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에 '올레'라는 흰 글씨와 함께 화살표가 그려져 있고, 옆으로는 철조망과 펜스가 둘러쳐져 있다. 강정천에서 강정포구로 이어지는 제주 올레길 7코스는 그렇게 망가져 버렸다. 길을 따라 걸어가다 보니 중간에 펜스가 떨어져 나간 곳이 나타났다. 펜스 안쪽은 콘크리트로 만든 거대한 삼발이들이 가득했다.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풍경을 목도해야 하는 서글픔이라니! 이 땅에는 여전히 걷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이미 구럼비를 다녀온 경험이 있는 목포의 최기종 시인이 이런저런 설명을 하며 길을 안내했다. 활동가들이 머무르고 있는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준비에 부산했고, 그 옆에는 고권일 주민대책위원장이 올라가 처절하게 투쟁했던 망루가 쓸쓸하니 서 있었다. 함께 동행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간부로 활동을 하다 지금은 정년 퇴직한 이건 선생님이 올라가서 해군 기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내려오셨다.
최기종 시인이 한 사람만 올라갈 수 있다며 나에게도 올라가보라고 했으나, 용기가 없어 사양했다. 고공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고권일 위원장이 사슬까지 감으며 투쟁했던 곳을 이제야 한가로운 발걸음으로 찾아든 죄스러움에다, 펜스 안에 망가져 있을 구럼비를 들여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탓이다.
짧은 답사를 마치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작은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도 뜨거운 열기에 몸이 축 늘어지는 걸 느끼며 내일부터 어떻게 행진을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다. 막 주문을 하려는 데 휴대폰이 울렸다. 대전에서 함순례 시인이 도착해서 의례회관에 짐을 풀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반갑게 만나서 저녁과 막걸리 한잔을 함께 나누고 전야제 참석을 위해 강정포구로 내려갔다.
포구는 작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포구에서 바라본 구럼비 쪽은 역시 삼발이들이 무지막지하게 늘어서 있어 가슴에 삼발이만큼이나 묵직한 체증이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얼마 후 이동 차량을 무대 삼아 전야제 행사가 시작됐고, 행사가 끝나갈 무렵 서영인 평론가와 양은숙 시인이 배낭을 메고 도착했다.
햇살은 뜨거웠고, 육신은 허약했다
행진 출발 전에 평화 센터에 들어가 활동가 한 분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이번 평화대행진은 여행 성격이기 때문에 참가비 받는 계좌를 임의로 개설할 수 없다는 경찰의 방해 때문에 할 수 없이 여행사와 연계하여 계좌를 다시 만들었으며, 일반 후원 계좌도 경찰이 언제 어떻게 열어보거나 압수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 이번 행사에 수천만 원의 적자를 예상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외부에서 우리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참가비를 받을 수 있냐며 한 푼도 받지 말자고 하는 걸, 간신히 설득해서 그나마 2만 원씩 받기로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티셔츠에다 세 끼 밥 그리고 생수와 간식, 의료품만 따져도 1인당 2만 원은 행사를 치르기에 턱도 없는 금액이었다. 그러면서도 크게 걱정을 하지 않는 듯한 모습에 절로 미안함과 존경심이 들었다.
9시에 강정천에서 출정식이 열렸다. 뜨거운 햇살은 이미 아침나절부터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고, 늘 그렇듯이 출정식은 생각보다 길어져서 출발하기도 전에 진이 다 빠졌다. 그럼에도 '강정을 지키자! 지키자 평화를! 다함께 출발!'이라는 강동균 마을회장의 선창을 시작으로 힘차게 행진을 시작했다.
작가회의 회원들은 모두 동진 팀에 참여하기로 했기 때문에 서진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대장정의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이때만 해도 마음과 발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숨은 가빠졌고, 아스팔트 열기가 몸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폭염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얘기가 결코 헛말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첫 번째 휴식 시간에 찾아든 그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잠시 쉬는 동안 찐 감자가 간식으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어제 의례회관에서 마을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감자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끝없이 씻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걷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게 뒤에서 지원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고생을 하고 있었다.
힘겨운 오전 걷기를 마치고 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옆 공원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은 주먹밥에 오이미역냉국이었다. 정말로 소박한 식단이지만,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무엇보다 얼린 삼다수 물통만큼 반가운 게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서로 그늘을 찾아 잠시 낮잠을 취했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쉬고 나니 다시 출발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 하지만 역시 조금 걷기 시작하자 허약한 육신이 정확한 신호를 보내왔다. 더구나 오후 코스는 언덕길로 이어져 있어 더욱 힘들었다. 결국 나는 주최 측에서 나눠준 노란 깃발 하나도 힘에 부쳐 지원 차량에다 꽂아버렸다.
