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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후쿠시마…괴물에 맞설 시민의 무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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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황우석·후쿠시마…괴물에 맞설 시민의 무기는?

[프레시안 books] 이영희의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현대 사회는 흔히 '과학기술 사회'라고 불린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그동안 다양한 기계와 에너지를 개발하면서 산업 혁명을 일으키고 자동화를 통해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가 가능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TV,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컴퓨터, MP3 플레이어, 노트북, 핸드폰, 스마트폰, 태블릿 PC까지 과학기술의 발달은 다양한 소비재를 생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즐겁게 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대중은 과학의 발달을 환영하고, 과학자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과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실생활에 유용한 기술로 연결시키는 과학기술자들도 그 대열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러한 흐름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이 점차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때는 생활용품을 만들어내는 공장에서, 도시와 시골을 이어주는 기차에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버스에서, 농사일을 덜어주는 경운기에서, 곳곳에서 품어내는 매연과 기름 냄새가 문명의 냄새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해충들을 죽여 수확량을 늘려주는 농약 냄새마저도 싫지 않았다. 하지만 농약으로 인해 많은 농민이 목숨을 잃고, 매연과 공장 폐수로 건강을 해치게 되면서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그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치면서 밝혀지기 시작한 공장 폐수와 매연에 따른 환경 문제와 인체 피해, 농약의 위험성, 대량 살상 무기의 치명적 피해 등은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더욱 확산시켰다.

오늘날 과학기술에 대한 의심은 일상생활 곳곳에서도 다양하게 분출되고 있다. 나노 기술을 적용하고 있는 화장품 등에서 미세한 나노 입자들이 피부 세포나 호흡기 등을 통해 인체에 흡수될 경우 독성을 뿜어내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고, 가습기의 세균을 제거한다는 살균제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켜 영유아 사망의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새로운 과학기술이 적용된 상품들이 이윤 추구를 위해 그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으로 팔려나가게 되면서 소비자들이 실험 대상으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나아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과학기술이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다. 과학기술적 안전성을 장담하던 일본의 핵발전소가 자연의 힘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면서 방사능 유출로 인한 피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핵 기술의 평화적이고 안전한 이용을 내세워 정당성을 주장하던 핵 발전이 치명적인 사고로 많은 사람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인체 피해를 입히고 엄청난 복구 비용을 지불하게 된 것이다.

또 오늘날 지구 곳곳에서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지구 온난화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에 기초한 화석연료의 무분별한 개발과 이용으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다. 수년전 국내에서 논란이 되었던 소위 '황우석 사태'는 생명 복제에 따른 생명 윤리와 연구 윤리의 문제를 촉발했다.

▲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이영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문학과지성사

이처럼 과학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현실 속에서 시민들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데 길잡이가 될 수 있는 책이 최근에 출간되었다. 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과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고민해온 가톨릭대학교 교수 이영희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문학과지성사 펴냄)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과학기술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던 시절에는 '과학기술'과 '민주주의'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아니 '과학기술'의 발달이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발달을 가져온다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과학기술'은 사회과학자들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사회와 독립적인 절대적인 선인 것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핵폭탄의 원리에 대한 과학적 발견이 제2차 세계 대전 과정에서 핵무기 개발에 따른 인류에 대한 치명적 피해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개발은 그 사회적 사용에 따른 환경적, 신체적 피해를 고려하지 않고서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의 사회철학자들인 프랑크푸르트학파는 20세기 초에 과학기술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와 추종이 과학기술자와 행정 관료의 결합을 통한 기술 관료적 지배로 이어져 물질적 풍요를 통해 대중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키고 인간의 삶을 소외시킨다고 경고한 바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는 과학기술의 개발과 이용에 따라 기계에 종속된 노동으로 육체가 쇠약해지거나 자연 환경 변화와 환경오염 등으로 다양한 질병과 건강의 위협에 노출되게 되는데, 그 이득은 대부분은 지배 계급이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영희는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제1부에서, 과학기술 사회에서 점차 우세해지고 있는 이러한 현실을 '전문가주의', '기술 관료주의'라고 비판하면서 전문가와 기술 관료들이 전문 지식(전문성)을 내세워 정책 결정 과정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작동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시민들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의 생산과 이용에 대한 결정을 과학기술자가 독점하는 것은 시민들을 수동적, 종속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다양하게 개발되는 과학기술 또는 의료 기술은 그 안전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으며, GMO(유전자 조작 식품), 유전자 치료 등 실제로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과학기술이 상품화되고 사회적으로 유통되어 일반 시민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과학기술은 자본주의의 상품화, 상업주의 논리, 이윤 추구 논리와 더욱 긴밀히 결합되면서 점점 더 공공성과 윤리의 문제를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적 재산권'과 '특허권'의 상업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지식의 자본화, 산업화, 상업화'가 확산되고 국가 경쟁력 논리를 강조하는 정부와 기업이 '산학 협력'을 내세워 대학을 산업적,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학문의 독립성과 공공성, 과학자들의 자율성도 크게 훼손되고 있다.

