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보슬 문화방송(MBC) PD가 지난 15일 오후 8시께 결혼식 준비를 위해 회사를 나섰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 약혼자의 집 앞에서 검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PD수첩>의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을 지적한 보도가 정운찬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다. 꼭 1년여 전 <PD수첩>에서 '광우병 편'이 방영됐을 때 시민들은 정부에 분노해 촛불을 들었고 정부와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PD수첩>에 분노를 표출했다. 정부의 <PD수첩> 공격은 'MBC 사영화' 논란과 함께 '공영방송 MBC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이 글은 지난해 7월 20여명의 필자가 모여 쓴 <MBC, MB氏를 부탁해>에 실린 김보슬 PD의 글이다. 김 PD는 이 글에서 정권에 종속된 방송을 풍자적으로 그리고 있다. <편집자> |
# 1 민영방송 'MB氏꺼'
방송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잠이 안 오기 시작한다. 요맘때가 되면 꼭 겪는 고충이다. 대한민국 최대의 민영방송사 'MB氏꺼'의 입사 5년차 나광우 PD. 그는 요즘 서울의 마지막 남은 뉴타운을 취재하다가 같은 회사의 <뉴스 휴> 팀을 만났다. 아무래도 아이템이 엎어질 것 같다. 방송은 겨우 3주 남았는데…… 탈모가 시작됐다.
괴로워하는 나 PD를 보더니 <PD공책> 팀장이 결국 <뉴스 휴> 팀장에게 전화를 건다.
<PD공책> 팀장 저, <뉴스 휴>에서 뉴타운 취재하신다면서요?
<뉴스 휴> 팀장 예. <PD공책>에서도 취재하신다는 얘기 들었습니다만…….
<PD공책> 팀장 글쎄 말입니다. 이거 참, 어떻게 해야 될지……. 혹시 언제부터 취재하셨습니까?
<뉴스 휴> 팀장 저희는 좀 됐습니다. 한 3주 정도?
<PD공책> 팀장 아, 그렇습니까? 저희도 그 정도 됐습니다만(거짓말이다. 이틀 됐다. -.-;). 같은 회사에서 똑같은 아이템을 다루면 그것도 전파 낭비고…….
<뉴스 휴> 팀장 그러게 말입니다. 참 곤란한 상황이네요.
(침묵의 신경전이 오간다. 하지만 곧 〈PD공책〉 팀장이 말을 뗀다.)
<PD공책> 팀장 이번엔 저희가 접겠습니다. 대신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이번 일 꼭 기억해주십시오. 껄껄.
<뉴스 휴> 팀장 아, 예.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더 좋은 방송 기대하겠습니다. 허허.
늦게 시작한 내가 접는 게 상도의다.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지만 아직까진 서로 간의 암묵적인 배려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이제 얼마나 오래 갈지……. 아깝긴 하지만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다. 민영화 이후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아이템이 겹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다들 눈들이 비슷해서 그 나물에 그 밥이다. 예전 같으면 시청률 안 나와도 할 만한 아이템들이 많았었는데, 이젠 팀장한테 퇴짜 맞기 일쑤. 국정원, 대법원 같은 덴 눈길도 못 주고 있다. 아~ 옛날이여.
하루 종일 인터넷 화면과 매직아이를 하고 있다. 눈이 시리다. 아무리 물을 마셔도 목이 탄다. 제보도 신통치 않고. 총선 끝난 다음 날인데 기다렸다는 듯이 미국과 쇠고기 협상을 하는군. 쇠고기 팔려고 별별 협박을 일삼더니, 얼마나 요구할까. 우린 또 그걸 어디까지 받아들일까. 나광우 PD는 갑자기 얼마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우너' 동영상을 떠올린다. 그리고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한 여성의 사망 기사를 찾아보았다. 협상이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을까.
"팀장님, 미국산 쇠고기 어떨까요?"
"먹을거리에 관한 거니 시청률은 좀 나오겠지만, 뭐 새로운 게 있겠어?"
"그야 모르죠. 협상 결과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어요?"
나광우 PD는 뉴욕 JFK 공항에서 전화 한 통을 받는다.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30개월령 이상 쇠고기까지 전부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국인 인터뷰이interviewee도 협상 결과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게 얼마나 정신 나간 짓인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 미국 사람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쇼킹했다. 미국에 사는 코디도 더 이상 쇠고기를 먹지 못하겠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였다.
밤마다 협상 관련 취재 상황을 체크했다. 예상 외로 이 협상이 터무니없이 허술하게 진행됐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광우병 위험성이 높은 30개월령 이상의 쇠고기가 들어온다면?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뼛조각만 나와도 검역을 중단하고 반송시키던 정부였다. 그러던 정부가 푸른집 주인이 바뀌었다고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미국산 쇠고기가 갑자기 100퍼센트 안전해져서가 아니다. 바뀐 것은 푸른집 주인뿐. 시청자 게시판은 벌써부터 시끄럽다.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한지 방송 좀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나 PD, 갑자기 부담감이 밀려온다. 우牛~ 우牛~
# 2 '미국산 쇠고기 방송' 2탄을 허하라!
| ▲ <MBC, MB氏를 부탁해>(집단지성 지음, 프레시안북 펴냄) ⓒ프레시안 |
방송이 끝난 지 사흘이 지났다. 시청률? 대박 났다. 나 PD는 예상보다 뜨거운 시청자들의 반응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방송 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촛불문화제까지 시작됐다. 정말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팀 회의에서도 2탄을 만들어야 되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PD 두 명을 더 붙여줄 테니 긴급 제작에 들어가라 한다. 방향이 문제다. 벌써부터 보수 언론에서 씹어대기 시작했다. 어느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시간 문제로 1편에서 하지 못한 말이 많다고 대답했더니, 보는 선배들마다 나 PD를 놀린다. "야, 광우 선생, 아직 할 말 많다며?"