처음에는 참가자들끼리 대화도 하며 걸었으나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웃음이 사라지고 다들 묵묵히 걷기에만 열중했다.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사전 모임을 할 때 누군가 제주말로 '놀멍 가멍' 하며 가볍게 다녀오자고 했는데, '가멍'은 몰라도 '놀멍'은 가당찮은 일이었다.
| ⓒ프레시안(손문상) |
자기 치유를 위한 길
나는 지금 왜 이 길에 섰는가? 스스로 던져보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어제 전야제에서 누군가가 이번 평화대행진에 참가하는 것은 강정 마을을 지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참가자 스스로를 위한 길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이번 걷기가 자기 치유의 과정이 될 거라는 말에 백분 공감했다.
강정에 오기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시를 쓴 적이 있다.
강정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메일이 오는데
제목마다 박혀 있는 연행, 체포 소식이 두려워
차마 열어보지 못하고 휴지통으로 옮기고 만다
멀리 육지에 산다는 이유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강정, 깨져나간 구럼비 바위의 파편을 맞지 않으려고
한사코 달아날 궁리만 하는 나의 심약함을
붉은발말똥게는 진작 눈치 챘으리라
강정을 생각하는 일은 슬픈 일
애써 생각지 않으려 해도
달아날 수 없도록 만드는 전언을 피해
붉은발말똥게처럼 옆으로 옆으로
피해 다니며 술이나 마신다
술에서 깨어나 이따위 시나 쓴다
강정을 생각하는 일은 두려운 일
제국의 첨병들이 쳐놓은 펜스 밖으로 밀려난
주민과 사제와 평화운동가들이
결사항전, 트럭 앞에 누워 울부짖는 동안
파도야, 하얗게 부서지는 강정 앞바다 파도야
소리쳐 부를 힘이 내게는 없다
멀리 있어도 슬프고 두려운 일이 너무나 많은
나날 속에, 강정
네 이름을 도리질로 외면하며
가지 말자, 가지 말자
다짐도 아닌 다짐과 함께 꾸역꾸역 밥을 먹고
저녁이면 술을 마실 때
비굴함도 쌓이면 비애가 되는가
헛소리는 노래가 되지 못하고
강정, 메아리조차 서러운 이름이
오늘 또 내게로 온다
내게로 와서 포말처럼 부서진다
울음도 없이 강정이 전해준 시를 받아 적으며
나는 또 간신히 구럼비를 떠올리다가
붉은발말똥게를 생각하다가
기어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고 마는 것이다
-'강정을 생각하는 일' 전문
이번 대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강정 주민들이 5년 6개월이나 외롭게 싸우고 있는 동안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는 부채감이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이번 평화대행진에 참여하도록 이끌었으리라. 나처럼 단체를 이루어 온 사람들을 비롯해, 가족이나 연인끼리 온 사람들도 있었고, 아무런 연고 없이 혼자 온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왔건 간에 강정의 평화를 지키고, 구럼비와 붉은발말똥게를 살리고 싶다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제주 올레길이 세속의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 주듯, 강정평화대행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참가자들의 영혼을 위무해 주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강정 마을 주민들의 위대함을 생각하다
첫날 행진을 마치고 다음날 아침 텐트에서 눈을 뜨니 여기저기서 지네에게 물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런데 서영인 평론가가 자신도 지네에게 물렸다고 하는 게 아닌가! 잠결에 손이 저리고 이상했지만 걷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자고 말았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발밑으로 지네가 기어가더란다. 준비 모임 때 제주 출신의 홍기돈 평론가가 제주에 모기가 많다고 겁을 주었는데, 모기보다 더 무서운 지네가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전날 나는 평소 걷기에 자신이 있다고 여긴 탓에 맨발에 샌들을 신고 걸었다. 참으로 건방진 생각이었다. 하루 만에 발등이 새까맣게 탄 것은 물론 발바닥도 마찰로 인해 물집이 생길 조짐이 보였다. 그래서 얌전히 양말과 함께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하지만 폭염은 수그러들 줄 몰랐고, 몸은 여전히 힘들었다. 그래도 참가자들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다. 셋째 날에는 숙소지인 성산국민체육센터에 100여 명이 미리 와서 행진 대열을 기다리고 있었다. 덕분에 준비한 밥이 모자라 급히 김밥을 조달하기 위해 진행 팀이 애를 먹기도 했다. 작가회의에서도 둘째 날에 문동만, 최명진 시인과 홍명진, 윤이주 소설가가 합류했고, 셋째 날에는 유종, 김희정, 조동례 시인이 힘을 보탰다.
