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일본 근대 문학 연구자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김윤식은 왜 이런 책을 썼는가"와 같은 물음을 던질 만큼 여유롭지 않다. 적어도 이 땅의 일문학도들을 부끄러운 결여의 자각으로 이끄는 이 책을 앞에 두고서 말이다. 따라서 설사 김윤식이라는 나무의 가지가 담장을 넘어 자기 집 마당에 그늘을 드리웠다고 한들 나무를 탓할 일은 아닌 것이다.
한국 근대 문학 연구자로서 김윤식이 학계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바이지만, 그가 그에 못지않은 열정을 가지고 일본 근현대 문학의 세목들에 대해 발언해 온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이 엄청난 독서가는 고유의 관심분야인 이광수나 임화 등 한국 근대 문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 일본 문학자들, 예를 들면 고바야시 히데오, 야나기 무네요시, 미시마 유키오, 오에 겐자부로 들의 글을 낱낱이 섭렵하고 그에 대한 비평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스스로가 일본 문학의 비전문가임을 들어 한껏 자세를 낮췄지만, 시종일관 진지한 자세로 본질적이면서 고답의 문제영역을 파고드는 그의 글은 단연코 '격'이 달랐다. 김윤식의 일본 문학론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 일본 문학·일본 문화에 대한 연구는 존재했지만, 그에 대한 '비평'만큼은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프리만치 환기한다. 일본 문학에 관한 언설을 사유의 심급으로 끌어올린 것은 김윤식이 달성한 최대의 성과이다. 그것은 김윤식 이전에도, 김윤식 이후에도 미답의 영역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야말로 가히 김윤식 일본 언설의 최량의 성취로서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이다.
'내가 읽고 만난 일본'― 800쪽의 책 제목치고는 더없이 소박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책의 성격을 적확하게 반영하는 제목이기도 하다. 모두 8장으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듯이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 평론가 에토 준, 불문학자 모리 아리마사,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역사학자 리처드 미첼의 책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 ▲ <내가 읽고 만난 일본>(김윤식 지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
그럼에도 이 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얼핏 보아 두 가지 성격이 혼재한다. 책 표지의 '원로국문학자 김윤식의 지적 여정'이라는 부제대로라면 어느 신문의 서평이 표현한 바와 같이 '사상적 자서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 책을 채우는 소재와 내용의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 비평가, 연구자에 관한 것이거나 서양인에 의한 일본 연구에 할애된 점에 비추어 문학과 사회의 프리즘을 통한 본격적 일본 언설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일본'이라는 고유명사가 이례적으로 책 제목에 노출된 사실(관견이지만 김윤식의 방대한 저작 목록 속에서 '일본'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에 비추어보아도 이 책은 한국문학연구자이자 비평가인 김윤식이 정좌를 하고 일본을 응시하고 관찰한 기록이라고 자리매김해도 무방할 수 있을 것이다.
1970년 11월, 하버드대학 엔칭 프로그램의 연수비용을 받아 도쿄대학에 온 서울대 국문과 조교수 김윤식에게 일본이란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로 자각하게 하는 '벅찬 세계'였다. 1960년대에 한국문학 연구자의 길에 들어선 김윤식은 당시를 회고해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지상명제에 복무"하고 있었던 시절이라고 회상했다. 실제로 그가 1973년 김현과 함께 세상에 내놓은 <한국문학사>(민음사 펴냄)에서 17세기 실학파를 한국 근대의 시점으로 삼은 것도 내재적 발전론에 의한 식민사관 극복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한국문학사 재정리'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일본'이라는 대상을 직시하는 것이 불가결하다는 주장과 함께 그 이듬해에 <한일문학의 관련양상>(일지사 펴냄)을 펴냈다. 이는 매우 이른 단계에서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이념에 대한 복무로부터 학문의 순수 자율의 세계로 선회한 것을 의미하며, 3년 전의 일본체험이야말로 그로 하여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택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40여 년 전 김윤식의 일본 생활은 그 대부분이 읽고 생각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평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일본 평단에서 '글쓰기의 신', '명인'으로 불리는 두세 명을 어두침침한 도서관 책상 위로 불러냈다. 그 중에는 김윤식 스스로가 "오만하기 짝이 없고, 그만큼 자신만만한 논리로 무장한 우익 논객의 두목이자 대문예비평가"로 형용했던 에토 준(江藤淳, 1932-1999)도 들어 있었다.
이 책에서 에토 준(제3장)에 할애된 분량은 무려 150쪽이 넘는다. 도대체 무엇이 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가? 왜 김윤식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대일본제국의 영광을 상기하는 해군기(욱일승천기)에 휘말려 한 줌 재가 된 천황주의자 논객을 이토록 영접하는가.
