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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 국가' 첫걸음?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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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복지 국가' 첫걸음? 김칫국부터 마시지 않으려면…

[민주주의가 문제다]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의 한계를 말한다.

"문제는 바로 복지야!"

"어떠한 권력도 시대의 생각을 이기지 못한다."

빅토르 위고의 이 말에 동의한다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오늘, 한국 정치의 핵심 이슈는 당연히 하나다. "바보야, 문제는 바로 복지야!(It's the welfare, stupid!)"

'복지국가소사이어티'와 <프레시안>의 공동 기획으로 '민주 진보 진영' 리더들이 제시하는 복지 국가 건설의 비전과 방법을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복지 국가 정치 동맹>(밈 펴냄)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노동시장 양극화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심화된 조건에서, 한국 정치가 다뤄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다름 아닌 '복지', '복지 국가'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정치 동맹'이 필요하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재정 대비 복지비 지출 비중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하며, 노동 시간이 가장 길고 유급 휴가일 수는 가장 짧으며, 산재 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자살률 또한 가장 높은 나라다. 인간의 존엄보다는 하루하루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는 나라다. 시장 경제보다는 시장 사회다.

이런 현실에서 시민, 특히 노동자와 서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 복지 문제가 정치의 중심 이슈로 떠오른 것은 매우 늦은 일이지만 이제라도 필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의 근본 목적이기 때문이다.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은…

▲ <복지 국가 정치 동맹>(복지국가소사이어티·프레시안 기획, 밈 펴냄). ⓒ밈
<복지 국가 정치 동맹>에 등장하는 정동영, 문성근 등 열 명의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는 유사한 목표와 그런 목표 실현을 위한 전략을 제시한다. 목표는 분명하다.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돼온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낳은 실업과 고용 불안, 사회 경제적 차별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역동적이고 보편주의적인 복지 국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전략 또한 단순하다. 보편적 복지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보수적인 정부, 정당, 재벌, 언론에 맞서 싸우기 위해, 흩어진 야당과 시민운동을 아우르는 광범위한 '정치 동맹'을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들 열 명의 논자들 간에 견해차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시민운동가와 민주당 지도자는 복지 국가 실현의 전단계인 선거 경쟁에서 행정부·의회 권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단일 통합 정당이 보다 더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 정당 지도자들은 정치 노선과 조직 구성 원리가 서로 다른 정당 간 통합은 불가능할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선거승리나 복지 국가 실현을 위해서도 선거 연합 정도가 적절하다고 말한다.

복지 정책의 구체적 실행 방안에서도 미묘하지만 분명한 차이를 읽을 수 있다. 정동영, 조승수, 이상이 등은 보편주의 복지 정책에 필요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부유세나 사회복지세와 같은 증세 조처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하는 반면, 정세균, 천정배 등은 당장의 증세 없이 기존 조세 제도 개혁만으로도 적지 않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증세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정당과 시민 사회에서 활동하는 존경할 만한 리더들이 이처럼 복지 국가, 복지 정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본격적인 논쟁의 장을 열어준 것은, 대결과 증오의 언어가 난무했던 그간 정치 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현실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복지 국가 정치 동맹>에 담긴 비전과 전략 속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문제가 빠져 있다. 그것은 바로 복지 국가 실현을 위한 민주주의적 접근 내지 실천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복지 국가를 위한 민주주의적 접근 Ⅰ : 책임성

