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후보가 과거 시민단체 대표 시절 했던 모금에 대해 모금전문가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전문가의 한 사람으로서 그 동안 느낀 점을 밝힐까 한다.
먼저 전제해야 할 것은 정치권이 각자 자기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 사안을 자의적으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 하는 것보다는 나라의 장래를 위해 올바른 기부와 모금 문화(순수한 동기의 기부이든 특정한 목적을 가진 정치 후원금이든)를 정착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직은 어느 쪽에선가 놓친다 해도 나중에 다시 회복하면 될 일이지만 올바른 기부 문화의 정착은 건강한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갈 일이다. 또 지금이 그 적기라고 판단되기에 통상적으로 동료 모금가에 대한 평가는 금기로 되어있지만 제 의견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밝히고자 한다.
모금전문가(fundraiser)는 단순한 모금 기술의 달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금 기술이 모금액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대의를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없기에 모금한 액수를 선한 일에 사용했다는 윤리성으로 100% 만족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 배려와 '모으는 자'와 '주는 자'와 '받는 자'가 하나로 연합해 인간됨의 가치를 최고의 수준에까지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펀드레이징 전문가 교육 과정에는 '경청'이 포함되어 있는데, 사람 사이의 의사소통과 의사 결정에서 경청은 언제나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와 같이 펀드레이징은 인문학의 정수를 녹여 집대성한 인간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으며, 단순히 돈의 문제로 환원할 수 없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박원순 변호사의 모금 방법에 대한 다른 전문가들의 평가를 아직 접하지 못했고, 지금까지의 이슈는 주로 이해관계가 있는 정치인이나 모금 경험이 충분치 못한 분들이 논리적 상관관계(cause-effect)라는 근거보다 감정적이었기 때문에 필자가 할 말은 못 된다. 모금은 한마디로 이분법으로, 좌우로 구분 짓고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에는 고귀한 일이고, 매우 전문적인 영역이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고 남이 한 모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긴 쉬워도 막상 본인이 남을 위해 해야 한다면 담대한 용기와 자아실현 상태를 갖지 않으면 하기 쉽지 않은 분야다.
수십년의 경험을 가진 모금가들도 처음 하는 사람의 열정을 배우고 경청해야 하기에 남의 모금을 어떤 기준 없이 가벼이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금은 기부 문화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무엇이 진정한 모금인지에 대한 논쟁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모금 윤리관을 아는 모금전문가들 사이에 논의해야 할 사안이다. 만약 "돈을 뜯어낸다" 혹은 "받아낸다"라는 시각의 색안경을 쓰고 보는 사고의 평면에서는 비전문가와 모금전문가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논의할 사항은 아니다.
국제적으로 모금가의 모금 방법과 윤리적인 면을 평가하고 모니터링하는 두 가지 가이드라인이 있다. 하나는 기부자 입장에 본 '기부자 10대 권리장전'(Donor Bill of Rights), 어떻게 기부자를 대하는가, 어떻게 책무성(account)을 가질 것인가, 무엇을 모금가로부터 기대 하는가 등이다.
또 하나는 모금전문가 입장에선 '국제 모금전문가 윤리 코드'(International Statement of Ethical Principles and Practice), 어떻게 모금을 하고 기금을 운영하는지, 보상은 어떻게 받는지에 대해 자세히 규정이 나와 있다. 2008년 한국의 모금 리더들도 그 국제협약에 조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윤리코드의 테두리 안에서 충분히 잘잘못을 규명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은 각 나라별 모금 관련법과 일반 상법으로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박원순 변호사의 모금을 국제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명문화된 윤리 규정에 같은 페이지를 서로 들고 있을 때만 논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모금 방법으로 시작해 모금가의 자질(character)까지 확대해 논하는 것은 아주 난센스다. 이 세상에 누구든 완벽한 모금가는 없고, 교과서에서 나오는 완벽한 모금 환경은 현장에 존재 하지 않는다. 자연히 완벽한 모금방법 실행은 책에서만 가능하다. 필자가 경험한 박원순 변호사는 보기 드물게 가슴이 따스한, 자타가 공인하는 모금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본인이 스스로 밝힌 "모금전문가"의 의미는 세련된 기술을 가진 프로라는 것이기 보다 열정을 갖고 맡은 바, 모금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자부심에서 나온 말로 사료된다.