그럼에도 그의 심정 밑바닥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음을 엿보였다는 것은 안타까움이자 그만큼 인간적이라 할 것이다. 어찌 그에게도 사람의 약점이 없을까 보냐. 다만 그는 이 약점을 은폐하기 위해 그토록 과잉반응의 논리로 중무장했는지도 모를 일이다.(307쪽)
식민지의 역사를 짊어진 한국인의 입장에서 경계할 수밖에 없고 좀처럼 마음을 열기 힘들 수밖에 없는 '우익 논객'의 정치 논리의 틈새에서 연약한 '인간'을 엿보고, 글의 행간에서 '눈물'을 읽어내는 김윤식의 도량과 감수성은 읽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들 정도이다. 김윤식은 에토의 주장을 비판하면서도 그에 대한 신뢰와 지지의 눈길을 거두지는 않았다. 에토가 우익이든 강아지를 키우든, 순수한 정열을 불태우며 글만 쓰다 죽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영혼의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김윤식은 타고난 글쟁이일 수밖에 없다. 사기꾼의 글과 명인의 글을 준별해낼 수 있는 지혜와 감수성을 지닌 글쟁이인 것이다. 이념과 정치논리에 흔들리지 않는 문학의 대인배이고 감수성의 대가인 것이다. 이 천의무봉의 노대가는 에토 준을 다룬 3장의 18절 제목으로 태연스레 '내가 에토 준에 들린〔憑〕 곡절'로 써놓았다. 3장의 소제목으로 붙인 '글만 쓰되 목숨을 건 글만 쓰다 자결한 사내, 에토 준'이라는 문구 역시 '글쓰기의 신이 되고자 한 사내'에 대한 친애의 감정 섞인 묘비명으로 읽힌다.
일본 근대비평의 진정한 출발점으로 평가받는 고바야시 히데오가 정의한 비평이란 이런 것이었다. 곧 "남을 내세워 자기를 말하는 것".(183쪽)
머리말에서 저자는 '나를 길 잃게 한 다섯 장의 그림'을 거론한다.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모리 아리마사, 루스 베네딕트, 리처드 H. 미첼이 그것이다. 물론 다섯 장의 그림 상호간의 연관성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가 위에 인용한 고바야시 히데오의 비평의 정의가 암시하듯이 위에서 거명한 그림들은 한결같이 '김윤식'이 담긴 텍스트이다. 180권의 책을 쓴 김윤식의 존재 근거를 구성하는 정신적 질료인 것이다.
1970년과 80년, 두 차례에 걸친 김윤식의 일본행은 평생의 주제인 '근대'를 탐구하는 여정 속으로 분류된다. '식민사관 극복'이라는 짐을 스스로 내려놓은 그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일본과 일본인을 관찰하고자 했다. 도쿄대학 캠퍼스를 거닐며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김윤식·오인석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의 번역을 구상했고, 도쿄대 근처 헌 책방에서 말로만 듣던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김경식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을 만났다. '비평의 신'으로 불리우는 고바야시 히데오의 평론집을 탐독했고, 평론가 에토 준의 책을 읽으며 글쓰기의 윤리에 대한 영혼의 대화를 나눴다. 많은 일본인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불문학자 모리 아리마사의 책을 사이에 두고 수사학과 금욕적인 글쓰기에 대해 생각을 교환하기도 했다.
'일본'이라는 거울을 통해 만나는 김윤식의 모습은 평소 접해왔던 것보다도 맑고 투명하게 비춰진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어찌 이뿐이겠는가.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김윤식과 닮아있다. 특히 고바야시 히데오, 모리 아리마사, 에토 준이 그러하다. 모두가 고독을 선향처럼 태워가며 치열하게 글을 쓰다 죽은 글쓰기의 장인들이다. 이들을 역시 평생 글만 써온 저자가 영접한 것이 이 책 <내가 읽고 만난 일본>이다. 책을 통한 인문학적 교우의 기록인 셈이다. 이 책은 '원로 국문학자 김윤식의 지적 여정'이라는 수식과 함께 세상에 나왔다. '편력'이란 단어와 함께 이 기록을 개인적인 층위로 가둬두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식민지시대를 경험한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본은 거부와 굴절의 심정을 수반하는 타자였다.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터널을 빠져나온 김윤식은 역사와 이념과 정치의 옷을 벗고 편한 일상복 차림으로 일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과 문학이 있었다.
"예술품이란 만든 사람이나 시대나 상황을 떠나 누구에게나 미로서 작용해 와야 올바른 예술품이다. 그런 진짜 예술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인종과 시대를 초월해야 한다. 지식인이란 그런 사람에 속한다."(170쪽)
평론가 고바야시 히데오의 입을 빌린 이 말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인문학자 김윤식이 도달한 경지이기도 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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