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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vs. 정도전…대한민국의 진짜 멘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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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세종 vs. 정도전…대한민국의 진짜 멘토는?

[프레시안 books] 박봉규의 <조선 최고의 사상범>

<조선 최고의 사상범>(인카운터 펴냄)은 조선 시대 사상가 삼봉 정도전의 평전이다.

그런데 이 책을 쓴 박봉규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30여 년간 실물 경제 분야에서 일해 왔고 지금은 대성에너지 경영 지원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경제인이다. 따라서 정도전에 대한 최신 학설을 확인하거나 조선 역사에 대해 깊이 공부할 목적으로 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정도전에 관한 수많은 해설서가 나와 있고 수많은 전문가들이 학계에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선 최고의 사상범>은 흥미롭게 읽히는 책이다. 저자가 지금 이 시기에 정도전을 탐구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으며, 비교적 일관되게 정도전의 사상과 행적, 그를 둘러싼 역사를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도전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머리글에 너무나도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분배 구조가 악화되어 가고 있는 오늘 정도전은 어떤 처방을 내릴 것인가? 일자리 만들기와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중산층을 복원하고 사회 통합을 추진하지 않았을까. 대기업 중심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함께하는 구조로, 수출 중심에서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이루는 체제로, 성장 우선에서 성장과 분배가 선순환을 이루는 모습으로, 경쟁 우선에서 다소 더디더라도 함께 가기로, 단기적 성과 내기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시장 논리를 우선시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가진 자가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베푸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를 만들려 했을 것이다."

▲ <조선 최고의 사상범>(박봉규 지음, 인카운터 펴냄). ⓒ인카운터
한 마디로 저자는 한국 자본주의가 동반 성장의 길로 들어서기를 바라는 개혁론자이고, 이를 위한 역사적 멘토로서 정도전을 발굴하고 탐구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현대 한국의 중도 개혁론자가 조선 시대 개혁 정치가와 나누는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정도전이 살아 돌아온다면 저자의 바람처럼 양극화의 광풍을 잠재우고 공정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려 할까? 혹시 저자가 주관대로 정도전을 역사적 맥락에서 끄집어내어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도전의 사상과 실천이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정확히 짚어내어 현재와 연관시키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현실에서 얼마나 유의미한 것일까?

때마침 한국 사회가 '경제 민주화'라는 키워드 아래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는 시점이라 이 책의 문제의식은 흥미를 더해 준다. 과연 한국 사회는 정도전에게서 어떤 현실적 가능성을 만날 수 있을까?

정도전은 이성계와 힘을 합쳐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개국한 '역성 혁명'의 주역이다. 정도전이 새 나라에서 구현하려고 했던 이념은 '민본주의'로 잘 알려져 있다. 민본주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정도전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고대에는 세상을 다스림에 있어 천자가 관직을 설치하고 신하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것이 신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정도전의 사상을 왕조 시대의 한계는 있으나 근대 민주주의 사상에 근접한 것으로 적극 평가한다. 정도전은 백성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를 신분 차별 없이 능력에 따라 등용하는 제도를 추구했다. 저자는 "역사는 특권과 능력의 대결 과정"이라는 역사관을 제시하면서 이를 높게 평가한다.

정도전이 민본 정치 이념을 구현하는 방안으로 추진한 것이 재상 정치였다.

"임금의 자질에는 어리석은 자질도 있고 현명한 자질도 있으며 강력한 자질도 있고 유약한 자질도 있어도 한결같지 않으니, 재상은 임금의 좋은 점은 순종하고 나쁜 점은 바로잡으며 옳은 일은 받들고 옳지 않은 일은 막아서 임금으로 하여금 대중의 경지에 들게 해야 한다."

이를 받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다.

"이는 마치 기업 경영에서 소유 경영인 체제가 좋은가, 전문 경영인 체제가 더 효율적인가 하는 논쟁과도 유사하다. (…) 왕조 국가에서도 현명하고 백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국왕이 있다면 왕권 정치가 좋다. 그러나 기업의 2, 3세 경영인 중에도 능력이 모자라는 사람이 있을 수 있듯이 장자가 세습되는 군주 사회에서 임금이 항상 똑똑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정도전의 재상 정치를 옹호하며 전문 경영인 체제를 필요성을 거론하는 데서 정도전과 저자는 한 몸이 되는 듯하다. 정도전의 개혁과 저자가 희망하는 개혁이 겹치면서 이 책의 핵심부인 '3장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가 펼쳐진다.

정도전은 농업을 만사의 기본으로 삼았다. "항산(恒産)이 없는 사람은 그로 인해 항심(恒心)이 생기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농업 인구를 늘이고 생산량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저자는 정도전의 '농업'을 오늘날의 기본 산업인 '제조업'으로 환원하여 제조업 종사자의 수를 늘리고 생산량을 높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를 위해 정도전이 그랬듯이 국가가 적절히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케인스의 논리도 슬쩍 끼워 넣고 있다.

