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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과학자가 핵폭탄을 만들 수 있었다면…

[후쿠시마 그리고 1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전환점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후쿠시마 사고, 그 1년을 맞아서 '프레시안 books'는 특집호 '후쿠시마 그리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책과 함께 선보입니다. <편집자>

대학교 3학년이었던가, 과학사라는 수업을 들을 때였다. 기말고사 시험에 이런 문제가 나왔다.

"만약 당신이 원자폭탄 개발 계획에 초대되었다면 그에 응할 것인가? 그 이유를 쓰시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일이라 무슨 답을 썼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참여는 하겠지만 적극적인 협조는 하지 않겠다는 투의, 상당히 애매하면서도 기회주의적인 답을 썼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아직 원자폭탄을 만든 적이 없으니 이런 질문을 실제로 받아 본 과학자는 거의 없을 것이므로, 질문이 주는 현실성이나 긴장감이 좀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나라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그 현장감이나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마틴 셔윈·카이 버드 지음, 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를 읽어보는 것도 한 가지 좋은 방법이다.

이 책은 미국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핵무기를 처음으로 개발하기 위해 수립했던 이른바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 분야 총책임자였던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년)의 일대기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1942~1946년 동안 진행된 원자폭탄 개발 프로젝트로서 당시 시세로 약 24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240억 달러, 한화로 따졌을 때 25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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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마틴 셔윈·카이 버드 지음, 최형섭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원자폭탄 제작 계획에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원래의 프로젝트 본부가 맨해튼 브로드웨이 가 270번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맨해튼 프로젝트의 중심부는 1943년 3월 로스앨러모스에 세워진 새로운 연구소였다. 완공 당시 로스앨러모스에 들어간 과학자, 기술자, 지원 인력은 모두 100여 명이었으나 1945년에는 4000명 이상의 민간인과 2000명의 군인이 로스앨러모스에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 정도가 되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로는 우선 소장을 맡은 오펜하이머를 비롯해서 한스 베테, 로버트 윌슨, 리처드 파인만, 아서 콤프턴, 엔리코 페르미, 어니스트 로렌스, 폰 노이만, 에드워드 텔러, 스타니슬라프 울람, 유진 위그너 등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거의 모두 망라돼 있었으며,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과학자들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만 해도 대략 20명을 헤아렸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중심 연구소는 로스앨러모스였지만 미국 전역에 걸쳐 맨해튼 프로젝트와 관련된 시설이 들어섰고 수십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이 나치보다 더 빨리 원자폭탄을 만들겠다는 (그리고 소련에 대한 전략적 우위를 점하겠다는) 일념으로 국운을 걸고 진행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나이 마흔이 채 되기도 전에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장직을 맡은 오펜하이머는 예리한 과학적 통찰력과 놀라운 수완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전혀 새로운 개념의 대량 살상 무기를 만든 것은 과학자들이었지만, 정작 과학자들은 그 끔찍한 무기의 사용이나 통제에 어떤 권한도 갖지 못했다. 최초의 원자폭탄인 '리틀 보이'가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당시 거주 인원인 약 30만 명 중 사망자만 7~8만, 부상자는 10만 명을 훨씬 넘었다.

과학자들 중 일부는 직접 폭탄을 투하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시범을 보임으로써 일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도 주장했으나 실제 투하는 철저히 군사적이고 외교적인 관점에서 결정되었다. 오펜하이머는 전쟁이 끝난 직후 전 세계적인 원자력 에너지의 통제와 핵무기 철폐를 위해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미국 행정부는 소련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하고 확실한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핵무기 숫자를 늘리는 한편, 핵 기술의 공개와 전 세계적인 통제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소련이 핵무기 실험을 성공한 것은 미국이 뉴멕시코 주 트리니티 실험장에서 처음으로 핵무기 실험을 성공한 지 불과 4년 뒤인 1949년이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오펜하이머의 사진은 <타임>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물리학, 그리고 물리학자가 국가에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도 맨해튼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미국의 과학자들은 아직도 맨해튼 프로젝트를 거론하면서 과학에 대한 정부의 투자를 촉구한다.