그늘 하나 없는 길을 한 시간 넘게 걸어야 할 때면 그대로 주저앉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물집을 터뜨려가며 걷는 사람들도 있는 터에 그럴 수는 없는 일. 가는 동안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차량에서는 틈틈이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강정을 지키는 활동가들로 이루어진 <신짜꽃밴(신나고 짜릿한 꽃밴드)>이 부른 노래들이 주로 나왔는데, 쉽고 중독성이 강해서 마음에 팍팍 꽂혔다.
행진 중간에 마을에 들어서면 선무 방송을 하기도 했다. 여성 활동가가 마이크를 잡고 강정 문제를 호소하는 걸 들으며 광주의 새벽 차량 방송을 떠올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이사이에 남성이 선무 방송을 하기도 했는데, 이 남성은 제주 사투리로 절절하게 도움과 동참을 호소하는 발언을 했다.
"성산 삼춘들, 우리는 강정에서 왔수다. 삼춘들 지금까지 짓밟혀 온 우리 강정을 도와줍서" 하는 말이 마이크에서 울려나올 때마다 가슴에서 뜨거운 그 무엇이 울컥 치밀곤 했다.
셋째 날 저녁에 있었던 문화행사 중에 문동만 시인이 앞에 나가 연대사를 했다. 일흔이 다 된 강정 마을 주민들이 낡은 신을 신고 우리와 함께 걷는 모습을 보며, 그분들이 지난 수 년간 힘든 싸움을 이어온 걸 생각하며, 우리가 잠시 이 길에 동참한 것에 대해 어찌 감히 유세를 부리거나 그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느냐는 말에 다들 공감했다.
그랬다. 그분들에게서는 힘든 기색을 찾아보지 못했다. 휴식 시간에도 서로 모여 앉아 제주 사투리로 웃고 떠들며 즐거워했다. 도대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 것인지, 외지에서 온, 그리고 여전히 방외자인 우리들의 눈에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문화 공연을 마치고 숙소 앞에 유일하게 자리한 돼지갈비 집에서 작가회의 회원들끼리 간단한 뒤풀이를 했다. 새로 합류한 회원들을 환영하고 다음 날이면 떠날 사람을 환송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오겹살 9인분을 시켰는데, 양이 무척 많았다. 주인이 이르기를, 좋은 일 하는데 힘내라고 일부러 12인분 양을 주었다고 한다.
행진을 하면서 마주친 제주 도민들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손을 흔들어주고, 때로는 음료나 물품을 기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강정 마을 주민들은 해군 기지 건설을 찬성하는데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반대를 위한 선동을 하고 있으며, 강동균 마을회장도 토박이가 아니라는 식의 악선전이 떠돌고 있는데, 실제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현지 분위기는 해군 기지 건설 반대 투쟁에 매우 호의적이었다.
| ⓒ프레시안(손문상) |
떠나는 길, 다시 가야 할 길
강정 마을을 출발한 지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던 날 아침. 행진을 이어갈 사람들의 배낭을 차에 싣는 동안 이제 그만 돌아갈 사람들은 어깨에 배낭을 둘러맸다. 문동만, 최명진, 함순례 시인과 나는 태풍 탓에 간간이 뿌리는 빗줄기 속으로 멀어져 가는 행렬을 바라보며 잠시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발에 반창고를 붙이고 걷는 서영인 평론가, 여전히 샌들을 고집하는 용감한 양은숙 시인, 첫날 잠시 차에 지친 몸을 의탁해야 했던, 그럼에도 꿋꿋이 다시 길을 떠나는 윤이주 소설가, 제주 해녀의 피를 이어받아 늘 씩씩한 홍명진 소설가, 그리고 아직은 쌩쌩하지만 곧 힘겨운 싸움에 직면하게 될 유종, 김희정, 조동례 시인과 그리고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어느 틈에 다시 나타나 깃발을 들고 있는 제주의 김경훈 시인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걸었던, 그리고 다시 걸어갈 길은 아무도 걷지 않았던 새로운 길이다. 길은 거기 있어서 길이 아니라, 누군가 걸어가면서 의미를 만들어 갈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로 태어난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길들마다 평화가 깃들기를! 그리하여 강정 마을에 세우고자 하는 '민군복합형 관광 미항'이라는 말이 얼마나 기만적인 언어인지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기를! 아울러 그러한 거짓 언어와 싸우는 작가들의 발걸음이 더욱 힘차게 이어지기를!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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