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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남 따라하면 '읽으나 마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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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남 따라하면 '읽으나 마나'지!

[프레시안 books] 정민의 <오직 독서뿐>

지은이 이름만으로 손이 가는 책들이 있다. 글맛이 좋기도 하려니와 풀어놓는 이야기들마다 믿음직하거나 공감이 간다는 사실이 확인된 필자들의 책이 그렇다. 한양대학교의 정민 교수를 그런, 많지 않은 '품질 보증' 필자로 꼽는다. 개인적 취향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정 교수가 이미 40권이 넘는 책을 냈다니 출판사나 독자들이 아끼는 저자임은 분명하다.

이 책 <오직 독서뿐>(김영사 펴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조선 선비 9인의 글에서 책 읽기에 관한 글을 가려 뽑아 정 교수의 해설을 더 한 형식인데 귀하고, 곱고, 향기롭다.

귀하다는 것은 지은이가 골라낸 글을 두고 나오는 감탄이다. 책을 읽는 까닭을 설파한 허균의 글은 중국 명대의 청언(淸言)에서 뽑았고, 양응수의 독서법은 <성리대전(性理大全)>에서 주자 등 송대 학자들의 독서의 단계, 공부법을 소개했다. 허균의 글도 그렇지만 솔직히 이 책에서 처음 만난 양응수란 문인의 글에 이르면 여간해서는 만나기 힘들 터다. 공부하는 사람이 새겨 명심해야 할 홍석주의 글, 일상의 예시를 통해 의표를 찌르는 예지가 빛나는 홍길주의 글 모두 마찬가지다. 지은이가 아니었다면 새삼 만날 일이 없는 인물이요, 글이다.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 <오직 독서뿐>(정민 지음, 김영사 펴냄). ⓒ김영사
곱다는 것은 글 자체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정 교수의 글은 한문 원문을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뜻을 살리고, 숨을 불어넣어 글이 생동하게 한다. 번역투 문장이 판치는 세태에 비추어 보면 그의 글은 글공부 삼아서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 그 솜씨는 이 책에서도 여전하다.

"그저 읽기만 하는 것을 도능독(徒能讀)이라 한다. 이런 독서는 절대로 사람을 바꿔 놓지 못한다. 말만 공부한다고 하고, 행실이 따라 주지 못하면 선비가 아니다. 입으로만 외우는 앵무새 공부와 읽는 시늉만 하는 원숭이 독서로는 삶을 바꿀 수 없다."

이건 북학파의 거두 박지원의 <원사(原士)> 중 "선비 아닌 사람이 없지만 능히 바른 자가 드물다. 누구나 책을 읽지만 능히 잘하는 자는 드물다(何莫非士也 鮮有能雅者也 孰不讀書也 鮮有能善者也)"란 구절을 소개하며 붙인 해설이다. 술술 읽히는 리듬감을 있으면서도 '앵무새 공부' '원숭이 독서'로 전하고자 하는 뜻을 선연히 살린다. 이러니 감히 평하자면 지은이의 글은 명문이라 할 수 있다.

향기롭다함은 글에 담긴 뜻을 가리킨다. "찾는 것이 있어 책을 읽게 되면 읽더라도 얻을 것이 없다. 때문에 과거공부를 하는 자가 입술이 썩고 이가 문드러지도록 읽어 봤자, 읽고 나면 아마득하기가 소경과 다름없다." 이익의 <성호사설>의 일부를 인용한 '읽으나 마나한 독서' 원문이다. 이를 두고 지은이는 "독서는 순수한 몰입이다. 무엇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 자체로 가치 있는 행위다 (…) 자발적 독서, 무목적의 몰입, 읽지 않을 수 없어서 하는 독서만이 우리 삶을 들어 올린다"고 풀었다. 비록 이를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 않고, 그러려는 이도 없겠지만 뜻이 맑다. 이런 대목이 책 곳곳에서 빛난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역시, 감히 말하자면 완상을 위한 에세이로 읽어야지, 수신을 위한 독서 교본으로 삼을 것은 아니다. 앞뒤가 중복되거나 모순되는 등 내용이 성근 부분이 있고, 옛날과 오늘의 독서 환경이 사뭇 다른 것을 소홀히 다룬 인상이어서다.

