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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내' 나던 외야석, 지금은 미분양 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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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내' 나던 외야석, 지금은 미분양 천지

[프레시안 books] 김은식·박준수의 <동대문 운동장>

중학교 때, 다니던 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어쩌다 우리 학교 야구부가 4강에 오르면 온 학교가 들썩였다. 수업을 받지 않고 전교생이 동대문 운동장에 응원을 하러 갔다. 맹목적인 '애교심'의 의무감을 부여 받은 수천 명의 학생들이 그 운동장에서 펼쳤던 열광의 '퍼포먼스'는 여전히 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인상적인 에너지 운집의 기억이다.

상상해보라.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집단적 야유의 공중전이 시작된다. 채 경기가 무르익기도 전인 3회쯤이면 흥분의 도가니를 이미 건넌 아이들이 옷을 벗기 시작한다. 5회가 넘어서면 까닭 없는 시비들이 난무한다. 양교 전체가 일촉즉발의 긴장감에 휩싸인다. 탈락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아는데 행여 '정말 우스꽝스러운 참패'의 기운이라도 엄습해 올 때면, 절정을 향한다. 바로 다른 무엇으로라도 즉각 만회하고 말겠다는 복수감의 주먹들이 일전을 준비한다. 적어도 동대문 운동장에서 만큼은 선생님들도 어느 정도 그 '시비'를 용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중학생이 건너기에 동대문 운동장의 내야는 넓었다. 1루석과 3루석을 잇는 광활한 외야석에는 언제나 범접하기 힘든 기운을 내뿜는 한가로운 아저씨들이 앉아 있었다. (때론 누워 있기도 했다.) 그 아저씨들은 항시 소주를 들이켰고, 때때로 욕을 해댔다. 도저히 풍요의 1990년대에 존재하는 향취라고 믿기 어려운 오줌 지린내가 유독 심한 곳이 바로 그 외야석이었다. 그러나 그 아저씨들은 하나 같이 야구의 '달인'들이었다. 기가 막히게 '번트' 타이밍을 맞춰냈다. 아니, 거의 매 순간 '번트'를 대라고 외쳤던 것도 같다. 뭔가 작전이 실패할 때면, "○○고에 아무개가 있었을 때는 저러지 않았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무언가를 밀어내고 또 무언가에 밀려나는 것이 아예 시스템화 되어있는 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동대문 운동장'이란 밀려난 대명사를 기억한다는 건 이제와 무슨 의미일까, 이제는 처연한 조명탑 하나만을 남기고 사라진 그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에 대해, 야구에 관한 가장 인문학적인 얘기를 해 온 김은식이 썼다. 그리고 박준수가 찍었다.

그러며 묻는다. 잊힌 기억은 잊히기에 마땅했던 것이었느냐고, 혹은 사소하게 잊히기에 그 기억은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느냐고. 당연히 회고적이고, 지극히 촌스럽기까지 한 이 질문을 김은식은 몹시 담담하게 묻고, 박준수는 묵묵하게 담아냈다.

▲ <동대문 운동장>(김은식 지음, 박준수 사진, 브레인스토어 펴냄). ⓒ브레인스토어
'동대문 운동장'이란 잊힌 기억은 박준수의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책의 절반은 사진이다. 이 사진의 힘은 대단하다. 이미 사라진 대상을 관조한다는 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밀려오는 기억의 사색과 마주하는 진귀한 경험이다. 박준수의 사진과 조응하는 김은식을 글은 동대문 운동장에서 먹었던 핫도그의 맛, 그 길 어딘가에서 얼떨떨하게 피웠던 담배 한 개비의 호흡, 화장실 줄이 너무 길어 자신을 던지듯 했던 첫 공공시설 노상방뇨까지. 그 모든 것을 불쑥불쑥 불러내 완벽한 하나의 영감으로 엮어낸다.

'기록'이 가진 힘이란 그런 것일 테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야구야말로 다른 어떤 종목도 따라오지 못할 방대한 기록의 스포츠다. 야구는 그라운드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기록하는 거의 유일한 종목이다. 선수들의 몸짓이 우연이건 반복 훈련에 따른 필연이건 가리지 않는다. 현대 야구의 기록은 타자가 몇 타석에 몇 개의 안타를 때렸는가를 주목하는 수준이 아니라 방망이에 맞은 타구가 날아가는 방향을 수치화해 야수의 발걸음을 조절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기록은 그래서 정확한 역사이다. 하지만 기록의 진짜 위대함은 거기에 있지 않다. 기록은 특정인의 '기억'으로 형질전환 되어 저장될 때, 무수하게 많은 이야기의 근거가 된다. 예컨대, 해태 팬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1990년대 야구와 빙그레 팬이었던 친구가 기억하는 1990년대 야구는 같은 기록에 기반을 두긴 하겠지만 전혀 다른 기억일 수밖에 없다. 기록적인 측면에서 장종훈은 비교 대상이 손에 꼽힐 정도의 타자임이 분명하지만 해태 팬인 내게 그는 '찬스에 약한 타자' 정도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홈런왕은 누가 뭐래도 김성한이었으니까.) 물론, 완전히 반대의 전혀 다른 기억도 무수하게 많을 것이다.

