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나 배우가 무대에서 버는 소득은 노동의 대가로 볼 것인가.
언뜻 판단해 보면 모두 몸으로 부딪혀 버는 수입이니까 임금의 성격이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소득을 지대(地代)로 분류한다. 부동산업자도 아닌데 무슨 땅을 빌려줬다고 지대를 받느냐는 질문이 있겠지만 엄밀한 의미로 ‘경제적 지대’라고 정의한다.
한정된 자원인 토지의 공급처럼 그 희소성의 가치로 인하여 재능을 빌려주고 받는 소득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한정된 자원이 수요에 따라 시장가격을 형성하며 등락하는 곳이 관객이 모이는 극장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예술가들은 나름대로 이 극장과 관련시장을 중심으로 천차만별의 경제적 지대를 발생시키며 활동해왔다. 재능의 희소성이 뛰어날수록 높은 값의 지대를 받는 예술가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허다했다.
그러나 높아진 국민경제 수준에 비례하여 예술가들에 대한 처우가 예전보다 훨씬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국립예술단체는 물론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창단하는 예술단체의 숫자만 보더라도 이제 문화에 관한한 궁핍했던 어제의 우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공급이 늘었다는 것은 수요 또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뜻이다. 개별 예술가들의 활동도 눈에 띄게 늘어났고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을 때의 상황일 뿐이다.
최근 탈북자 수의 증가와 더불어 탈북 예술가들의 숫자도 증가됐다는 소식은 향후 북한 정세의 추이에 따라 ‘남북예술시장’의 변모를 예견하게 한다. 며칠 전 첫 탈북연예인 예술단인 ‘금강산 예술단’이 창단됐다는 신문보도가 아니더라도 우리 문화소비자들은 북한 예술인들의 공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기우이겠지만 만약 북한 정권의 붕괴로 갑작스러운 통일을 맞이하거나 남북화해로 남북한 교류가 자유로워진다면 예술유통시장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나의 상상력과 유추는 ‘결코 우리 예술가나 단체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결론이다. 비록 규격화되고 기계화된 북쪽의 예술가들이라지만 그들의 기량은 입신(入神)의 수준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어렸을 적부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아동들을 발굴하여 집중교육을 시키는 예술교육시스템이 잘 발달된 나라다. 그에 반해서 우리의 예술교육은 실력보다는 돈의 경쟁력이 예술교육시장을 지배한다. 재능이 부족해도 돈이 있으면 예능대학에 가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소위 ‘귀국발표회’를 거쳐 예술가로 데뷔하는 일이 허다하다.
경제적 지대는 움직이는 지대다.
인민배우를 비롯하여 숱한 북쪽예술인들이 높은 지대를 받기 위해 남쪽을 향해 이동하는 순간 우리의 예술유통시장의 질서는 급작스런 교란을 맞을 것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예술인이라면 몰라도 지금까지 돈의 경쟁력으로 예능 대학을 나와서 유학까지 다녀왔다는 소위 ‘실력이 부족한데도 대우받던 자칭 예술가들’의 존재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부동산 투자자들이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 통일을 대비해 서울의 북쪽 땅을 미리 사두는 안목(?)처럼 우리의 예술가와 문화공간 운영자들도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공급이 늘면 실력있는 예술가만 살아남게 되어있는 것이 시장의 원리다. 예술시장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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