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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아홉 문장 편지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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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 아들에게 보낸 아버지의 아홉 문장 편지엔…

[배달 안 된 '노획 편지']<4> "배 곯지 말아라"

전쟁이 남기는 건 핏물 밴 총칼만이 아니다. 전쟁은 숱한 사연도 남긴다. 살아남은 자들이 가슴에 묻어놓은 사연도 있지만, 글로 남겨진 사연도 있다. 전쟁이 쓴 편지, 전쟁이 남긴 편지도 그런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1950년 한국전 당시 미군은 북한 점령지에서 북한의 공문서를 포함해 적지 않은 양의 '북의 기록'을 노획했다. 전리품이었다. 이 노획 문서들은 도쿄의 연합군 극동군사령부를 거쳐 미 워싱턴의 연방기록물 보관소로 이관되었다.

이 노획 문서 중에는 평양중앙우체국에서 노획한 개인 편지 1200여 통도 포함되어 있다. 조선인민군에 입대한 동생이 중국 길림성(지린성) 집의 형에게 쓴 편지, 평남 안주 고향집의 아내가 '해방구'인 서울에 내려가 있는 남편에게 쓴 편지, 인민군 나간 아버지가 평남 용강 고향의 아들에게 '이제는 네가 오마니와 토론해 집안일을 다 해 나아가라'고 부탁한 편지도 있다. 고향을 떠나 자강도 만포의 직장에 가 있는 남편은 황해도 서흥의 고향집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몸 풀 날이 다 되었는데 안녕하신지'를 묻는다. 편지 대부분이 전쟁 직후인 10월에 쓰인 것들이다.

<프레시안>은 10월부터 기획 특집으로 미 국립문서보관소(NARA)에 보관되어 있는 이 노획 편지 가운데 20여 통을 골라 10회로 나누어 소개하고, 전체 노획 편지 616통의 주소록도 새로 공개한다. 편지가 쓰인지 62년이 지났고, 미 NARA 서고에서 일반에 공개된 지 이미 35년이 흘렀다. 그 모진 세월을 용케 견뎌내고 살아남아 한 번 더 '주인'을 찾아 나선 '잊혔던 편지들'이다.

필자 이흥환은 미 워싱턴의 KISON 편집위원으로, NARA의 노획 편지들을 모아 지난 4월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도서출판 삼인)라는 제목의 책을 엮었고, 책에 소개되지 않았던 편지들을 <프레시안>의 이 특집을 위해 다시 한번 가려 뽑고 주소록을 만들었다. 모두 616통이다.(☞관련 기사 : "미군 노획 인민군 편지, 62년만에 주인을 찾습니다")

*

'평시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땅에 묻지만, 전쟁이 나면 아버지가 아들을 땅에 묻는다.'
– 헤로도투스

집 떠나 있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쓰는 편지는 소망을 담은 명령서 같은 것이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라'로 말한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쓰는 편지는 생존 지침서이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살아남는 법을 구체적으로 꼭 집어 일러준다. 어머니의 편지는 가슴을 울리지만, 아버지의 편지는 어금니를 물게 만든다.

오늘 읽을 두 통의 편지는 전쟁통에 떨어져 있는 아들에게 쓴 '아버지의 편지'이다. 첫 번째 편지는 조선우편 50전짜리 우표가 인쇄된 엽서이다. 자강도의 아버지가 평양에 가 있는 아들 리순상에게 1950년 8월 26일 자로 보낸 것이다. 해야 할 말, 하고 싶은 말만 딱 아홉 문장 속에 꼭꼭 눌러담았다.

순상 앞

▲ "순상 앞" ⓒ국립중앙도서관
그간 몸 평안한지. 여기 집안 시꾸는(식구는) 평안하니 안심하여라. 그리고 여러 친척도 다 평안하다. 그런데 무순(무슨) 이윤지(이유인지) 니가 편지하는 편지는 여기서 다 바다(받아) 보는데 여기서 하는 편지는 왜 너는 못 바다(받아) 보니. 그리고 여기서 가져간 돈을 쓸 때(쓸 데) 이수면(있으면) 다 써라. 돈이 없으면 여기서 부채(부쳐) 줄 터이니 배가 곺으며(고프면) 먹을 것을 다 싸먹어라(사 먹어라).

