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몇 개의 학교를 단계별로 거치며 우리에게 선생님의 위치에 있었던 사람은 두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다. 각양각색의 선생들, 교사들, 교수들을 만나왔지만, 단지 부르기 위한 호칭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선생님'의 자리를 내어주고 싶은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물론 좀 더 따뜻한 관계를 맺었던 선생님들이 있긴 하지만, 우리의 지적, 정신적, 실존적인 고민에 자극이 되고 추동이 되어 진정 '선생'이라는 이름값에 부족하지 않은 이들을 찾기는 힘들다. 특히 격변의 현대사를 거치며 시대의 규정력을 거스를 수 없는 제도적 조건 아래에서 '선생'은 오히려 제도 밖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선생 '리영희'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프랑스의 <르몽드>가 일컬었다는 '사상의 은사'라는 표현을 빌지 않더라도, 1970~80년대 '리영희'는 고민하는 수많은 청춘들의 '선생'이었다. 리영희에게 '진짜' 지식을 전수받고 살아가야 할 방향을 되새기곤 하던 청춘들은 '리영희'라는 이름으로 배우고 '리영희'라는 이름으로 생각하고 '리영희'라는 이름으로 행동했다. 물리적인 폭력과 억압이 지배하던 시대, '선생'을 갈구하던 청춘들에게 '리영희'는 진짜 '선생'이었다.
다만 그 시대는 '선상님'을 비롯해 적지 않은 '선생'들이 경합하던 시대였다. 제각각의 선생들은 시대를 호령하며 자기 영토를 확보해갔고, 지적·인적·물적 네트워크를 형성해가며 선생의 자리를 지켜갔다. 제도 밖에서 얻은 '선생'이란 영광은 제도와 결합하면서 박제화되거나, 호칭과 지위만을 지시하는 일반명사로 전락했고, '선생'이란 두 글자가 풍겨내던 아우라는 소멸되었다. 또 '선생'이라는 영광을 영토화하지 못한 선생들은 잊히기 일쑤였다. 시대의 풍파 속에서 만들어진 '선생'이란 이름은 또 다른 시대의 풍파를 거치며 마모되어 갔다.
'리영희'라는 이름의 프리즘
| ▲ <리영희 프리즘 : 우리 시대의 교양>(고병권 외 9인 지음, 사계절 펴냄). ⓒ사계절 |
책의 기획은 선생의 팔순을 축하하고, '리영희'라는 존재를 생각해보기 위한 기념행사와 더불어 준비되었다. 그러나 리영희 선생은 모든 일을 극구 사양하였고, 오창익 국장은 책만은 선생의 의사와 상관없는 일이라며 밀어붙였다. 오창익 국장의 제안으로 책의 기획이 시작되었고, '선생 리영희'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되새길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돌입했다.
세파에 시달리며 퇴락한 '선생'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선생이라는 말의 의미, '리영희'라는 존재를 어떻게 알리고 전달할 수 있을지, 그럼으로써 자기 삶의 고민에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이 땅을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고민을 어떻게 자극할 수 있을지 등을 전달할 수 있는 책의 콘셉트를 정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책의 기본 성격은 헌정 도서임이 틀림없지만, 일방적인 존경의 뜻만 표현하는 일반적인 헌정 도서가 가지는 헌사 일색과 편벽함이 낯간지러운 일이고, 따라서 스스로에게 엄격하기 그지없는 리영희 선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공동 기획자인 오창익 국장과 출판사가 합의를 보았다. 하여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보여주는 기획을 만들기 위해 골몰했다.
그렇게 나온 기획 콘셉트가 '리영희'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닌, '리영희'를 매개로 삼아 그와 연관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또 기존의 리영희 선생의 제자군으로 분류되던 인물군보다 새로운 필자군을 찾아 청탁을 하되, 그들로 하여금 자기만의 전문적인 콘텐츠를 풀어내도록 하는 것이었다. 바로 제각각의 필자들이 '리영희라는 이름의 프리즘'을 들고 세상의 다양한 구석을 비춰보며 거기에 비쳐진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필자의 섭외부터 완성된 글을 받아내기까지는, 어떤 책이 그렇듯 지난한 과정이었지만, 책의 기본 콘셉트를 필자들에게 이해시키고 그에 맞는 글을 받아내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도 그 콘셉트가 어떻게 구현이 되어 나올지는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콘셉트를 소화해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전적으로 필자들에게 달린 문제였다.
짧은 시간에 필자들을 닦달하며 완성된 글을 받아내기까지 상당한 우여곡절을 거쳤다. 필자와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실리지 못한 글도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그 필자 선생님들께 다시금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리영희라는 이름을 되새기다
<리영희 프리즘>은 '선생 리영희'에게 바치는 헌정 도서이다. 그러나 고병권 선생이 첫 번째 글에서 썼듯이 모든 우상에 철저하게 맞섰던 '리영희'에게 헌정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한 시대를 가로질렀던 위대한 개인을 기념하기보다 '리영희'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 고민과 사유, 행동을 되새기고자 했다. 과거의 빛났던 순간을 박제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리영희'라는 이름을 어떻게 소화하고 사용할 것인지를 묻고 고민하고 답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선생'이란 말의 의미와 위상을 다시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리영희'라는 이름은 팔순을 맞은 한 노인의 생물학적 개체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다. 그 이름은 한 생물학적 개체의 활력적인 활동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내 곧 억압에 눌려 고요히 숨죽이고 있던 청춘을 깨우는 돌멩이가 되었고, 그 돌멩이는 민주주의를 위해 던져진 수많은 돌멩이들로 세포 분열했다.
'리영희'라는 이름은 한 시대의 저항을 표상하면서도,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바탕이 되는 교양을 표상했다. <리영희 프리즘>은 바로 그 교양을 재생하고, '리영희'라는 프리즘으로 빚어진 다채로운 교양 목록을 제시한다. 여기 '리영희'의 이름을 되새기는 일은 우리 시대의 교양을 배양하는 일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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