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앞에 섰다. 지난번 이사 때, 이삿짐센터에서는 퀸 사이즈 침대보다, 피아노보다, 드럼세탁기보다 세 개의 책장을 빼곡히 채웠던 책들을 더 힘들어했다. 그때 이후로 책장이 두 개가 더 늘었다. 읽고 난 후 한 번도 뺄 일이 없던 책들을 좀 가려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때, 한 권의 책이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한강의 소설집 <여수의 사랑>(문학과지성사 펴냄)이 하얀 책등이 노랗게 바랜 채 거기, 있었다.
| ▲ <여수의 사랑>(한강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
5년 전, 집을 나올 때, 내 짐은 여행 가방 하나뿐이었다. 그 안엔 당장 입을 옷가지와 책 두 권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한 권이 <여수의 사랑>이었다. 어쩌면 나는, 단편 '여수의 사랑'에서 여행 가방 두 개와 보퉁이 하나를 들고 서 있던 자흔의 모습이 당시의 나와 어딘가 닮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녀처럼,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삶이 내게도 시작된 거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스물여섯, 그때 나는 꼭 자흔의 나이였다. 사실 캐릭터로 보아도 나는 부주의하게 돈과 물건들을 여기저기 아무 데나 놓아두는 자흔의 편에 가까웠다. 화자인 정선처럼 결벽증을 가질 만한 사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된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의 사랑'의 첫 문장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부터, 나는 '여수'에 꼭 가리라 다짐을 했었다. 정선에게 자흔이 조잘대던 것처럼, 여수항의 밤 불빛을 보고, 돌산대교를 걸어서 건너고, 돌산도 죽포 바닷가의 눈부신 하늘을 보고, 오동도에도 가보고, 오동도의 동백나무들이 나무껍질 위로 뚝뚝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면, 두 개의 여행 가방과 한 개의 보퉁이를 든 자흔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돈이 없었다. 몇 년 후, 적지만 월급이라는 것을 받기 시작한 어느 날. 모처럼 만에 쉬게 된 공휴일에 나는 충동적으로 간단한 여행 가방을 싸서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여수로 가는 기차는 용산에서 타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용산으로 갔지만 역시나 나는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 시간 이후 여수로 가는 기차는 전석 매진이었다. 화창한 봄날이었고, 연휴의 첫날이었다. 내가 쉬는 날은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쉬는 날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알았다면 얘기가 달라졌겠지. 하지만 그럴 주변머리가 있었다면 애당초 서울역으로 헛걸음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
나는 스물아홉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수에 갈 수 있었다. 장흥에 일이 있었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일행들에게서 빠져나와 여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름 한낮의 장흥은 황금빛 논과 파란 바다가 어우러져 눈이 부셨다. 순천과 보성을 지나는 버스 안에서 나는 깜박 잠이 들었고, 눈을 떴을 때엔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막 도착한 여수의 모습은, 예상대로 회색빛이었다. 가슴이 먹먹하게 뛰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곳에서 자흔을 만났을 리 만무하다. 나는 다만, 여수항의 불빛을 보며 소주를 마셨고, 돌산대교를 버스 타고 건넜으며, 돌산도 죽포 바닷가에 가고자 했으나 못 갔다. 오동도에는 갔으나, 한여름이라 동백꽃은 모두 지고 난 뒤였다. 그러나 맛있는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무한 리필되는 전라도의 거한 밥상은 나를 감동시켰고, 향일암 벽에 동전을 붙이고 빌었던 소원은 절실했다.
그렇게 짧은 여수 여행을 마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내 것인 줄 알았던 자흔의 旅愁가 내 기억의 麗水가 되었음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은 바다로 흘러가고, 그 바다는 여수 앞바다하고 섞여 있어요."
사실, 두 살 때 여수발 기차에 버려져 여러 시설과 고아원을 전전하다 입양된 집에서도 양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힘겨운 타지 생활을 계속 해야만 했던 자흔의 상처에 내가 공감할 이유는 없다. 술에 취한 아버지 손에 여수 바다에 던져져 죽은 동생이 내밀던 손을 뿌리치던 기억을 가진 정선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저 좋은 작품을 만났을 때의 행복과 여운을 간직하면 그것만으로도 '여수의 사랑'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상처가 다 내 것 같은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은 이십대의 기억이 다 있지 않은가. 더 큰일을 겪은 누군가에게는 아주 사소한 고민 정도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상처가 크다고 해서 내 상처가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니 말이다. '여수의 사랑'은 그런 시절에 만났다. 그래서 나도 여수로 가, 내 상처의 본질을 보고 싶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물이 섞여 들어간 여수의 바다에 가면 볼 있을 것도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거짓말처럼 자흔이 내 앞에 나타난다 해도 돌산 갓김치 앞에 놓고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며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자흔은 그 시절의 나이거나 이제는 다 아물고 흔적만 남은 그때의 상처일 테니까.
책장에 꽂힌 다른 책들을 좀 더 천천히 훑어본다. 거기엔 그저 다른 사람들이 쓴 이야기만 활자로 박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지난날이, 그 책의 갈피갈피에 오래된 종이 냄새처럼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어떤 것을 처분해야 할지 선뜻 고르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새 집으로 이사해서, 침대 없이 이불을 펴고 자거나 피아노를 배우려던 마음을 접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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