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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과 전복,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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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과 전복, 그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곽한주의 '대중영화 읽기' <2> '신라의 달밤'

한국영화가 한참 잘나가던 지난 2001년 우리 대중영화는 우려와 개탄의 대상이었다. 영화 지식인들은 한국영화계의 '우려할 만한 경향'에 대해 너도나도 한마디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는 조폭코미디라고 불린 일군의 영화들이 흥행차트를 주름잡았기 때문이었다. <신라의 달밤>을 시작으로 <조폭 마누라>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에 이르기까지 조직 폭력배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코미디 영화가 흥행순위 윗자리를 독차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전문가와 언론이 깡패를 미화한다며 우려했던 '저질' 조폭코미디를 대중관객들은 왜 두 손 들어 반겼을까. 여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들 영화에는 일반 대중들이 좋아하는, 욕망하는 뭔가가 있었을 것이다. 뭔가의 정체를 밝혀보기 위해 조폭코미디 선풍의 첫 주자였던 <신라의 달밤>을 눈여겨 들여다보자.

<신라의 달밤>은 2년전 <주유소 습격사건>(1999년)을 내놓은 박정우(극본)-김상진(감독) 콤비의 두 번째 작품이다. 성공적인 대중영화의 조건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잘 빠진 코미디다. 생동감 넘치는 개성적인 인물, 맛깔스런 대사, (어이없지만 전제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럴듯한 플롯, 나무랄 데 없는 연기, 그리고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경주 수학여행의 추억을 환기함으로써 자연스레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야기 구조에 이르기까지 흠 잡을 데 없다. 깡패영화와 로맨틱 코미디, 하이틴 코미디 등 이전 장르영화의 관습과 이미지를 자유자재로 채용하면서 상큼한 잡탕을 만들어내는 솜씨도 예사가 아니다.

그러나 대중영화 읽기가 이러한 일반적인 인상을 나열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면, 이 영화가 어떻게 대중의 욕망을 건드리고 충족하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나는 <신라의 달밤>이 대중적 호응을 얻은 것은 이 영화가 대중이 원하는 세상, 대중이 바라는 세상-이것이 유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을 구현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화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럴듯하게 구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략을 동원한다. 두 가지만 지적해보자.

우선 이 영화가 수학여행이란 모티프를 내러티브의 핵심구조로 삼고 있는 점에 주목해보자. 누구나 수학여행 하면 경주, 경주 하면 불국사와 석굴암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것은 천년 고도의 자랑스런 유적을 돌아본 경험이 아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듯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수학여행이라는 한시적 시공간에서 우리가 모처럼 누렸던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자유다.

고교생들의 광란의 무대를 보여주는 영화 첫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폭력조직의 중간보스인 영준(이성재 분)이 경주의 암흑가를 접수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경주로 내려오는 것 자체가 수학여행이랄 수 있다. 아이 손목 비틀 듯 손쉽게 경주의 암흑가를 접수할 수 있는 상황이니 영준은 마치 휴가차 경주를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그는 경주에서 논다. 사랑스런 여자도 좇아 다니고 고교 동기랑 술잔도 기울인다. 부하들과 피크닉도 가고 그의 18번 <신라의 달밤>도 부른다. 이처럼 수학여행, 그리고 경주는 이미 일탈과 자유로 코드화돼 있다. 그러니 영화는 이미 일탈과 자유의 테마를 내장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인물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이다.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조연급까지 이 영화엔 찌든 사람이 없다. 나름대로 자기 식으로 기죽지 않고 제멋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인물들에게 우리의 욕망을 투사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언뜻 보면 두 주인공 영준과 기동(차승원 분)은 이들보다 더 다를 수가 없을 만큼 대조적인 인물들이다. 공부는 전교 1등이지만 왕따 범생이었던 영준은 힘과 인정(認定)을 좇아 엘리트 깡패가 된다(좋은 머리는 조직 세력확장에 쓰지만). 싸움엔 짱이지만 성적은 바닥을 기던 기동은 이를 악물고 공부해 선생님이 된다(체육선생이 돼 끼를 어찌하지 못하고 군기를 잡고 다니지만). 이처럼 삶의 경로는 180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중요한 점에서 동일하다. 즉 주위의 시선이나 사회적 통념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인물이란 점이다. 두 주인공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라면집 여주인 주란(김혜수 분)이나, 그녀의 동생이자 학교 깡패의 리더인 주섭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토착 깡패두목 마천수 또한 마찬가지다. 다들 내숭이나 근엄함과는 담을 쌓은 인물들로 마치 가벼움이란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것 같다.