"책은 통째로 온전히 읽어야 한다. 저 읽고 싶은 데만 골라 읽거나, 보고 싶은 것만 봐서는 보람이 적다"고 했다. 조선 시대 소문난 독서가 이덕무의 글을 들어 '통째로 읽어라'고 권한 대목이다. "이 책 저 책 집적대기만 하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 뜻을 세워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 장난치듯 읽지 말고 비장하게 읽어야 한다. 대충대충 읽으면 안 되고 집중해서 전력을 다해 읽어야 한다"고도 했다. '한 권을 끝까지 집중해서 읽어라'에 붙인 글이다.

언뜻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조선 후기 재야 선비 홍길주의 주장과는 어긋난다. 그의 독서법을 소개하며 지은이는 "반드시 읽어야 할 기본이 되는 책은 찬찬히 읽되 나머지는 그때그때 흥미나 관심에 따라 골라서 읽으면 된다. 쓸데없는 책을 작심하고 달려들어 읽어야 득 될 것 없고, 꼭 필요한 책을 건성건성 넘기면 안 읽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경전을 실용서 읽듯 해서는 안 되고, 역사책을 경서 읽듯 할 것도 없다. 서로 읽어야 할 내용이 다르고 목표도 같지 않기 때문이다"고도 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답은 지극히 간단하다. 재미로 읽을 책은 재미로, 공부삼아 읽을 책은 공부하듯 읽으면 된다. 이처럼 모순되는 내용이 여럿 있다. 배우는 이들이 새겨 읽을 필요가 있다.

거슬리는 대목도 눈에 띈다.

"저서의 5등급은 명도정덕(明道正德)의 경전과 경세치용의 역사실용서, 수사미관(修辭美觀)의 문장서, 계물흡문(稽物洽聞)의 고증훈고서, 마지막으로 유담파적(遊談破寂)의 소설쇄기로 구분한다"이라 해서 책의 고하를 가렸다. 문학을 가장 아래 둔 것이다. "반기무실(反己務實) 즉 자기를 반성하고 실지에 힘 쏟는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는다면 소설 따위를 읽어도 공부에 도움이 안 될 것이 없다. 저서의 종류가 엄연해도 중요한 것은 읽는 이의 마음가짐이다"이라 덧붙였지만 납득하기 힘든 분류다. "무협지나 열심히 읽고 판타지 소설만 찾으면 사람이 차분해지지 않고, 헛생각만 날뛴다"란 대목에 이르면 더하다. 장르문학을 낮춰 보는 오만 비슷한 것이 느껴져 입맛이 쓰다.

이는 "옛사람은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를 늘 함께 말했다"든가 "독서란 배움의 한 가지일 뿐이다. 도를 구하는 것에는 스승의 가르침, 책 읽기, 길을 떠나 견문을 넓히는 것 세 가지가 있다"는 이 책의 다른 대목을 스스로 부인하는 격이기도 하다.

"독서궁리 참 좋은 말이지. 하지만 무슨 책을 읽고 어떤 이치를 궁리하는지가 더 중요한 법일세. 남 읽는 대로 읽고 남 따라 생각해서는 읽으나 마나지" 했으니 말이다.

인정하자. 책이 지식과 재미, 마음공부의 거의 유일한 원천이었던 시대는 지났음을. 읽을 책은 많고, 읽어야 할 이유도 다양하다. 우리는 알기 위해서, 마음을 닦기 위해서도 읽지만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도 읽는다. 읽어야 한다. 삶을 들어올리기 위한 독서만이 독서라는 건 '먹물'의 억지다.

그러니 이 책 뜯어 읽고, 따져 읽어야 한다. '오직 독서뿐'이 아니라 '아직 독서도'란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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