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부터 시작된 2009년 국방예산안에 대한 예비심사가 21일로 마무리 되었다. 정부가 경제위기 상황을 반영해 수정 편성한 2009년도 국방예산안은 28조7249억 원이었다. 경제 위기 극복에 국방부가 동참해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고 2009년도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여야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터라 올해만큼은 증액이 아닌 삭감도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남한 전력의 현저한 대북 우위, 2.8%에 달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부담률(2008년 Military Balance, IISS), 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당선과 맞물린 한반도 정세 변화 가능성 등 다른 부처 예산에 비해 국방비는 훨씬 더 큰 폭으로 삭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에 있었다. 특히 국방예산은 노무현 정부 이래 팽창일로를 걸어왔고, 정부 재정 증가를 주도해왔기 때문에 국방비 삭감 여부는 정부 재정의 건전성과 사회복지 지출의 확대를 바라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그러나 21일 오전에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는 군 장교 증원 비용, 주한미군에 대한 방위비분담금 등 불요불급하고 불법부당한 예산에 손도 대지 않았다. 국방위원들은 대신 군 관사건설, 군 표준차량 교체, 제주 해군기지, 한국형 공격헬기(KAH) 등 총 33건의 사업에 대해 정부가 요구한 금액보다 2641억 원을 더 올려주기로 결정했다.
증액 내역에는 정부 자체의 예산 조정 과정에서 삭감됐던 K-9자주포 15억 원, K-21(차기보병전투장갑차) 47억 원 증액도 포함되어 있다. 또 국회는 한미간의 방위비 분담 8차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 예산 편성의 법적 요건마저 결여한 방위비분담금 예산을 정부가 제출한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국방부가 24일 국방개혁 공청회를 개최하기로 한 데 대해 오늘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은 "공청회가 있는 줄도 몰랐다"며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할 책임이 있는 국회를 무시하지 말라"고 이상희 국방장관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국방예산안 예비심사 결과를 놓고 보면 국회를 단순한 거수기로 여기는 국방부의 오만무례한 태도는 국방위 스스로가 자초한 것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방위비분담금을 기지이전비용으로 전용해서는 안 된다는 국회의 결의를 면전에서 묵살하고 법적 요건도 갖추지 못한 방위비분담금 예산을 정부안대로 승인해주면서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과감한 국방비 삭감으로 현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정부의 안이한 인식과 처방에 일침을 가하지 못하는 한 국회의 권능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벼랑 끝까지 내몰린 대다수 국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헤아리지 못한 예산심의로 국민의 존경을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군 훈련장 확장에 맞서 생존의 터전을 지킬 수 있게 해달라는 파주 무건리,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의 절절한 호소를 끝끝내 외면한 국방위원들은 더 이상 국민의 대표임을 자임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국방비 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세계 최고수준이다. 지난 4월 8일 발행된 '2008년 OECD 팩트북(FACTBOOK)'에 따르면 2005년도의 '국방비 등 질서유지관련 지출비중'이 한국의 경우 GDP 대비 4.3%로 29개 국가 중 미국, 영국에 이어 3위이다. 반면 한국의 GDP 대비 '사회복지지출비중'은 5.7%(2003년)로 29개국 중 28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곧 다가올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국민들의 무거운 국방비 부담을 덜고 사회복지를 대대적으로 확충해 복지 후진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도 국방비 삭감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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