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스틱>은 이영도와 듀나 등의 장르 문학 작가뿐만 아니라 박민규와 김영하 같은 기성 문단 작가들까지 아우르는 유연함(?)과, 그 즈음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한 온다 리쿠나 미야베 미유키를 인터뷰하는 기민함을 보여주었다. "올 한해 우리 문학계 최고 뉴스를 장르 문학 월간지 <판타스틱> 창간이라고 본다(2007년 7월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의 인터뷰)"는 소설가 김영하의 말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잡지를 바라보는 시선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그해에 <조선일보>는 1억 원의 상금을 걸고 '뉴웨이브' 문학상을 만들었고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에서는 이례적으로 장르 문학 관련 특집을 싣는 등 이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논의는, 우리도 얼마든지 미국이나 일본의 빼어난 장르 소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다소 근거 없는 희망의 설파이거나, 지금껏 "완전히 백안시해왔던 장르 문학을 본격 문학론이나 심지어 민족 문학의 논리로 상대(천정환)"하려는 다소 계몽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장르 문학을 찾는 독자는 해마다 늘어갔고 온갖 분야의 출판 자본이 장르 문학으로 유입된다. 이때 책의 수로나 매출 규모로나 가장 눈에 띄게 성장한 분야는 추리 소설이다. 셜록 홈즈와 애거서 크리스티로 대변되는 영미권 소설이 꾸준히 소비되는 가운데 히가시노 게이고와 미야베 미유키를 필두로 한 일본 소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며 시장을 견인했고, 엘러리 퀸, 조르즈 심농, 마쓰모토 세이초, 대실 해밋 전집이라는 굵직굵직한 기획도 줄을 이었다.
| ▲ <범죄 소설>(김용언 지음, 강 펴냄) ⓒ강 |
19세기 영국 추리 소설의 총아인 셜록 홈즈를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세기 미국 하드보일드의 상징인 필립 말로와 함께 사춘기를 지낸 저자는, 필시 지금-여기의 장르적 환경을 돌아보며, 우리에게도 <블러디 머더>와 같은 근사한 이론서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듣보잡'(이라는 표현은 상당한 실례지만) 추리 작가가 각종 차트를 이름을 올리고, 완전히 관심 밖이었던 추리 소설들이 차례차례 드라마화 혹은 영화화되어 베스트셀러로 진입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출판 자본은 이런 유의 책도 수요가 있으리라 느꼈을 것이다.
'후더닛'과 '와이더닛'과 같은 용어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쏟아지는 추리 소설들을 바라보며 푸념하던 독자들은 자신들도 뭔가 전문가적 식견을 가져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범죄 소설>은 이들 각각의 열망이 합쳐진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뉴스로서의 가치도 있다(는 것은 잠시 포털의 검색창을 두드려 보는 것만으로도 확인 가능하다).
"'장르의 기원'보다는 '장르가 사회 속에서 접합되고 착종되며 혼합되는 과정'"에 주목한 저자는 <범죄 소설>을 총 3부작으로 구성하였다. 1부는 영국 고전 추리 소설을 다루며, 19세기 모더니티와 대도시의 상관관계, 추리 소설의 뿌리, 정기 간행물의 증가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독자층의 증가로 인한 도서 시장의 변화, 인간을 바라보는 시점(視點)에 의학과 과학의 발달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핀다.
"실질적으로든 은유적으로든, 의학과 과학 기술의 진보는 개인의 인간적 특성과 정체성까지 전부 알아내고 분류할 수 있다는 믿음을 19세기 전반에 유포시켰다. 낭만주의 이래로 강조된 주관성의 측면이 기술의 진보에 힘입어 이제는 타인의 육체와 정신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능력으로 극대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특성과 가치관을 문학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구현한 존재는 19세기의 대표적인 탐정 셜록 홈즈다." (61쪽)
2부는 미국의 하드보일드 소설을 다루며, 제1차 세계 대전의 발발로 뒤바뀐 세력 관계에 관한 국제적 상황, 연이은 내전과 갱들이 난립하던 국내적 상황, 다임 노블(싸구려 엔터테인먼트 소설)이 어떻게 펄프 매거진(일반 독자가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도록 공급한 대중 잡지)으로 계승되었는지를 살핀다.
"영국의 고전 추리 소설은 대부분 계급적이고 제국주의적인 시선에 갇혀 우아한 매너리즘을 고수했고 1920년대 이후부터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갔다. 범죄가 대량화되고 잔혹해지며 복잡해질수록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스타일과 서사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다가왔다. 그 싹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발아했다. 1930년대에 등장한 하드보일드 소설이 그것이다. (…) 대실 해밋과 챈들러가 주축을 이룬 하드보일드 장르는, 20세기 초 미국이 19세기 말 영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거대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의 본격적인 단계에 진입하면서 겪어야 했던 각종 불안한 사회적 체험을 반영했다." (131쪽)
3부는 열역학 법칙을 통해 들여다본 범죄 소설의 변화 양상('닫힌 계'와 '열린 계'를 각각 영국 고전 추리 소설과 미국 하드보일드 소설에 적용한다), 혹은 저자는 어째서 고전 추리 소설이 아니라 하드보일드 소설에 매료되었는가에 대해 기술해 놓은 장이다.
"(영국) 추리 소설의 탐정들이 언제나 '듣는 이들'을 상정한 채 마치 1인극을 상연하듯 모든 사건의 결과를 밝혀내는 결말 부분에 유의하라 (…) 필립 말로는 직접 도시 한복판으로 걸어 나가 전혀 상호 연관선이 없는 듯한 범죄'들'을 차례차례 겪는다. '해결'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측면이 중요한데, 이들은 이전의 '안락의자 탐정들'처럼 초연한 거리감을 두고 사후에 도착하여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 한복판에 뛰어들어 그 사건의 일부가 되어 버리는 등장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271쪽)
그러니까 <범죄 소설>은 19세기 후반 영국에서 융성한 고전 '추리 소설'과 20세기 초·중엽에 미국을 중심으로 발현된 '하드보일드' 소설을 통칭하는 용어이며, '누가 죽였는가'를 밝히기만 하면 만사가 오케이였던 탐정과 '왜 죽였는가'를 끈질기게 밝히며 그것이 인간관계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몸을 던진 탐정 사이의 이질성과 동질성을 해부한 이론서이며, 끔찍하고 음침하고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야기가 빚어내는 혼돈이 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가에 대해 고찰한 사회학 교재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곁길로 벗어나 사소한 대목을 환기시킨다. 때문에 책 전체를 부감하면 평범한 길로는 가지 않겠다는 저자의 신념 같은 것이 언뜻언뜻 보인다. 너무 정석이어서는 곤란하고 그렇다고 너무 빗나가서도 곤란하다는 듯한 감정의 연쇄가 뭉뚱그려져 페이지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읽기가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목까지 감안하여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출판계의 말석에 앉아 장르 소설을 만드는 나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볼 때 <범죄 소설>은 감탄하며 배울 수 있었던 텍스트였다. 때문에 저자가 어딘가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을 자양분 삼아 또 다른 저작들을 써주기를 바란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수많은 '범죄 소설'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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