모금가가 기부자와 수혜자를 연결하는 매치메이커(matchmaker)의 역할이라면 아마도 롤 모델 중 한 사람일 것이다. 그는 필자가 보기에 자신이 단체의 미션이 변화함에 따라 임무를 철저히 하는 사람 같다. 처음에 시민단체에서 철저히 그 역할을 해냈고, 구제단체(charity organization)에서는 모금에 충실했고, 사회적 기업형 단체를 설립해 일자리 창출에 기여했고, 연구소에서 동시에 연구와 모금의 CEO 역할을 했다. 특이한 것은, 그는 마치 나비처럼 알, 애벌레, 번데기, 나비가 되는 네 단계의 완전 변태(complete metamorphosis) 통해 그의 모금은 스토리텔링화해 진화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서로 다른 장르의 서비스 역할이기에 전환하는 과정에서 모금의 동기에 의심받게 된 것 같다.
아마도 정치권에서는 대기업에서 기금을 받은 것이 그가 과거 몸담고 있던 시민단체와 연관을 지어 윤리적인 문제인 이해 상충(Conflict of Interest) 문제로 삼는 것 같다. 그 질문은 건강한 질문이지만, 한국의 기부와 모금의 문제 중에 대기업 모금 문제는 우선순위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상황과 수준에서는 대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았느냐는 것보다는 그것이 과연 투명하게 잘 사용되었느냐에 더 관심이 집중되어야 한다.
물론 대기업으로부터 기부를 받는 대신 어떤 순수하지 못한 대가가 주어졌다면 이는 모금의 문제가 아니라 유착의 문제이므로 또 다른 룰 안에서 논의할 문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이 문제는 사용처에 대한 검증으로 바뀌어지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 문제는 한 모금가가 짊어져야 할 짐이 아니다. 다른 더 중요한, 한국에 급한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이런 이슈로 인해 정작 중요한 것이 묻히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국의 모금 환경은 선진국과 달리 모금가의 이미지를 "앵벌이" 정도로 낮게 보고 안타깝게도 기업 기부가 개인 기부보다 많은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기업 기부가 70~80%를 차지하고 있는데 선진국은 그 반대로 70~80%가 개인 모금이다. 그렇기에 그 잣대로 평가할 수 없다. 한국의 모금 생태계에서 기업 모금이라도 포기했다면 오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비영리단체는 그 당시 문을 닫아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모금가 사이에선 그의 삶이 오롯이 녹아있는 모금 열정이 미국 같으면 오히려 AFP(국제 모금가 협회) 상을 받아야 할 사항인데 한국에서는 비판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 문화충격(culture shock)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도 한국 모금계가 치르는 성장통이라 생각한다.
본래 이상적인 모금은 기업보다 개인에게서, 강압보다 자유의사로, 소극적으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교과서에서 나오는 모금이다. 모금을 수년간 교실에서 교육을 받아서도 현장에서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보통은 본능적으로 모금을 하게 되는데 왜 교과서대로 하지 않았는가를 따지지 않는 이유는, 마치 총검술을 군에서 배웠지만 만약 육박전을 한다면 죽기 살기로 싸웠는데 왜 총검술에 배운 대로 하지 않았는가를 따지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모금가가 모금을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따지려면 만약 필자라도 그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결정을 한다면 그는 결단코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모금을 해보지 않거나 모금에 대해 수년간 고민한 전문가가 아니면 그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결국은 현대 공인의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약자의 요청을 받아 강자에게 요청하는 능력으로 평가받지 않는가.