그리고 아버지는 인민군대에 아니 가스니(안 갔으니) 안심하여라. 편지를 끝지(끊지) 말고 여전이 종종하여라. 끝으로 너의 몸 건강을 축복하면서 배 곮으지(고프지) 않게 먹을 것을 싸먹어라(사 먹어라).

1950.8.26 부친부터

(보내는 이: 자강도 장강군 동문면 동문거리 3반 리철세 / 받는 이: 평양 중앙우편국 사서함 10호 리순상)

집에 부쳐온 편지로 아들 소식은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버지 리철세 씨가 하고 싶은 말은 세 가지이다. 집에서 부치는 편지를 네가 못 받아본다니 괴이하기 짝이 없다, 아버지는 인민군에 안 나갔으니 안심하라, 돈 아끼지 말고 배 곯지 마라. 만에 하나, 아들에게 딱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면 아버지는 편지의 마지막 말만 했을 것이다. 어쨌든 배는 고프면 안 된다고.

아들 주소지에는 평양 중앙우편국 사서함 번호만 쓰여 있다. 인민군에 나간 것인지 무슨 일로 집을 떠나가 있는지 편지만으로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아버지는 행여 아들이 배 곯고 있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배는 곯지 말라고 간곡하게 거듭 당부한다. 집에서 가져간 돈을 다 쓰라고도 했고, 돈 떨어졌으면 집에서 부쳐라도 주겠단다. 뭔들 못할까. 굶는 자식 두고 보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

두 번째 아버지의 편지는 길다. 한 땀 한 땀 놓은 수같이 자식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찬찬하고 자상하다. 1950년 9월 24일, 평북 정주의 아버지가 평양시 철도공장 초급 기술원 양성소에 가 있는 아들 최상진이 보라고 써서 부친 것이다.

천추에 녀이(너의) 편지를 두야로(주야로) 온식구가 고대하였든차 9월 23일에 바다보니(받아보니) 반갑기은하나(반갑기는하나) 한긋(한편으로) 슬품의 이서(슬픔이 있어) 온식구가 섭섭하게도(섭섭하게) 생각하며 녀이(너의) 편지를 일거보니(읽어보니) 녀이(너의) 생명이 위웜에(위험에) 처햇다고 천우신조하며 안직것(아직껏) 생명이 있단은 것은(있다는 것은) 잘 알었다. 그간도 위염(위험) 지대에 네 몸 편안한지 하루가 한 달갓다(같다). 이고(이곳) 집안은 온식구가 다 편안하니 네의(너의) 념녀지덕(염려지덕)이네.

▲ "평북 정주의 아버지가 아들 최상진에게" ⓒ국립중앙도서관

자근형(작은형)은 8.1일에 황주서 편지온 후는 생사를 부지하고(알 수 없고) 성진이과(와) 우진이은(는) 안직것(아직껏) 편지가 없다. 그리고 이곳도 역시 놈들의 야수적 폭격을 매일 계속하며 시가지가 파괘돼고(파괴되고) 인민도 만이(많이) 죽었다. 상월리 백낙소와 현상환이도 철도에 단기다가(다니다가) 생명까지 일엇다(잃었다). 그리고 나은(나는) 안직것(아직껏) 里(리)사무소에서 사무를 보고 잇다. 그러나 네이(너의) 신세를 생각하니 가련하다.

그 전 편지에도 네이(너의) 이복이(의복이) 말할 여지없이 남누하다은(남루하다는) 소식은 들어스나(들었으나) 하도(아무) 대책을 못하고 있은 것은 교통 관계로 인하야 이복도(의복도) 부치지 못하고 행여나 入去할까(入居: 들어올까) 하고 고대만 하다가 한 달이 넘어서 네이(너의) 편지는 참으로 비감하다. 내가 보도라도(걸어서라도) 떠나갈 생각이 있으나 할 수 없이 돼였네.

그러나 그간 병으로 있다가 지금은 났다고(나앗다고) 하였으나 안직것(아직껏) 걱졍이고(걱정이고) 네가 평양서 이복을(의복을) 사갓다하니(사겠다고 하니) 한 달이 넘은 기일에 안직것(아직껏) 네가 있는지를 몰라 돈 약 7백원을 부송하니 적으나 바다가지고(받아서) 이복을(의복을) 다음(다문) 한가지라도 사서 입고 하교(학교) 선생들과 사실을 말하여아모조록(아무쪼록) 한번 入去하여 네이(너의) 얼골이나(얼굴이나) 한번 보고십다. 도보로 걸어도 약3일이면 入去할 듯 하니 여하한지. 하여간 한번 들어와서 만나보자.

