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거리에서 울려나오는 캐롤송, 도시 곳곳 화려한 네온 불빛에, 오고가는 사람들의 들뜬 표정에 자칫 마음이 스산해지기 쉬운 때다.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마음의) 문을 잠글’지도.
그러나 ‘흔들리며 흔들리며 지하철을 타고 가는 눈 오는 겨울밤, 서서 잠이 든 채로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기에,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없기’에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을 하나 얻어 꽃초롱 불 밝히듯’ 맘 속에 작은 불 밝힐 수 있다면...
아기 예수가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그 날이 허무하지 않겠다.
문학평론가 하응백 씨가 성탄절에 읽고 싶은 시 다섯 편과 시에 대한 짧은 해설을 보냈다. 편집자.
***우화의 강 1**
마종기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두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보아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을 친하고 싶다.
마종기 시인은 1966년에 미국으로 떠나 아직도 미국에 살고 있다. 오하이오라는 한국어의 무인도에서 조국의 강산과 친구를 그리며 한국어로 시를 쓴다. 한국에 사는 사람보다도 더 한국적으로 시를 쓴다. 이 시는 어려울 것도 없이 진솔하게 자신의 그리움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다가오는 대로 감상하면 그만이다.
***빈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이 시에서 나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은 “문을 잠그네”라는 구절이다. 그는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더 이상 바깥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어떻게 더 살 수 있었으랴.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가슴으로 묵직한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그는 왜 그렇게 절망했던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죽음이란 것이 산 자의 얄팍한 심정으로 어찌 이해되는 것일까. 그래서 나는 이 시가 두렵다. 출구없는 절망이 두려운 것이다. 이 시를 발표하고 얼마 안 있어 기형도는 종로의 한 심야 극장에서 쓸쓸하게 죽었다.
***밤 지하철을 타고**
정 호 승
지하철을 타고 가는 눈 오는 밤에 불행한 사람들은 언제나 불행하다 사랑을 잃고 서울에 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끝없이 흔들리면 말없이 사람들은 불빛 따라 흔들린다
흔들리며 떠도는 서울밤의 사람들아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은 가까웁고 기다림은 언제나 꿈속에서 오는데 어둠의 꿈을 안고 제각기 돌아오는 서울밤에 눈 내리는 사람들아
흔들리며 서울은 어디로 가는가 내 사랑 어두운 나의 사랑 흔들리며 흔들리며 어디로 가는가 지하철을 타고 가는 눈 오는 이 밤 서서 잠이 든 채로 당신 그리워
눈 내리는 밤의 지하철, 물론 지하 구간을 달릴 때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승객 중에는 마음에 눈을 맞으며 가는 사람들도 있다. 정호승 시인은 왜 첫 연부터 지하철을 눈 오는 밤에 타고 가는 사람을 ‘불행하다’고 했을까. 그것은 사랑을 잃었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고 대도시에서 익명으로 분주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어도 샐러리맨들의 일상은 일상이다. 출근과 퇴근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음도 처져 있고, 육체도 지쳐 있다. 피곤한 육신으로 인해 “서서 잠이 든 채”로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 한다. 아니 그리워 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때문에 시인은 “흔들리며 떠도는 서울밤의 사람들”은 “언제나 불행하다”고 말한다.
시인은 비극적은 아니더라도 슬픔의 감정에서 이 시를 썼겠지만, 나에게는 이 시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비록 지하철이 좀 더 혼잡해 지더라도, 겨울 밤 귀가할 때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내려 좌판에서 귤이나 군고구마라도 한 봉지 사서, 외투깃에 떨어지는 눈을 털면서 불빛이 보이는 집으로 갔으면 좋겠다.
***편지 1**
이 성 복
처음 당신을 사랑할 때는 내가 무진무진 깊은 광맥 같은 것이었나 생각해 봅니다 날이 갈수록 당신 사랑이 어려워지고 나는 남해 금산 높은 곳에 와 있습니다 낙엽이 지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일이야 내게 참 멀리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불연속적인 두 개체가 하나로 합치는 것이다. 이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혼자 있는 것도 불가능하다. 심심하고, 외롭고, 허전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하나로 오락가락 하다가, 시소놀이를 하다가, 죽는다.
***작은 연가(戀歌)**
박정만
사랑이여, 보아라 꽃초롱 하나가 불을 밝힌다.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너와 나의 사랑을 모두 밝히고 해질녘엔 저무는 강가에 와 닿는다.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유수(流水)와 같이 흘러가는 별이 보인다. 우리도 별을 하나 얻어서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 눈 밝히고 가다가다 밤이 와 우리가 마지막 어둠이 되면 바람도 풀도 땅에 눕고 사랑아, 그러면 저 초롱을 누가 끄리. 저녁 어스름 내리는 서쪽으로 우리가 하나의 어둠이 되어 또는 물 위에 뜬 별이 되어 꽃초롱 앞세우고 가야 한다면 꽃초롱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가야 한다면.
박정만 시인은 1980년 한수산 필화사건 당시 고문 후유증으로 서서히 망가져 갔다. 그에게 시신(詩神)이 찾아온 것은 1987년 여름 경이었다. 그는 접신(接神)의 경지에서 20여일 만에 300여편의 시를 썼다. 죽음을 일년 앞두고 그는 남은 삶의 연료를 모두 시로 불태웠다. 그것은 이 시에 나오는 마지막 ‘꽃초롱’ 같은 것이었다. 시 “하나로 천리 밖까지/ 눈 밝히고 눈 밝히고,” 그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꺼지는 10월 2일 어둠으로 갔다. 그는 갔지만 그의 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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