비근한 예로 미국 환경단체인 EDF(Environmental Defense Fund)는 다른 환경단체와 달리 대기업(맥도날드)과 강경한 태도로 대치하기보다 20년 전에 서로 윈윈하는 파트너십을 가져 그들에게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사회적 환원에 적극적 투자를 하도록 하는 단체로 거듭난 예도 있다. 처음에는 의심스런 눈초리가 있었지만 지금은 성공 케이스로 남아 있다. 물론 지금도 다른 강경 단체의 도전도 받았지만 모금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나름대로 큰 역할을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기업 모금 문제의 핵심은 모금가가 아니고 기부자의 동기다. 모금가의 동기를 묻는 것은 너무 순진한 것이고 기부자에게 물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다. 모금가가 갖는 가장 중요한 질문 두 가지는 '누가 우리 단체의 기부자 구성원(Constituents) 인가' 그리고 '기부금을 주는 동기(Motivations)는 무엇인가'이다. 특히 동기는 기부의 순수성을 가려서 받고 안 받고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별(Segmentation)된 접근 전략을 세우기 위한 것이다. 아니면 기부자들의 기대치와, 단체가 법의 테두리 안에 보답하는 역량에 큰 차이가 있어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필자의 눈에는 기업이 내는 기부금에 대한 동기의 순수성에 대해 상대 진영의 정치인이 거론하는 것도 참 흥미로운 광경이다. 보통 미국에서는 여러 기부 관련 주제의 금기가 있는데 특히 기부금에 대한 순수성 시비가 그것이다.
이미 사회적 정서가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수준(comfort zone)에 도달했기에 잘 거론 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 내는 기부금을 순수한 이타주의로만 보는 시각에는 비전문가들의 우직함과 순수함도 섞여있는 것 같다. 동기만을 놓고 따지자면 그 시비에 누구든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조건부' '대가성' '의도성' 등의 동기는 학술적인 의미일 뿐 현장에서 받는 단체가 주로 관여할 일이지 외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항상 위험성이 있다.
또 하나는 기부 시기이다. 시기가 법적이나 기부 윤리성까지 확대된다면 순수하게 기부를 하려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도 하고 기부금을 안 내는 사람의 은신처가 되어 단체의 입장에선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기부금을 요청하면 "글쎄요, 전 하고 싶은데 시기가 오해를 받을까봐 정당한 시기에 나중에 하죠"라고 잠정 기부자가 미온적인 대답을 한다면 모금 전문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는 모금전문가 시험에도 나온 적도 있다. 그래서 요즘은 모금가 입장에서 보면 좀 더 세밀한 준비와 대처 방안이 요구되는 시대다.
모금가는 때때로 큰 것을 위해 작을 아집을 버릴 때가 있다. 자신이 모금을 해야만 단체가 사는 역할이라면 개인적 가치를 넘어서 대의를 생각하게 되고 때로는 오해도 사지만 모금전문가라면 비판도 담대히 맞설 수 있는 것이다. 좋은 모금가라면 주어진 환경에 자신의 주의(-ism)를 주장하지 않고 때와 위치에 따라 봉사하는 마음으로 더 큰 것을 취할 것이다.
필자는 박원순 변호사의 미션과 꿈이 무엇인지는 잘 알진 못하지만 최소한 모금에 관해서 그 미션을 위해 그 상황에서 맡겨진 임무에 최선을 다했고, 다시 그 상황이 온다면 아마도 똑 같은 결정을 했을 거라고 대답한다면 오히려 그에게 모금에 관한 한 등을 두들겨 주는 것이 옳다.
한 모금가가 마지막 단계인 나비가 되어 작은 몸짓이 큰 사회에 영향을 미치도록 돕는데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지금의 이러한 논란을 대한민국에서 건강한 기부 문화가 정착되기 위한 일련의 기회로 보며 관심을 갖고 주시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 펀드레이징 기준에 따라 대한민국에서도 건강하고 투명한 기부와 모금의 문화가 뿌리내려 아름답고 정의로운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