다른 모든 정책도 그렇지만,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복지 정책을 구현하려면 미래를 위한 구체적 비전만큼이나 과거의 경험에 대한 비판적 분석과 성찰 또한 중요하다. 특히 이것은 비정규직 증가와 중산층의 해체가 두드러진 시기 동안 집권했던 민주당 인사들이 답해야 할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 민주당 소속 정치인은 두 가지 답을 제시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과거 집권기 동안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나 일반 시민의 삶의 질 문제에 주목하며 효과적인 정책 처방을 제시하지 못한 데에 깊은 반성의 태도를 보여준다. 다른 한편 그들은 과거 '민주 정부'는 일반의 이해와 달리 그렇게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지 않았으며 그 '잃어버렸다는 10년' 동안 복지국가의 기본 틀이 구축되었고 복지 예산도 크게 늘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복지 국가를 실현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복지 국가 실현을 담보할 만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나 4대 사회 보험 통합, 복지 예산 증대 등은 이전 김영삼 정부나 현재의 이명박 정부와 비교하면 차별적인 정책 실천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지지를 구하는 시민 유권자는 민주당이 기대하는 것처럼 전임 정부나 현 정부를 비교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의 삶에서 '민주 정부'가 자신들의 사회 경제적 필요와 요구에 얼마나 부응했는가를 가지고 민주당과 지난 정부를 평가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지난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통해 민주당은 분명한 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나라당 정부를 비교의 준거로 다소간의 차이를 말하는 것은 새로운 복지 정책 실현의 대중적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에 크게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식에 동의한다면,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태도가 보다 큰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과거 집권 기간 동안 '사회 경제적 문제'에 주목하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앞으로는 이 문제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다짐을 일반 유권자들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이라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정치에서 이렇게 추상적이고 모호한 반성과 성찰보다 더 중요한 요소는 왜 과거에는 그러지 못했는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왜 민주 정부는 지난 10년 기간 동안 재벌 의존-노동 배제의 사회 경제 체제를 바꿔놓지 못했는가?

경제 위기나 신자유주의 혹은 재벌과 언론의 '막강한' 영향력을 말하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도 같은 시기 유사한 외적 환경 하에 있었고 그들 나라의 보수 세력도 경제 민주화와 복지 확대에 완강히 저항했지만, 이에 대한 나라별 정치의 대응은 달랐고 한국만큼 급격하게 사회적 안정성이 깨뜨려지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왜 이런 사태가 이른바 '민주 정부'에서부터 시작되고 확대되었으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집권으로 귀결되었는가? 당장 "경제 성장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경제 정책의 기조로, 재벌과 대기업을 성장의 중심 동력으로, 노동자 농민 등 사회적 약자를 소외시키는 쪽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공히 똑같은 정책 목표"를 견지해왔다는 정치학자 최장집의 비판에 뭐라 답할 수 있는가?

불과 1년 전 중도 실용의 기치를 내걸고 '뉴민주당 선언'을 주도했던 지도자까지 갑자기 복지를 외치고 나선 형국인데, 그렇다면 어느 시민이 이런 정치적 비전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한국의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줄곧 요구하는 '진정성'이란 측면에서 과연 이들의 복지 동맹에 대한 정치적 언명은 어느 정도 진정성을 확보해낼 수 있을 것인가? 솔직히 의문이다.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의 '참여'와 함께 정치인의 '대표성'과 '책임성'을 기본 원리로 작동하는 정치 체제이다. 참여나 대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상식 수준에서도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이들 개념과 비교할 때 책임성은 분명하게 이해되고 실천되는 경우가 드물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개념은 흔히 정치인이 결과에 책임지는 태도를 의미하는 영어의 '책임(responsibility)'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보다 정확한 용어는 '설명 책임(accountability)'이다. '설명 의무'다. 주권자는 결정권을 갖는다. 결정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보를 제공하는 책임은 상당 부분 정치에 있다. 정치적 설명에 있다.

여기서 굳이 '설명 책임'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문제의 결과에 대해 대표로서의 정치인은 시민들이 이해할 만한 '설명 내지 해석(account)'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의 설명이 정책 전문가나 사회과학자만큼 엄밀하거나 객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시민이 상식 수준에서 이해할 만한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이며, 이것은 향후 복지 정책 실현에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앞으로 이 책을 읽을 이들은 특히 정치인들의 대담을 중심으로 꼼꼼히 읽어보기를 권유한다. 그렇다면 나의 문제의식에 동의할 것이다. <복지 국가 정치 동맹>에서는 그러한 '책임 있는 설명'을 찾아보기 어렵다.

복지 국가를 한 민주주의적 접근 Ⅱ : 운동과 정당의 의미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의 논자들은 보편주의적 복지 국가 실현의 방편으로 운동의 동원이나 통합 정당 내지 선거 연합 전략을 강조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문제가 빠져있다.

