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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의 여전사', 동생 위해 몸 바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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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의 여전사', 동생 위해 몸 바친 이유는?

[프레시안 books] 햐쿠타 나오키의 <딸들의 제국>

지난해 학교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다. 농사에 무지한 터라 텃밭 선생님을 모시고 동아리 아이들과 함께 하나하나 배우며 농사를 짓는다. 그 배움터에서 상추, 당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땅콩, 오이, 호박, 완두, 밭벼, 고추 등 다양한 채소가 자란다. 아이들도 자란다.

농사는 자연이 아니다. 인위이다. 그래서 정성일 것이다. 해가 가장 긴 요즈음, 옥상 텃밭에 물을 주다 보면 아침부터 목덜미에 불이 붙는다. 작년 이맘때는 우리나라에 아열대 기후가 찾아온 듯 하더니만, 올해는 사막 기후로 바뀐 것 같다. 매일 비를 기다린다. 간절하다.

옥상은 지상보다 더 사막이다. 사막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생명들. 호박은 잎 몇 장 달지도 못한 채 커다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오이꽃도 땅콩꽃도 완두꽃과 열매도 열악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자손을 남기려는 몸부림이 눈물겹다.

옥상 한쪽 물탱크에 수도꼭지를 달고 짤막한 수도관에 나무를 씌워둔 곳이 있다. 아랫면이 열린 새집과 같은 구조이다. 며칠 전 그 안에 무심코 손가락을 넣었다가 어맛, 간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지난 가을 짝짓기에 성공한 여왕말벌 하나가 긴 동면을 끝내고 올 봄 그곳에 작은 집을 지은 모양이다. 침입에 놀란 말벌 네댓 마리가 순식간에 부르르 튀어나온다. 옥상 텃밭에 이상하게 벌레가 줄었다 했더니 부지런한 말벌들이 한 일이었다. 가을 번식기에 말벌집을 그렇게 건드렸다면 모진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딸들의 제국>(햐쿠타 나오키 지음, 이기웅 옮김, 뜨인돌 펴냄)을 읽고 알게 된 사실이다. 좀 무섭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리아는 숲 속을 헤집듯 비행했다."

▲ <딸들의 제국>(햐쿠타 나오키 지음, 이기웅 옮김, 뜨인돌 펴냄). ⓒ뜨인돌
조금 뜬금없다는 느낌이었다. 벌 중에서도 크고 사나운 말벌, 그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인 장수말벌은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 분포한다. 그런 그들에게 마리아, 키르스텐, 아스트리드 같은 유럽풍 이름이라니.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의 '327호'나 '103683호'처럼 번호를 붙이면 어땠을까? 암말벌 633호, 이런 식으로. 봉순이, 말숙이 같은 이름도 잠깐 머릿속을 떠돌다 사라졌다. 동식물 이름을 외래어처럼 가타가나로 도드라지게 표기하는 일본어 책에서는 좀 더 자연스럽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제목의 '제국', 그리고 첫 문장의 '마리아' 같은 단어가 준 첫인상은 간단한 줄거리가 예상되는 애니메이션 판타지였다. 어린 암말벌인 주인공이 이런저런 고난과 역경을 딛고 새로운 딸들의 제국을 이룬다는 성장담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지성을 갖추지 못한 장수말벌을 의인화한 것은 분명 판타지의 특징이었으나 이 책은 과학에 더 가까웠다. 소설에 익숙한 친구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과학책.

책에 등장하는 일벌과 여왕벌, 수벌들, 그리고 다른 종류의 곤충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장수말벌이 무엇을 먹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떻게 자손을 남기고 그것들의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는가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 꿀벌이나 쌍살벌, 사마귀, 황말벌, 섬서구메뚜기, 장수잠자리 같은 다른 곤충들, 거미나 새 같은 다른 동물들과의 관계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언니들이 여동생들을 위해 희생하는 까닭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놀랍게도 장수말벌의 입을 빌어 '게놈의 의지'를 다루기까지 한다. 윌리엄 해밀턴의 '혈연선택' 이론을 소개한 것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여왕말벌의 게놈을 A와 B, 그 배우자의 게놈을 C로 간단히 나타내면서, 그 사이에서 태어난 모든 암컷 말벌이 A와 C, 또는 B와 C의 두 가지 중 한 벌의 게놈을 갖고 있는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여왕말벌의 딸들이 A와 C, 또는 B와 C를 가질 확률은 0에 가깝다. 게놈, 즉 유전체는 여러 염색체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한 벌의 유전자를 모두 합친 것이기 때문이다.

수정을 위해 알을 만드는 여왕벌은 자신의 부모에게서 받은 A와 B 게놈의 모든 유전자들을 무작위로 뒤섞는다. 그래서 일부는 A, 일부는 B의 유전자로 이루어진 매우 다양한 게놈을 새로 구성한다. 그리고 딸 말벌에게 그 새로운 게놈을 전달한다. 딸 말벌들은 이 새 게놈과 아버지 말벌의 한 벌뿐인 게놈을 받는다. 그 결과 말벌 자매 사이의 평균적인 게놈 공유 비율은 75퍼센트가 된다.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지만, 가장 적게 50퍼센트의 게놈(아버지 말벌에게서 받은)을 공유하는 자매와 가장 많이 모든 게놈을 공유하는 자매가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말벌 자매의 게놈 공유 비율은 모두 50퍼센트 이상이다.

사람과 비교해 보자. 우리는 친형제자매의 게놈 공유 비율이 50퍼센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평균적으로만 그렇다. 사람은 어머니가 난자를 만들 때는 물론 아버지가 정자를 만들 때에도 모든 유전자가 무작위로 재조합된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라도 완전히 다른 대립유전자들만 골라서 물려받을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지만.

해밀턴의 '혈연선택' 이론은 이 지점에서 성립한다. 가장 낮은 게놈 공유 비율이 0퍼센트인가(사람) 50퍼센트인가(말벌), 그리고 평균 공유 비율이 50퍼센트인가(사람) 75퍼센트인가(말벌)는 진화 메커니즘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이다. 그래서 말벌의 일벌은 제 새끼를 낳지 않고 여동생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한다. 이것이 혈연선택 이론의 초점이다.

훌륭한 과학 지식을 담은 만큼, 게놈을 한 덩어리로 나타낸 것은 편의를 위한 것이며 실제 유전자들의 행동은 다르다는 것을 번역서에서 간단히 밝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과학 용어의 번역에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마지막 해설 부분의 '단배수체'는 '반수체'로, '성복대립유전자'는 '성 결정 대립유전자'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진화생물학자 존 메이너드 스미스를 존 메이어드 스미스로 오기한 것도 마음에 걸리고, '워커'라는 표현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이 모든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세밀한 관찰과 연구를 거쳐 위엄 있는 곤충의 생태를 생생하고도 화려하게 풀어내고 유전과 진화의 이론을 흥미롭게 전달한 책의 장점은 그대로 남는다.

<딸들의 제국>을 읽는 동안 참 다행이다 생각한 것들이 있다. 하나는 지구상에서 죽음을 자각할 수 있는 생명체가 인간뿐이라는 점이다. 책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자기 성찰이나 실존의 지능이 장수말벌에게 있다면, 그들은 우리 인간을 상대로 얼마나 무시무시한 전쟁을 벌일 것인가.

또 하나, 제국을 위해 제 목숨을 기꺼이 버리는 장수말벌들을 보며 개체의 독자성을 유지하는 인간의 특성이 정말 고마웠다. 아롱이다롱이 모래알이면 어떤가. 변화무쌍한 모래언덕을 이루며 우리는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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