이처럼 제멋에 사는 등장인물들은 영화를 전복적--이를 어떤 이는'불온한'이라고 할 것이다--상상력으로 가득 채운다. 일상의 틀에 매여 사는 우리들에게 이들의 상식 밖의 행동은 해방감을 전달한다. 주섭은 서울 깡패 영준을 이상적 롤 모델로 여기며 부하로 받아들여달라고 간청한다. 마천수는 예비군 통지서를 받아들고는 "도대체 조국이 내게 해준 게 뭔데?"라며 볼멘소리를 한다. 주란은 사고를 친 동생의 팔뚝을 물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이중 압권은 역사의 도시 경주에서 고교생들이 수업을 땡땡이 깐 채 학교창고에 둘러앉아 진지하게 '역사'를 논하는 장면이다. 세계역사나 한민족의 역사, 하다못해 경주의 지역사도 아니고 수학여행 패싸움의 역사를 논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두 어깨를 짓눌러 왔던 역사의 무게를 이처럼 시침 뚝떼고 사뿐히 제껴버린 예도 흔치 않을 것 같다.

<신라의 달밤>은 영준 캐릭터를 중심축으로 삼아 모든 사람들이 사회-정치-문화적 제약이나 규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욕망을 추구하며 사는 세상을 그려 보인다. 이를 위해 <신라의 달밤>은 깡패를 수학여행(또는 휴가여행) 보내는 묘안을 선보인다(깡패를 암흑세계로부터 끌어내 우리의 일상과 만나게 하는 것은 조폭코미디의 공식으로 정착돼 이후에도 계속 약발을 발휘한다).

<신라의 달밤>은 깡패 주인공이 중심이 된 한판 놀이마당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엔딩 직전 등장인물들이 총출동해서 치고 박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아수라장을 연출하는 장면은 마치 등장인물들이 크라잉 넛의 펑크락에 맞춰서 무아지경에서 막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시작 부분의 고교생 패싸움 장면과 대구를 이루는 이 장면은 바흐친이 말하는 카니발적인 것(carnivalesque)을 구현함으로써 일상을 뒤집고 규율을 해체하는 한편 넘치는 에너지를 찬미한다.

대중영화는 우리의 일상 현실과는 다른 유토피아적 세계를 지향하거나 구축하려 한다. 조폭코미디가 깡패 주인공을 매력적인 인물로 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매력적인 깡패는 조폭코미디의 핵심요소다. 우리의 주인공 영준은 머리도 있고 주먹도 있고 유머도 있고 지각도 있고 의지도 있는 인물이다. 한국 최대 폭력조직의 중간보스이니 돈도 아쉽지 않을 것이다. 영준처럼 다방면으로 매력적인 인물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지 싶다. 반면 깡패의 라이프스타일을 미화한다는 식자층의 비난을 수용해 조직폭력의 세계를 실상대로 그린다면 조폭코미디는 사라져버릴 것이다.

깡패가 매력있는 것은 그들이 회칼을 잘 휘두르거나 뭉칫돈을 벌어들여서가 아니다.'간이 콩알만한데다 눈치 볼 것이 너무도 많은'우리네와는 달리 그들은 하고 싶은 것을 거리낌없이 하는 별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갖지 못한 자유와 힘과 용기를 가진, 일종의 초인(superman)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이 메마르고 초라하기 때문에 아이러니컬하게도 깡패는 자유인의 상징이 되고 우리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조폭코미디가 선풍적 인기를 끈 시기가 보통 사람들이 IMF체제를 겪으면서 쪼그라들대로 쪼그라든 시기와 맞아떨어지는 것은 시사적이다. 대중이 원하는 것, 욕망하는 것이 '기 안 죽고 살수 있는 세상'이라면 <신라의 달밤>은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동안이나마 그런 욕망을 채우는 데 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저질 영화에 환호하면서 고급 영화는 알아보지 못한다고 대중들을 폄하하는 것은 엘리트주의의 소산으로 보인다. 대중들이 자신들의 욕망/소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영화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것은 더 나은 세계에 대한 이들의 갈망이 너무도 절절하고 끈질기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만큼 대중들의 현실이 별 볼 일 없기 때문이 아닐까.

* 덧붙이자면 2000년대 초를 풍미한 조폭코미디의 주인공과 90년대 중반 한국영화의 주류장르였던 깡패영화의 주인공을 비교해보는 것은 흥미있는 일이다. 예컨대 <신라의 달밤>의 영준이나 <두사부일체>의 두식을 <게임의 법칙>(1994년)의 용대나 <비트>(1997년)의 태수와 비교해보면, 대중영화가 그리는 깡패의 모습이 몰라보게 달라졌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 깡패영화가 당시 한국영화계의 주력상품이었음에도 별로 뜨지 못했던 데 비해 홀대받던 조폭코미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을 시대의 변화, 그리고 대중의 기호나 욕망의 변화와 관련해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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