한국은 운동을 통해 민주화를 성취한 대표적인 나라로 운동의 전통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서 운동은 기존 정치권이 다루지 못하는 새로운 의제를 제기하거나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의 퇴행적 양태가 나타나는 것을 저지하는데 있어 효과적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의 한계 또한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른 나라도 그렇듯이 운동은 대개 단일 의제를 중심으로 짧은 시간에 걸쳐 폭발하며 중산층 시민의 적극적 참여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노동, 교육, 산업 정책이 상호 긴밀하게 연계될 수밖에 없는 복지 국가 건설, 복지 정책 재편에서 운동만으로 새로운 복지 체제를 건설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복지 정책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가 되는 노동자와 하층 집단의 참여가 필수적이며,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는 계층과 부문 집단 간의 이익 조정과 타협 또한 불가피하다. 그리고 복지를 단지 운동의 일시적 열정이나 국가의 관료주의적 행정 실천에 머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하고 광범한 이익과 갈등을 동원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정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복지 국가 정치 동맹>에서는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복지 국가 모델로 스웨덴을 자주 거론한다. 우리는 스웨덴과 같은 북유럽식 복지 체제를 두고 흔히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을 들어왔다. 시민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국가가 그들의 삶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북유럽 노동자 정당의 조직적 실천에서 비롯된 말이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가 허용하는 최선의 복지 국가를 실현하는데 있어 강력한 노동자 정당이 무엇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한 세기 전 유럽의 극심한 사회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이들 북유럽 노동자 정당은 국가나 교회조차 거부했던 노동자와 하층집단의 조직화를 위해 그들 삶의 거의 전부, 즉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 하며 그들의 권리와 이익을 대표하고자 했고, 이러한 조직적 역량을 바탕으로 복지 국가를 건설했다.

물론 21세기 한국 정치에서 20세기 초반의 정당 실천을 그대로 따라야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통합 정당이나 선거 연합 전략을 말하기에 앞서 현재 우리 정당의 조직적 실천이 어느 정도 수준에 머무르는지, 과연 이러한 조직적 역량을 바탕으로 일관된 복지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지는 검토해봐야 할 사안이다.

북유럽 노동자 정당의 실천이 너무 이상적이거나 지나치게 먼 과거 일이라면, 우리가 자주 참고하는 미국의 경험을 살펴볼 수도 있겠다. 운동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무브온(MoveOn)'이나 '티파티(Tea Party)' 같은 미국 정치 운동의 사례를 자주 언급하곤 한다. 그러나 미국 정치에서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유럽의 기준에서는 달라 보이지 않는 민주당과 공화당조차 지지 집단에서는 뚜렷한 사회적, 계층적 차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분명 미국 민주당은 그 나라 노동자와 하층 집단,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고, 공화당은 중상층과 서유럽 이민자 출신의 백인과 프로테스탄트 유권자들이 주요 지지 집단이다. 이것은 1930대의 대공황과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뉴딜 이후 큰 변화 없이 지속되고 있는 미국 정당 체제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한국의 정당 정치는 어떠한가? 우리의 민주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지지 집단에서 어떤 사회 경제적 구분 내지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가?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은 누가 대표해야 하는가? 우리 정당은 여전히 '모두를 대표하면서도 누구도 대표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 채 운동을 말하거나 선거 연합, 정당 통합을 말하는 것은, 우리가 선별적 복지 체제라며 탐탁지 않아 하는 미국의 복지 수준에도 도달하기 어려움을 뜻한다.

복지 국가를 위한 민주주의적 접근 Ⅲ : 대화와 타협을 통한 대표

민주주의 정치에서 요구하는 책임성과 정당의 역할에 대한 요구를 충족시킨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지 국가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의 태도나 역량이 아니라 복지와 사회 경제적 시민권의 가치에 소극적이거나 유보적인 현재의 집권 세력 내지 보수 정당의 태도와 관련된 것이다.

서울시 전체 예산의 0.3퍼센트가 소요되는 무상 급식조차 '망국적 복지 포퓰리즘' 운운하며 '차별적 급식'을 위한 주민 투표 운동을 벌이는 조건에서 보편적 복지 정책을 실천하기는 어렵다. 설령 복지 정책의 확대와 복지 국가를 실현코자 하는 정치 집단이 향후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얻어 일관된 정책 실천을 펼치고자 하더라도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재벌과 사회 기득권 집단이 '세금 폭탄'이나 '포퓰리즘', '사회주의'를 들먹이며 여기에 강하게 반발한다면 복지 국가 실현은 전혀 쉬운 일이 못될 것이다.

