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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GDP 2배의 군사비 쓰는 일본이 '북한이 무섭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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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GDP 2배의 군사비 쓰는 일본이 '북한이 무섭다'니"

하루키-매코맥 '북일관계의 비판적 회고' <4> 안보문제들

***안보문제들**

납치문제에 관한 교착상태가 지속되는 동안, 안보 및 핵 문제를 둘러싼 위기가 고조됐다. 1994년, 핵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대치는 지미 카터의 방북으로 전쟁 일보 직전에 간신히 해결됐다. 그에 뒤 이은 "제네바 합의(Agreed Framework)"로 북한은 에너지 관련 핵프로그램을 동결했고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핵폐기물을 국제 감시 하에 두었다. 그 대가는 경수로 2개 건설, 경수로가 완공될 때까지 중유 공급, 그리고 미국과의 경제 및 정치관계 정상화였다.

제네바 합의는 10년 가까이 유지됐다. 그동안 일본의 안보상 최대 우려는 북한의 미사일이었다. 1998년 8월 말, 북한은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 미사일은 일본 상공을 지나 태평양 상에 떨어졌다. 아마도 이 사건만큼 북한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킨 사건은 없었을 것이다. 일본 국토의 대부분이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 안에 있다는 사실은 안보문제에 대한 논의를 촉발시켰다. 북한에 대한 깊은 우려로 인해 일본은 1990년대 후반부터 "유사사태(사실은 전쟁을 완곡하게 표현한 용어)"에 대한 제도적 틀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7년의 "신가이드라인", 1999년의 주변사태법, 2001-2003년의 "반테러법" 및 이라크특별조치법, 그리고 2004년의 유사사태법 등이 그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전략적ㆍ군사적 사고의 변화를 초래한 주요요인 중 하나가 북한인 것은 사실이지만, 재래식 군사력이나 국력 측면에서 두 나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은 명목상 평화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매년 북한 국내총생산(GDP)의 2배나 되는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으며, GDP 규모로 보면 북한의 200배나 된다. 물론 북한은 1백만 병력을 갖고 있어 숫자로만 보면 수퍼파워라 할 만하다. 그러나 북한 군대는 거의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부대가 생존을 위해 농사를 짓는 등 식량확보로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무기는 대부분 1950년대의 구식이다(2003년 3월의 이라크전쟁은 1970년대의 무기가 현대전에서 얼마나 무력한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극심한 에너지난 때문에 북한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1년에 단 몇시간 정도의 훈련비행을 할 뿐이다. 반면 일본의 육군은 영국, 프랑스보다도 크고, 해군은 세계 5위이며(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이 각각 1-4위이다), 공군력은 세계 12위로 이스라엘보다 강력하다. 일본은 F-15 전투기 200대, 잠수함 16척(매년 잠수함 1척씩을 새로 건조한다), 이지스 구축함 4척(추가로 2척 주문해 놓았다)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4년도 예산에 13,500톤급 항공모함 2척 건조를 위한 예산을 배정했다. 게다가 일본의 배후에는 군사적 거인 미국이 버티고 있다. 또한 일본은 2003년 3월, 북한을 감시하기 위한 첩보위성 2개를 발사했다. 만일 북한이 도쿄나 오사카 상공에 첩보위성을 띄웠다면, 일본은 즉각 이 위성을 제거하기 위해 선제공격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이처럼 일본 군사력의 강화가 진행되는 동안,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혹이 새로운 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2002년 10월 평양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북한이 핵폭탄 제조를 위한 비밀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실토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즉각 제네바합의에 따른 중유공급을 중단했고,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및 핵프로그램 재가동으로 맞섰다. 새로운 단계의 위기에 직면한 이 지역의 국가들은 2003년 8월 베이징에서 일련의 회담을 가졌다. 이 회담, 즉 6자회담의 참가국은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였다. 일본 역시 주요참가국이기는 했지만 납치문제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정책 결정에 압도적 영향을 미쳐 이렇다 할 역할은 하지 못했다. 일본은 납치문제를 6자회담 의제에 포함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다른 참가국들의 동의는 구하지 못했다.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교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핵무기고를 계속 증강해 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핵무기고 증강은 말할 것도 없고 핵무기 보유 자체만으로도 1992년 남북한의 한반도비핵화공동성언, 1994년 북미간 제네바합의의 명백한 위반이다. 또한 합의의 정신으로 본다면 북일간 평양선언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북한과 일본은 유관 국제조약을 준수하는 것은 물론 대화에 의해 핵문제를 해결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일 수교교섭이 납치문제로 인해 중단된 상태에서 일본은 핵문제에 관해 북한에 항의하거나 해결을 모색할 직접적 통로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오랫동안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었던 반면,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금까지 명백히 자신을 겨냥한 핵위협 아래 놓여 있었으며, 1991년 소련 붕괴 이후에는 소련의 핵우산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북한이 스스로를 핵무기로 무장한다고 해서 지역안보가 향상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을 증가시킬 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지역의 국가들은 2003년 8월부터 6자회담을 통해 북한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핵무기의 유일한 희생자이자 스스로 핵 비보유를 선언한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고 있다.

납치문제에 관한 협상이 교착돼 있는 상태에서, 일본은 북한에 영향을 미칠 아무런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유력 의원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납치문제를 풀기 위한 압력의 일환으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제재는 여러 나라가 동시에 가할 때만 효과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따라서 제재는 핵문제 해결의 최후의 수단이며 현재로서는 유보돼야 한다고 말한다. 게다가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최근 수년간 북일 교역이 급격하게 줄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는 별 효과가 없다고 지적한다. 1980년 대략 1,200억 엔이었던 양국간 교역은 2004년에는 270억 엔으로 감소했다. 일본은 더 이상 북한에 경제적 압력을 가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2005년 6월의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한은 미국이 북한을 우호적으로 대하며, 인정하고 존중해 준다면, 즉각 협상테이블로 복귀할 것이며, "단 한 발의 핵폭탄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6자회담은 7월에 재개됐다. 8월초, 3주간의 휴회를 위해 회담이 중단됐을 당시, 미국과 북한은 당초 자신의 입장을 수정한 듯 보였으며, 이에 따라 합의의 가능성이 엿보였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기여는 핵심적이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가 대부분 일본에 있는 미군기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은 일본인에게는 생과 사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현재 납치문제에 대한 협상이 완전히 중단된 상태에서, 일본은 아무 대책 없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으로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면 외교관계를 열고 경제협력을 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야만 비로소 북한에 대해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지금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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