네가 확실이 그곳에서 떠나지 안은다고(않는다고) 하면 차후로도 금젼을(돈을) 더 부터달나고(부쳐달라고) 편지만 하면 곳(곧) 부처주게다(부쳐주겠다). 이번에도 약 2천원을 부쳐줄 생각은 이스나(있으나) 교통관계상 또는 그곳이 분화한 관계로 확실이 네가 밧갓는지가(받겠는지가) 이문돼(의문시되어) 여힐을 줄(잃어버릴 줄) 알고 돈 7백원을 부치니 못조록 접수하고 속히 편지 하여서 형이(형의) 궁귬을(궁금을) 덜게 하며 못조록 네 몸을 우염지듸에서(위험지대에서) 몸조심하고 눈초리을(눈초리를) 잘 돌이여(돌려) 생명을 부듸(부디) 돌보아 일후 널과(너와) 나이(나의) 얼골을 볼 때까지 편안을 부탁하며 이만 긋친다.

그리고 (중략) 이번에 돈을 네가 확실이 받이만(받기만) 하면 후에 또 부송하겠다. 이번에 이복값(의복값)이 부족하면 즉시 편지하여라. 그리고 광년이 형 히련이가 평양 기림리 1구1반 39번지에 이스니(있으니) 그리 알고 만일 주소가 찾기 힘드면(힘들면) 기림리 인민위원회에 가서 방문하고 네이(너의) 사졍을(사정을) 말하면 었더케(어떻게) 하여 줄 것이다. 할 말은 소설 한 권도 될련만 이만 긋친다.

1950년 9월 24일 부송(父送)

네이(너의) 편지를 보고 즉시 2시간에(두 시간만에) 부칠 생각은 이스나(있으나) 공습 관계와 사무상 복잡하여 2,3일은 부치지 못하고 수일 지체돼였으니 그리 알게.

(보내는 이: 평북 정주 / 받는 이: 평양시 철도공장 초급 기술원 양성소 제2반 최상진)

▲ 정주우편국장 소인 ⓒ국립중앙도서관
아버지의 편지 속에는 정주우편국장 소인이 찍혀 있는 700원짜리 보통송금증서 한 장이 같이 들어 있다. 원래는 2000원을 부쳐줄 생각이었으나 제대로 갈지 의심이 들어 중간에 없어질 것까지 감안하여 보낸다고 한 그 돈이다.

상진 말고도 성진 우진 해서 아들이 여럿 되는 아버지이다. 그런데도 '신세 가련한' 상진이 목숨 붙어 있다는 것만 알 뿐 다른 자식들하고는 연락두절이니 상진이 염려하는 마음이 몇 곱절 더 하다. 그나마 연락 닿는 상진만 바라고 있으나 '하루가 한 달' 같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할 말이 소설 한 권'이라고 했을까.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거리, 정주-평양은 걸어 사흘 거리이다. 리 사무소 일만 아니면 아들한테 갔어도 벌써 몇 번을 갔을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묻는다. 네가 걸어서라도 한번 집에 들어와 볼 수는 없겠느냐고.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고.

<미군에 노획된 인민군 편지, 62년만에 주인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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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흥환 엮음, 도서출판 삼인 펴냄) ⓒ삼인
한국전쟁 때 미군에 노획된 편지의 주인을 찾습니다.

편지는 1950년 6.25전쟁 당시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 전역에서 미군에 노획된 것입니다. 미국은 이를 비밀문서로 분류해 놓았다가 1977년에 비밀을 해제하고 일반에 공개했는데요, 국내에는 극히 일부만 소개됐습니다.

미국 워싱턴 인터내셔널 센터(KISON) 선임 편집위원인 이흥환 씨는 2008년 11월 이 편지들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는 "(비록 60여 년이 지났지만) 이제라도 수취인이나 발신인을 찾아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선별해 지난 4월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도서출판 삼인 펴냄)라는 책을 냈습니다.

'도서출판 삼인' 블로그에 게시된 616통의 편지 주소를 보고 '나의 부모, 나의 형제'라고 생각되면 전화나 메일로 연락바랍니다. (도서출판 삼인 02-322-1845 / http://cafe.naver.com/saminbooks/)

☞ 배달 안 된 '노획 편지' 주소 확인하기
http://saminbooks.blog.me/14017060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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