특히 '종북 좌파' 혹은 '빨갱이' 프레임이 여전히 작동하는 나라에서,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가족 기업 집단 재벌(chaebol)이 경제를 독점 독식하고 있는 나라에서, 보수 언론, 보수 교단, 보수 정치 세력, 보수 경제 집단이 강고한 봉건적 기득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나라에서 복지 동맹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실천을 담보해 나갈 수 있을까?

이것은 현재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 미국의 오바마-민주당 정부가 공화당이나 티파티 운동의 반발 속에 효과적인 경기 부양 정책도 사회 복지 정책도 실현하고 있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정치는 정당들이 사회의 다양한 이익과 열정을 조직해 다수의 지지를 얻어 정부 권력을 획득코자 하는 갈등과 경쟁을 통해 작동한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서로 다른 이념, 가치, 이익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이 선거에서 패한 정당을 지지한 유권자의 요구와 이익까지 포괄해 보다 넓은 대표의 체제를 운영하는 민주주의의 미덕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복지 정책, 사회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극단적인 대립과 공허한 이념 논쟁만 난무한다면 복지 지향의 정치 세력이 설사 집권에 성공한다 해도 정책상의 큰 전환점을 마련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복지 정책 또한 여느 정책과 마찬가지로 건설적인 경쟁과 타협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복지 정책으로 대표되는 사회 경제적 권리를 요구하는 집단의 정치적 역량 강화뿐 아니라 다른 가치, 다른 관점으로 복지를 이해하는 보수 세력의 태도 변화 역시 중요하다.

다행히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에서도 그런 일신의 면모가 부족하나마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것 또한 더 많은 시민 유권자를 설득하고 그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노력뿐 아니라 사실과 논리를 근거로 상대 세력의 주장에도 귀 기울이는 정치적 관용의 문화가 뿌리내려야만 유지될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잠시 정치적 숨을 고르자

민주주의는 시민이 향유하는 권리의 체계로 구성된다. 일찍이 토머스 마셜이 정리했듯이, 서구 민주주의에서 시민권의 역사는 시민적 권리(civil citizenship)로부터 정치적 권리(political citizenship), 사회적 권리(social citizenship)로 나아가는 발전의 궤적을 보여주었다.

후발 민주주의 국가로서 우리는 적어도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서는 남부럽지 않은 성취를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아직도 미흡한 부분도 많다. 그리고 사회 경제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가 선순환되지 못하는 시민의 기본권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그러나 사회 경제적 권리에서 복지는 여전히 시혜적이고 온정적인 정부 예산 급부 차원에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다른 누구보다 민주당이 대표코자 하는 중산층, 서민, 노동자의 복지권, 사회적 시민권의 요구를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실천은 전혀 쉬운 일이 아니다.

바야흐로 복지와 정치 동맹 논의의 백화제방(百花齊放),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다. 좋다. 좋은 일이다. 누구나 논쟁에 참여하고 자신의 논리를 제시하며 이를 실천으로 만들어낼 시민적 권리를 누려야 한다. 다만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리고 일정 부분 책임을 분담할 수밖에 없는 시민운동가라면 조금은 겸허해야 하고 자기 희생의 진정성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정치적 실천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서도 정직해야 한다. 불과 열 명의 지도자 사이에서도 구체적 방법론을 놓고는 교집합을 추출해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상당 부분 혼자만의 논리와 목소리로,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전만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칫 지나친 낭만주의적 기대의 결과는 아닐까.

복지 국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 수준과 시민의 자기 결정을 위해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을 읽자. 여름이 가기 전 이 책을 읽자. 그런 다음 잠시 멈춰 서자. 19세기 영국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은 이런 말을 남겼다.

"흐릿한 먼 곳을 무턱대고 쳐다보지 말고 우리가 서 있는 주변의 복잡한 상황을 잠시 동안 조용히 응시하자."

철학의 출발이 판단 중지(epoche)라면, '복지 국가 정치 동맹'을 위해 잠시 정치적 숨을 고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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