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이 미군기지 확장과 토지 강제수용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트랙터를 타고 전국순례에 나선 지 이틀째인 4일. 전북 부안 새만금의 어민과 농민들이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진 1〉〈사진 2〉
팽성 트랙터 순례단원들과 새만금 주민들은 매서운 바닷바람이 금세 손발을 꽁꽁 얼려버리는 부안의 해창 갯벌에 함께 섰다. 전세고속버스를 타고 시간을 맞춰 찾아온 45명의 평택 주민들도 같이 했다.
이들은 모두 '전쟁기지를 확장하기 위해 팽성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이나,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해양생물의 보고인 새만금을 죽이는 간척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나 생명과 평화를 빼앗는 범죄행위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주한미군은 새만금에도 미군기지를 조성하겠다며 이곳 간척사업이 끝나는대로 1000만 평을 달라고 국방부에 요청해놓은 상태다.
팽성대책위와 새만금 피해어민대책위는 하늘과 바다가 지켜보는 해창 갯벌에서 기자회견을 하며 "용기를 잃지 말고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는 싸움을 목숨이 끝날 때까지 하자", "우리가 꺾이지 않아야 이 아름다운 자연을 지킬 수 있다", "평택과 새만금, 언제든지 서로 오가며 연대하고 승리하자"는 등의 다짐을 주고받았다.
〈사진3〉〈사진 4〉〈사진 5〉
두 지역 주민들은 살갗이 아릴 정도의 추위에 얼굴이 벌겋게 얼어붙은 채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전세버스를 타고 내려온 평택 대추리의 정태화(71)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트랙터 시위를 떠나는 이들을 보며 마치 전쟁에 자식 내보내는 심정이었다"며 "이틀간 잠이 제대로 안 와, 일흔이나 여든 된 노인네들도 이렇게 직접 왔다"고 말했다.
〈사진 6〉〈사진 7〉
지난해 2월부터 평택에서 살기 시작한 문정현 신부도 "우리를 다 죽이고 빼앗아 가라"며 "그 전엔 어림도 없다"고 외쳤다. 미군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한 이들의 싸움이 어떤 이들에게는 '무모함'으로 비치겠지만, 당사자들은 "진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고 고개를 힘차게 젓는다. 이들에게 '진다는 것'은 곧 '생존의 터전을 내놓고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사진8〉
***〈인터뷰〉"어차피 진다고 생각하면 여기까지 못 왔다"〈박스기사〉**
'나를 위하는 싸움'이 절로 '우리 모두를 위한 싸움'으로 고양되는 일 따위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평택시 팽성읍 주민들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은 끈질긴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래선지 이들이 반복해 외치는 구호 중에는 "질긴 놈이 이긴다"도 있다.
프랑스 라르작에서도 주민들이 군사기지를 넓히려는 자국 정부와 싸우기 시작해 이기기까지 10년이 걸렸고, 라르작을 지켜낸 건 고작 103명의 농민들로 구성된 '103인 위원회'였으며, 그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지지의 손길에 힘입어 결국 땅을 지켜냈다. 팽성과 새만금 주민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시작"이라며 새롭게 전의를 가다듬었다.
〈사진 9〉
팽성대책위의 김택균 사무국장은 '트랙터 시위' 또한 라르작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라르작 농민들의 경우 땅의 80%가 정부에 매수된 상태에서도 농사를 계속 지었다는 이야기도 힘을 북돋워준다고 한다.
라르작 농민들의 입장과 주장도 처음에는 프랑스 사회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라르작 농민들이 파리까지 트랙터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에펠탑 밑에 양떼를 풀어놓고 시위를 벌이면서 전국에서 지지해주고 성원해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미테랑이 1981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자신의 '기지확장 계획 무효화' 공약을 지킴으로써 라르작 농민들은 승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긴 '1981년의 프랑스'가 아닌 '2006년의 대한민국'이다. 평택 주민들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들의 시선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왜 그런 것 같으냐"는 질문에 김택균 사무국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도 그것 때문에 답답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평택 시민들은 미군기지가 들어오면 나쁘다고 알고 있지만 막상 그런 얘기를 하면 평화대행진에 선뜻 참여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미 다 끝난 문제 아니냐는 거죠. 정부의 국방사업이라고 하니 기가 죽었고, 당장 내 일도 아니다 보니 절실하지 않은 것 같아요."
***"지난해 '평화대행진' 때 전국에서 찾아와준 사람들 생각하면 힘 난다"**
김 사무국장은 "그러나 우린 한번도 진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고는 "진다고 생각하면 이 싸움은 벌써 끝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평택 주민들은 그래도 지난해 7월 평택에서 열린 1차 평화대행진 때 전국에서 1만2000여 명이나 찾아와 참여해주었던 사실에 엄청난 힘을 얻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까지 왔으니까요. 그야말로 전국 곳곳에서 온 거죠."
이들은 트랙터 시위를 벌이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평택만의 문제가 아님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전쟁발발에 대비하고 중국에 대한 봉쇄 및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택 주민들은 이 점도 기회 있을 때마다 말해왔지만 큰 반응이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전쟁에 관한 최악의 시나리오에 귀를 기울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많지 않더라구요. 그것보다 주민들의 안타까운 사정을 얘기하는 게 반응이 더 빠르죠. 언론도 그렇고."
김 실장은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다시 한번 간명하게 정리했다.
"결국 미군은 이 땅에서 나가라는 겁니다. 평택이 안 되는데 다른 땅이라고 되겠습니까? 필리핀의 경우도 주민들의 끈질긴 저항으로 결국 클라크 공군기지를 다 철수하지 않았습니까? 그것 말고는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없어요."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