정도전은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기 위해 환과고독(鰥寡孤獨)을 돌보고 구휼 제도를 정비하라고 역설했다. 이를 받아 저자는 성장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벗어나 성장과 분배를 선순환시켜 복지를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정도전의 업적은 뭐니 뭐니 해도 고려 말에 단행한 전제 개혁일 것이다. "계민수전(計民授田)의 원칙 즉 백성의 인구에 비례하여 토지를 분배함으로써 토지를 안 가진 자와 경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없게 하여 모든 농민을 자영농으로" 만드는 것이 정도전의 목표였다. 천하의 땅은 모두 왕의 것이므로 왕이 이를 백성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경작하게 하는 것은 왕조 시대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항상 특권 지주층이 끼어들어 백성으로부터 토지를 빼앗는 것이 현실의 문제였다. 정도전은 이러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혁가였다.

저자는 정도전이 전제 개혁을 통해 육성하려고 했던 '자영농'에다 현대의 '중산층'을 대입한다. 고려 말에 자영농이 몰락한 것처럼 현대 한국에서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는 것은 비극의 조짐이다. 저자는 "중산층의 양적 확대와 질적 역량의 강화는 선진국 진입을 좌우하는 중대한 요건이자 지표"라고 일갈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무려 18쪽을 할애하여 정도전을 활용하는 간접 화법도 없이 '중소기업이 살아야 이 나라가 산다'는 자신의 핵심 주장을 펼쳐 보인다. '동반 성장'이야말로 저자가 정도전을 불러낸 주문의 핵심 문구였던 셈이다.

그러나 저자는 정도전을 불러내되 완전히 정도전에 빙의되는 것은 피한다. 정도전은 실패한 개혁가였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재상 정치론 때문에 왕권 정치를 추구하는 이방원의 역습을 받아 목숨을 잃었다. 멘토의 역사적 좌절을 목격한 저자는 한발 물러나서 타협을 시도한다. 비록 태종이 명분 없는 정변을 일으켜 인재를 죽이고 정권을 잡았지만, 결과론적으로 세종의 등장을 가능케 했으니 정치는 잘한 셈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타협의 길로 나아간다.

"태종의 경우에서 보듯이 정통성 있는 세력, 의로운 세력, 혁신 세력만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것은 아니다.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라도 국가 발전과 민생 안정을 위해 더욱 헌신할 때 정통성 있는 의로운 세력보다 역사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한 경우도 많다."

정통성이 없는 세력이 역사 발전에 더 크게 기여한 경우란 무엇을 말할까? 저자는 말한다.

"역사적으로 제대로 된 복지 정책의 첫 단추는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 시절에 꿰어졌다. 우리나라도 많은 진보적 개혁은 거의 모두 보수 정부 하에서 이루어졌다. 평준화 교육은 박정희 대통령 때 도입되었으며 국민 연금 제도와 같은 사회 복지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전두환 정부 때였다. 토지 공개념이라는 개혁안이 나온 것도 노태우 정부 때였으며 김영삼 정부 때는 금융 실명제와 공직자 재산 등록이라는 개혁이 이루어진 바 있다. 누가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을 읽고 국민 생활을 위해 필요한 개혁을 추진하느냐의 문제이지 보수냐 진보냐 어느 정권이 하느냐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 같은 인식 아래 저자는 정도전이 이방원과 타협할 수는 없었는지 안타까워한다.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왕의 자질이 가장 뛰어났던 이방원을 후계자로 밀고 그를 통해 민본주의를 구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역사를 읽는다면 정도전과 이방원의 타협이 불가능했다는 결론을 내리기란 어렵지 않다.

정도전이 추구한 민본주의는 자신이 직접 왕이 되거나 백성을 주권자로 내세울 때 실현 가능성이 훨씬 높은 이념이었다. 그러나 정도전의 힘과 역사 인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는 왕권의 원천이 백성에게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성의 주권이 왕이라는 매개체 없이 작동하는 체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저자는 어떨까? 정도전을 사숙하는 저자는 정도전보다 훨씬 더 유리한 조건에서 한국 사회의 개혁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정도전의 생각과 행동을 제약했던 시대적 한계가 다른 형태로 저자를 가로막고 있다면? 지금은 유물이 되어 버린 왕권 체제가 정도전에게는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것처럼 저자에게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것이 아닐까?

소유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이 싸우든,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싸우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싸우든,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찾아야 하고 찾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럴 수도 있다. 정도전 같은 천재도 시대의 한계를 넘지 못했는데, 우리 시대의 범부들이 자본주의 체제 바깥을 그리 쉽게 넘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정도전 같은 '조선 최고의 사상범'을 멘토로 삼을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가 개혁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다. 보수 정권이든 진보 정권이든 내가 원하는 개혁을 해 주면 된다는 타협적 태도로 정도전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시대의 한계에 막힐지라도 개혁 의지를 비타협적으로 밀고 가는 모습을 보일 때 정도전과 우리 시대 개혁론자의 만남은 의의를 가질 것이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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