과학적 지식의 공공성, 불편 부당성, 개방적 토론, 과학자 윤리 등이 돈과 경쟁의 논리에 잠식당하면서 과학자 사회에서도 사적 이익의 추구, 공적 지식의 사유화, 비밀주의, 불신, 비윤리성 등이 팽배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적 지식은 사적 이윤 추구의 도구가 되며 일반 시민은 돈벌이의 대상이 된다.

여기서 이영희는 과학기술의 공적 사용을 위한 '과학 상점(science shop)'-상점이 상품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 창고'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식의 공공성을 내세우는 '카피레프트 운동'처럼 사회적 지식의 사유화, 상품화에 저항하는 의미 있는 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민주주의>의 제2부와 3부에서는 이와 관련된 구체적 쟁점과 논쟁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생명공학의 발달에 따른 생명 복제와 유전 정보 이용의 문제점, 나노 기술의 발달에 따른 환경적, 신체적 피해에 대해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부 정책의 성격과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건강과 관련된 유전자 정보가 기업의 노동자 관리 자료로 사용되고 또 보험 회사의 가입자 평가 자료로 사용된다. 위험의 공동체적, 사회적 보장을 원리로 하는 보험이 가입자를 선별함으로써 손실을 줄이는 데 몰두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과학기술에서 상업주의적 이윤 추구 논리가 팽배해짐에도 신자유주의적 시장과 경쟁 논리를 신봉하는 정부는 성장주의와 국가 경쟁력 논리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는 생명 복제 기술과 관련하여 생명 윤리와 연구 윤리를 바라보는 반인권적, 반생명적 태도, 핵폐기물 관리 체계에서의 권위주의적, 기술 관료주의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과학기술의 사회적 사용에 관한 정보의 자유로운 소통과 일반 시민들의 가치관 및 의견의 민주적 표출을 방해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의 사회적 사용으로 인해 영향을 받는 일반 시민들이 과학 기술 정책의 결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 문제를 제기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기술 시민권(technological citizenship)' 논의를 끌어들이면서 시민배심원제, 합의회의, 포커스 그룹, 시나리오 워크숍, 참여 설계 등 다양한 참여 민주주의 모델들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기술자들의 '기술적 전문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곧 그 과학기술의 사회적 사용에 대한 전문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다양한 경험과 일상적 지식이 과학기술의 사회적 효과에 대한 논의와 결정 과정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으며, 시민 참여를 통해 결정된 과학기술 정책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주적 정당성과 효과성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환경적, 사회적 영향에서 불확실성과 영향력의 범위가 큰 과학기술일수록 더욱 더 신중하고 민주적인 결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과 의학 기술의 안전성, 확실성, 공공성이 의심받고 있는 지금 참여 민주주의, 토의 민주주의는 과학기술이 인간과 자연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통제하고 차단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통로가 되고 있다. 그래서 시민 참여를 제도화하고 그 폭을 확대하려는 노력은 과학기술의 개방화, 민주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방안이 된다. 정부와 시민 사회의 거버넌스를 통한 과학기술 정책의 결정은 과학기술의 사용이 가져올 환경적, 사회적 효과들을 성찰함으로써 과학기술의 바람직한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 민주주의는 과학기술의 부정적 효과를 막아내는 만병통치약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이영희는 합의회의에 대한 평가에서 시민단체가 주도한 합의회의가 특정한 입장으로 인해 중립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합의회의의 결과가 실제 정책 형성 과정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려면 정부관련 기관이 주도하는 합의회의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영희도 지적하고 있듯이 과학기술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정부 관료/과학기술자/전문가'와 '일반 시민'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과학기술자/전문가 사이에도 그리고 일반 시민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기술 정책의 결정 과정은 다양한 이해관계 및 가치와 관련된 사회 세력, 집단 간에 벌어지는, 과학기술적 지식 또는 전문 지식(전문성)의 정당성 획득을 둘러싼 담론적, 헤게모니적 갈등과 경합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이러한 전문 지식(전문성)의 정치에서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투명하고, 개방적이고, 공정한 소통과 결정의 절차를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영희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겠지만 이 책에서 제안하는 참여 민주주의적 제도들은 궁극적으로 정부와 의회의 결정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아직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은 또 다른 문제로 관심을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시민들이 시민사회에서의 '영향력의 정치'를 넘어서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회의 주도 세력을 과학기술적 위험이나 환경적 위험에 대해 더 성찰적이고 시민 참여에 더 친화적인 정치 세력으로 바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과학기술의 정치, 전문 지식(전문성)의 정치를 자본주의와 국가, 세계화 등 더 큰 틀에서 살펴보는 연구가 이어질 필요가 있겠다. 앞으로 이영희의 연구가 기대된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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