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첫 '프레시안 books'는, 향후 5년을 건너가는 데 함께 하면 좋을 책 특집으로 꾸몄습니다. '5년'인 이유는 새로운 대통령과 정권이 들어서는 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는 비록 전부는 아닐지라도 많은 이들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그들의 희망과 절망을 교차시키는 변화입니다. 여덟 명의 필자가 이 '5년'을 마주하며 책 한두 권씩을 꺼내 들었습니다. <편집자> |
대선이 끝난 지 2주가 훌쩍 지났지만,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낙담한 이들, 대통령 선거 직전의 열띤 분위기에 여전히 미련을 놓지 못하는 이들을 보면 두루 안타깝다.
지금은 선거의 직격탄을 맞은 노동자들과 연대하고, 이 추운 날 고공 농성하는 이들을 걱정하면서 우리들 자신을 추스르는 것이 맞을 것 같은데, 이러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열정들의 자리에 냉소와 체념이 자리 잡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노무현 대통령 장례식 때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서울광장에 모여 눈물을 흘리던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뒤 바로 그 자리에서 100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경찰의 해산 압박과 극우 단체의 조롱을 받으며 4대강 반대 집회를 치르던 4년 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럴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우리들 삶에 너무나 단단하게 뿌리내린 '식민성'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들 삶의 주권이 우리의 손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생겨나는 일인 것이다. 왜 저 엘리트 정치인들, 민중의 삶보다는 정치가로서의 자기 입지와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저들의 손에 우리의 운명이 저당을 잡히게 되었는가.
노동조합비를 158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갖다 바쳐야 갚을 수 있는 금액을 물어내라고 노동조합에게 소송을 거는 기업주가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단결권, 단체 행동권을 유린하는 이 악행을 뿌리 뽑을 권능은 이들 노동자의 삶에 별 관심이 없는 주류 정치 엘리트들이 쥐고 있다.
| ▲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른스트 슈마허 지음, 김진욱 옮김, 범우사 펴냄). ⓒ범우사 |
수많은 이들이 대선이 끝나고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치유되지 않는 심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할 우정의 관계망조차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미국에 가 있는 안철수를 혹은 문재인의 재도전을, 민주당의 또 누군가를, 우량주로 꼽히는 진보 정치인 몇몇의 권토중래를 기다린다.
우리 스스로가 '다른 삶', '다른 정치'를 향하여 직접 발걸음을 내딛을 수는 없는 것일까.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삶'의 좌표, '다른 정치'의 준거가 될 사상이다. 지난 2주 내내 나는 이제는 아주 낡은 말이 되어버린, 바로 그 '사상'의 힘을 생각했다.
공장에서 농토로,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지난 대선 기간 동안, 나는 짬짬이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저서들을 읽곤 했다. 누가 정권을 잡든, 이 '식민성'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변혁을 열망하는 이들의 다수가 기대고 있는 좌파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는다면, 결국 달라질 것은 없을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중간 기술'(intermediate technology)과 '작은 것'의 가치를 역설한 생태 경제학의 선구자로 알려진 슈마허는 이런 피상적인 표현으로는 담기 어려운 깊이와 너비를 갖춘, 중요한 사상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스물네 살에 컬럼비아 대학의 교수로 초빙될 만큼 탁월한 학문적 역량을 인정받았고,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직접 자신의 학문적 후계자의 한 사람으로 거명하기도 했으며, 전후 독일의 경제 재건과 국제 결제 제도의 수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첨단의 경제학자였지만, 그는 근대적 지식인들과는 길이 많이 달랐다.
슈마허는 8만 명의 노동자를 고용한 영국 석탄공사의 통계소장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통계 전문가였지만, '수치의 경제학'을 거절했다. 국민 소득, 성장률, 투입 산출 분석, 자본 축적 따위 큰 추상 개념은 그 개념을 발명한 선진국에만 필요할 뿐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슈마허는 빈곤, 좌절, 소외, 절망, 사회질서의 분해, 범죄, 현실 도피, 스트레스, 혼잡, 추악함과 정신의 사멸과 같은 현실의 삶을 직접 다루는 경제학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고등 교육을 마친 청년들이 편의점에서 바코드 리더기에 물건을 갖다 대며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한밤을 새는 노동자로 편입되는 메커니즘을 해명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첨단의 반도체 공학으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독극물을 일상적으로 흡입해야 하는 기계적인 단순 노동으로 재편되는 현상을 그는 응시했다. 그는 육체노동에 대한 경멸과 산업예비군의 상존으로써 지탱하는, 재생할 수 없는 자원을 양껏 써버리며, 노동의 교육적 영적 의미를 말살하는 이 산업주의를 넘어서지 않는 한, 인간의 '행복'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의 70퍼센트를 중산층으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그의 참모들이나 후보 자신도 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대선 후보들은 비정규직을 없애고 정규직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두는 가능한 것인가.