김은식과 박준수의 기억으로 복원한 동대문 운동장에 대한 이 기록은 그래서 기본적으로 매우 주관적이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보편적이기도 하다. 당신이 야구에 관심이 있건 없건 동대문 운동장에 가봤던 가보지 않았건 상관없다. 그저 1980~90년대를 꾸역꾸역 살아오기만 했다면 이 기억은 흡사 당신의 기록처럼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당신이 야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흥분된 가슴을 억누르기 위해 지금 당장 스포츠 채널을 틀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책은 천천히 읽고 느리게 보기를 권장하는 구성인데, 묘하게 박진감이 느껴진다.

청량리에서 태어나, 생의 대부분을 강북에서 보낸 내게 동대문 운동장은 버스로 고작 20여분 거리의 건물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동대문 운동장 주변이 바쁜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의 동대문 운동장은 더 거침없던 곳이었다. 무엇을 원하든 거기에 있었고, 아무리 정숙하려 해도 대체로 일탈적인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아직 특정한 무엇을 사기 위해선 여전히 특정한 공간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였다. 대형 할인점이 소비 패턴을 장악하기 한참 전이었고, 부도심은 별다를 것 없지만 각자의 얼굴을 갖고 있을 때였다. 그 시절의 동대문 운동장은 그래서 경유지였고 또 기착지이기도 했다. 기타를 사기 위해 종로2가 세고비아 악기점이나 낙원상가를 가야했는데, 이때 동대문 운동장은 '건너가는' 곳이었다. 게임팩이나 불법 비디오를 사러 갈 때는 '들르는' 곳이었다. 야구 글러브를 처음 산 곳도 거기였고, '셀프'로 몸을 만들어보겠다며 아령을 처음 산 곳도 동대문 운동장이었다.

동대문 운동장이 밀려난 까닭은 아마 이 다기능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대문 운동장 자체가 마지막에는 풍물 시장으로 기능이 대체되기도 했었다. '강북의 강남화'라는 주술이 전 사회를 지배할 때, 동대문 운동장은 반드시 없어져야 하는 건물이었고 사라지는 것이 마땅한 콘크리트 더미였다. 그것은 우리의 낡은 얼굴로 지목되었고, 치워내야 할 후진성으로 호명됐다. '비포 앤 애프터' 광고판이 모든 도심을 장악했을 때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채 몇 년의 시간이 지나지 않은 지금은 거꾸로 '강남의 전국화'가 이뤄지며 부동산 경기는 속절없이 주저앉고 있다. 동대문 운동장을 밀어낸 그 첨단 콤플렉스 건물들 역시 '미분양'에 허덕이고 있는 중이다.

김은식은 당장 그 건물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꼬집는다. 디자인과 패션이라는 시대적 흐름으로 가정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없었다. 세계적인 흐름을 주도하는 허브가 굳이 그 터여야 할 이유도 역시 없었다. 다, 공허한 외침이었다. 김은식은 천천히 묻는다. 그 2007년의 기억을 이제와 생각해보면 '서울이란 트랙에서 밀려나 동대문 운동장이라는 베이스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르던' 이들을 위해 그걸 그냥 두었어야 했노라고. 그들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무엇보다 정작 '왜 아무도 아파하지 않느냐'고.

'노인네들의 실없는 박수 소리 속에서 고등학생 선수들은 공을 던지고 몸을 날렸다'던 기록을 기억한 이 책의 질문은 그래서 꽤 묵직하다. 책 속 사진들은 유난히 뒷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누군가의 뒷모습, 앞모습을 보여 줄 수 없는 자의 뒷모습, 날 것 그대로의 우리 시대의 뒷모습 말이다. 한국 사회는 오늘도 중요한 것은 '번트와 팀 배팅과 희생과 헌신과 탈 개인주의'라고 역설한다. 그리고 그걸 못하는 자들이 '세월 속으로 낙오'하는 걸 당연시한다. 그 결과 우리는 무언가를 밀어내고 무언가에 밀려나지 않으면, 세련되지 않다고 느끼게 되는 기묘한 사회적 미학 속에서 살고 있다.

'가장 그늘진 자들이 깃들어 살던 둥지'였던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를 부순 지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한국 사회의 그늘은 더 얼마나 더 깊이진 것일까, 콘크리트 더미의 높이는 얼마나 더 높아진 것일까. 지금도 동대문 운동장에 가면 처연하게 불 꺼진 조명탑이 하나 남아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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