아주 평범한 사람입니다.'라고 겸허하게 말하는 로버트 김의 인간적인 체취와 사건의 실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우리 국민의 정체성과 진정한 애국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보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ksshin1001@yahoo.co.kr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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