오늘날, 인간의 노동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술의 자동화와 대규모화 그리고 세계적인 저성장이라는 두 겹의 파도에 올라탄 채 중산층 70퍼센트와 정규직 완전 고용을 약속하는 것은 명백한 거짓이다. 오늘날 기술 발전은 슈머허식 계산법에 의하면 실제 생산에 투여되는 육체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을 전 사회적 시간의 3.5퍼센트 수준으로 줄여버렸다. 성장을 통해 복지를 나눠주고, 복지를 통해 성장을 채찍질하자는 논리는 이제 실현 불가능하다. 더 이상 공짜로 채굴할 자원도, 새롭게 착취할 자연도 이제는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이렇게 재편되어야 한다. 이익과 잉여 가치 창출이 아니라, 자급자족의 가치가 우위에 서야 한다. 인간을 일터에서 쫓아내는 첨단의 기술, 대형화된 생산 체제가 아니라 작은 규모의 생산, 호혜적인 작은 공동체에 봉사하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다. 거대 정치 현실에 좌우되지 않는 자주적 생활의 공간들의 확장되어야 한다. 각자 익명의 존재로 시스템을 통해 '접속'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얼굴을 맞댄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공간이 확장되어야 한다.
슈마허를 읽으며 나는 이런 꿈을 꾸곤 했다.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되돌아가지 않고, 그들이 그 공장에 복직됨으로써 받아야 할 금전으로 귀농하여 함께 농사지으며 마을을 이루고 사는 상상을. 그들이 거대한 자동차 생산 라인, 조선소 공정의 한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목공소, 자전거 수리점, 아니면 마을 사람들이 출자한 작은 자동차 수리 센터를 직접 협동조합 형식으로 만들어 일꾼이자 주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닥치고 정치'에서 '닥치고 실천'으로
"나는 무의미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로 권태롭고 추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니라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나는 돈을 벌기보다 누군가를 돌보고 싶다."
삶과 노동에 대한 우리의 욕망은 대략 이런 얼개를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 실현될 수 있을 길을 향한 가느다란 '정치의 오솔길'은 언제나 막혀 왔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는 것이다. 우리의 욕망은 정당하다. 다만, 정치의 개념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슈마허가 강연에서 든 예화로써 설명해 보자.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이 노파에게 평화로운 결혼 생활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노파가 답하기를, 중요한 문제는 남편이 결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평화로운 결혼 생활의 첩경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달라고 하니, 월급을 어디에 쓸지, 아이들을 어떤 학교에 보낼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 어디로 이사를 갈지 같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는 자신이 결정하고, 미국 정부의 개혁, 중국의 유엔 가입 같은 중요한 일은 남편에게 맡긴다고 하였다.
나는 우리 삶의 식민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 18대 대선의 좌절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의 시작은 바로 이 이 '중요하지 않은 문제'들에 있다고 본다. 우리는 큰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게 과도하게 머리를 쓰고 그래서 쉽게 좌절하고 쓰러지지만, 나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바꿀 작은 일에는 머리를 쓰지 않고 상투적으로 행동한다. 구체적인 무언가를 직접 실천하는 일이 즐거움을 준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슈마허는 말한다. 실제로 일을 시작해 보면 많은 이론과 생각을 하지 않고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올바른 일이라 생각되면 성공 여부는 따지지 말고 곧장 저질러보라고, 그는 권고한다. 중요한 것은 각자가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 이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고,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각자의 마음속에서 확신과 의지를 만드는 일이 변화의 핵심이라고 슈마허는 말한다.
슈마허와 <녹색평론>을 읽자!
누구나 어디서나,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는 '자립'과 '자치'의 삶의 방식이 있다. 슈마허가 말한다.
"나는 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탄 배를 더 나은 세상으로 싣고 갈 바람을 일으킬 순 없다. 그러나 바람은 불지 않을 수 없다. 그 바람이 일기 시작할 때 이용할 돛을 만들 수는 있다."
바람은 불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 정부도 저 거대한 보수 대연합도 어찌할 수 없을 거대한 격랑이 몰아칠 것이다. 그것은 부동산 거품 붕괴의 모습으로, 경제 공황으로,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 등등 온갖 모습으로 1997년 외환 위기 사태 이상의 거대한 격랑으로써 몰아칠 것이다.
그때 필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돛'이다.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 많은 이들이 좀처럼 이 좌절의 골짜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슈마허의 책을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 본다. 그리고 슈마허를 비롯한 중요한 사상가들의 고민과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대안을 향한 진지한 노력이 소북이 담겨 있는 <녹색평론>을 함께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 본다.
당장 아래 열거한 슈마허의 책 세 권과 격월간 <녹색평론>을 펼치자.
<작은 것이 아름답다>(김진욱 옮김, 범우사 펴냄)
<굿 워크>(박혜영 옮김, 느린걸음 펴냄)
<당혹한 이들을 위한 안내서>(송대원 옮김, 따님 펴냄)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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