회의를 시작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어차피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는 방송 후 수많은 신문, 방송 뉴스를 통해 쏟아져나왔다. 온 국민이 수의학 석사 수준은 되는 것 같다. 이제는 SRM(광우병 특정 위험물질)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러니 2탄은 아직 협상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 위주로 풀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잘못된 협상이라면 정부를 비판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재협상에 대한 논의를 다시 한번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을 테니 말이다.
나 PD 및 그 일당은 취재를 시작했다. 시간이 부족해서 미처 취재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보강부터 해야 할 터. 불행하게도 아직 '못 다한 말'보다 '취재 못한 말'이 더 많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 하루도 못 쉬고 강행군이다. 술이나 먹고 확 잠이나 잤으면 좋으련만, 온 국민의 눈이 <PD공책>에 쏠려 있다. 그러니 졸다가도 정신이 바짝 든다. 팀장이 씩씩거리고 온다.
"왜 그러세요?"
"아무래도 방송 전날 시사를 좀 세게 해야 할 것 같다."
"……"
시청률 잘 나와서 어르신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뜻밖의 난관이다. 방송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광고국에서 팀장을 찾는 전화다.
"지금 자리에 안 계신데, 무슨 일이신데요?"
"이번 방송에서 또 안전성 문제를 건드리면 앞으로 '제길' 광고 확 빼버리겠다는데요."
"……"
FTA 체결 이후 국내 먹을거리 시장을 장악한 '제길'. 우리 회사 최대의 광고주다. 나 PD, 또 한 번 압박 심하게 느껴주신다. 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도대체 '제길'이 넣는 광고가 얼마나 되더라? 예능국, 드라마국까지 난리치겠군. 시청률 잘 나왔고, 반응 좋고. 기대에 부응해 2탄까지 만들겠다고 하면 기특하다고 칭찬해줄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다.
방송 전날에 가까스로 편집을 마쳤다. 다들 <PD공책> 방송 내용에 관심이 많으시다. 국장도 푸른집 어르신들의 전화에 꽤나 시달린 모양이다. 전례 없이 경영진이 전부 시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심의국에선 대본을 달라고 난리다. 회사 고문변호사에게 자문도 구해야 한단다. 편집하는 내내 누구누구의 아는 사람, 사돈의 팔촌까지 전화로 괴롭히더니, 이젠 정식으로 검사를 받으란다.
"저 내용은 좀 그렇지 않아? 저 부분이 푸른집에서 가장 염려하는 부분인데……."
"안전성 문제는 아예 빼지? '제길' 광고 빠지면 <PD공책>만 타격이 아닌 거 잘 알잖아. 바로 적자 난다고."
"이거 꼭 방송 나가야 하나? 괜히 또 선동했단 소리만 들을 거, 굳이 내보내서 미움만 살 필요 없잖아."
"……"
공영방송이란 울타리가 필요해
과연 민영방송 'MB氏꺼'에서 미국산 쇠고기 2탄이 방송되었을까? 아니, 1탄조차 관심 영역에 포함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자본과 힘의 논리에 구속당한 'MB氏꺼'는 정부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폭로할 수도, 세계 최대 식품업체 '제길'의 입김을 결코 무시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실 반 상상 반이지만, 이 시나리오엔 실제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방송을 하면서 받았던 일부 경영진으로부터의 관심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폭발적인 여론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방향을 잡고 취재를 하고 편집을 하고 대본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수많은 자기 검열의 과정을 혹독하게 치러야만 한다. 여기까지가 공영방송 MBC에서 PD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일이다.
하지만 민영방송 'MB氏꺼'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자기 검열을 넘어선 타인의 검열이 치고 들어올 수밖에 없다. 또한 그 검열의 성격은 프로그램의 질, 사실 관계의 확인 차원을 넘어서며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MB氏꺼'가 되면 어떤 일이 생길까에 대해 비슷한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황우석은 한때 대한민국 국민의 희망이었다. <PD수첩>이 황우석에 대해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방송하자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다짜고짜 전화에 대고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을 하는 시청자도 있었다(그때 먹은 욕의 양만 보면 난 매우 장수할 것 같다). 그리고 협박이 이어졌다. <PD수첩> 광고주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거였다. 정말로 광고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2005년 12월 15일에 방송된 「<PD수첩>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는 특별 편성이었기 때문에 광고 없이 나갔다. 하지만 2006년 1월 3일에 재개된 정규방송은 그간의 여파 때문에 두통약 광고 하나만 팔렸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 광고 또한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 느낀 위기감이 바로 이랬다. 민영방송이었다면 <PD수첩>은 황우석을 그런 식으로 보도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PD수첩>도 없어졌을 거라는. 이번 미국산 쇠고기 방송을 하면서도 프로그램의 제작, 편집에 대한 권한은 공영방송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보호될 수 있음을 실감했다. 또한 그 울타리가 결코 튼튼하지 않다는 사실, 외풍이 불거나 내풍이 커지면 뿌리째 뽑힐 수도 있다는 위기감도 피부를 스쳤다. 민영방송 'MB氏꺼'가 되는 순간, 눈엣가시 <PD수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순진한 기우도 결코 아니다.
매번 방송을 할 때마다 무슨 아이템을 선택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런데 신기하리만큼 우리 사회에는 소위 말하는 '방송거리'가 늘 나타난다. 그만큼 없어져야 할 것들,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방송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을 밝히기 위해 항상 귀 기울여야 하는 '정직한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떤 외압도, 협박도, 회유도 넘보지 못하도록 공영방송이란 울타리가 꼭 필요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여러분~ 우리, 그냥 방송하게 해주세요~ 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