과학자들은 전례 없는 대량 살상 무기의 등장과 실제 그로 인한 대량 인명 살상에 얼마만큼의 책임을 져야 할까?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인류 공멸의 위협에 또 얼마의 책임을, 또 어떻게 져야 할까? 아예 그런 책임 따위는 애초에 없는 것일까?

나는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나 맨해튼 프로젝트 관련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만약 당시 미국에 조선의 핵물리학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당시 원자폭탄 투하에 찬성했던 군부의 장성들이나 고위 관료들은 한결같이 일본 제국주의의 야만성과 일본군의 잔학성을 거론했다.

그 야만성과 잔학성을 무려 36년이나 온몸으로 겪어야 했던 조선의 심정은 그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그런 심정을 담고 있는 조선의 물리학자가 있어 만약 맨해튼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다면, 잠시라도 망설였을까? 수많은 민간인이 살상된 데 나중에 조금이라도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나로서는 대답을 찾기가 쉽지 않은 상상이었다.

최근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원자폭탄 제조만큼 센세이셔널하지는 않더라도 과학자들의 사회적인 책임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줄지어 벌어지고 있다. 황우석 사태, 광우병 파동, 4대강 논란, 천안함 사건 등 한국 사회 전체를 뒤흔든 이슈들 속에서 과학자들의 역할과 책임이 점차로 높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만약 그런 사건들이 터졌을 때 과학자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더라면 한국 사회 전체의 소모적인 비용을 많이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예를 들자면,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전 주변의 일부 과학자들은 이미 황우석 교수의 연구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같은 연구비를 받은 사람도 있었다) 내부의 자정 작용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잘못된 일을 목격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며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잘못을 고치려고 나서지 않고 오히려 계속해서 거기에 편승해 이익을 취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새로이 시작한 'WCU(World Class University,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 육성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업은 단기간에 국내 대학의 순위를 높이기 위해 돈을 들여 외국 석학을 모셔오는 것이 목표이다. 내가 만나 본 교수들 중에서 WCU는 쓸데없는 곳에 돈만 낭비하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이것을 공공연하게 문제제기해서 고치려고 하는 사람 또한 거의 본 적이 없다.

천안함 사건에서도 과학자들의 역할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한국은 세계 10대 조선소 중 무려 7개의 조선소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조선 최강국이다. 그런 나라에서 군함이 두 동강이 났는데도 조선 전문가의 다양한 견해를 들을 기회는 거의 없었다. 지난해 후쿠시마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여러 대학의 원자핵공학과 교수들이 줄줄이 TV에 나왔던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에 결정적인 열쇠였던 함정과 '1번 어뢰'의 흡착 물질 분석에 대한 검증은 재외 과학자들 몫이었다. 대학 물리학과의 절반 정도가 고체물리학임을 생각해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앞으로 과학자의 역할과 그에 따른 책임은 더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지난 2007년 대선 때 어느 후보는 달 탐사를 공약으로 내세우기도 했었다. 올해 가을에는 나로호 발사가 예정돼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이었던 과학 비즈니스 벨트 사업에는 3조5000억 원이 들어간다. 올 연말 대선에는 또 어떤 후보가 대형 과학 프로젝트를 공약으로 내세울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액수는 5년 전보다 훨씬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책임성을 갖고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명운이 걸린 과학 프로젝트가 망국의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듯이 지난 20세기는 과학 문명의 시대였다. 21세기는 더더욱 그러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과학자들은 그 과학 문명을 이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인류의 문명 전체에 대한 고민과 책임의식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과학자는 그저 단순히 논문 쓰는 기능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일급의 과학자들도 자기들이 만들고 있던 신개념 폭탄의 위력이 얼마나 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강력한 핵폭발로 인해 지구의 대기를 모두 태워버릴지도 모른다고 추측했었다. 아메리카의 프로메테우스가 되려다가 자칫 지구 전체를 홀랑 태워먹었을지도 몰랐던 것이다.

1927년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콤프턴은 '인류의 생존을 걸고 도박을 하느니 나치스 치하의 노예로 사는 편이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한다. 아예 그랬다면 어느 경우든 핵무기 통제니 양심의 가책이니 하는 (또 다른 종류의 가책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따위의 말조차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오펜하이머도 원폭 투하 이후 트루먼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았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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