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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봉창 두드리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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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봉창 두드리기' <4>

술은 누가 따르는가

느닷없이 생태찌개를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북태평양 명태어장이 어쩌고 어획쿼터가 저쩌고 해서가 아니라 그저 날이 이 시리도록 차가워지고 사물과 사물 사이의 거리가 아득히 멀어져 보일 때, 문득 손에 잡힌 사십대 중반의 흰 머리가 서글퍼질 때, 생태찌개가 먹고 싶어지는 것이다.

사내는 냄비를 들고 생태찌개를 팔던 식당으로 가서 찌개를 담아오던 심부름을 하던 소년 시절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그 찌개를 안주로 혼자 벽을 보고 앉아 묵묵히 소주를 비우곤 했다. 소년은 그 침묵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워 바깥으로 나가 우두커니 바람을 맞았다. 어두워져서 노는 아이들도 하나 없는 골목길을 바라보며 소년은 어서 자신도 나이가 먹기를 바랐다. 이제 사내도 자신에게 심부름을 시키던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저 노호하는 겨울 바람을 뚫고 식당에 가서 생태찌개를 담아오라면, 그것도 냄비를 들고 가서 외상으로 얻어오라면 거품을 뿜으며 기절을 하거나 아버지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여길 것이다. 사내는 스스로 생태찌개를 먹으러 가기로 한다.

생태찌개의 생태는 말할 것도 없이 명태를 말한다. 사전을 들추면 이런 설명이 나와 있다.

‘명태는 한국 동해, 일본 북부, 오호츠크해, 베링해 등의 북태평양 해역에 분포한다. 주로 대륙붕과 대륙사면에 서식하는데 산란은 1∼5℃에서 이루어지며, 산란기는 12∼4월이다. 주로 작은 갑각류(요각류, 젓새우류, 단각류 등)와 작은 어류(때로는 명태 치어와 알도 먹음) 등을 먹는다. 예로부터 한국의 중요 수산물인 동시에 영양 식료품이다. 겨울철에 잡아 얼린 것을 동태 또는 동명태라 하고, 말린 것을 북어 또는 건태(乾太)라고 한다. 또 산란기 중에 잡힌 명태를 원료로 동결과 기화(氣化)를 반복하여 만든 것을 더덕북어 또는 황태라고 한다.’<한국 물고기 백과>

여기서 흥미 있는 것은 명태가 명태의 치어와 알도 먹는다는 부분이다. 정력을 위해 태반(胎盤)을 먹는 사람들을 식인종이라고 한 표현을 본 적이 있는데 노가리(명태새끼를 이렇게 부른다)와 알을 먹는 식명태종이 자매결연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여튼 슬슬 사내를 따라 생태찌개를 먹으러 가보자.

사내의 옆에는 몇 살 더 위인 또 한 사내가 있다. 사내는 명태를 포나, 노가리나 북어국 형태로 여러 번 먹어보았지만 찌개로는 먹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사내는 원래 국물이 바특하고 짜디짠 찌개 종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태찌개는 찌개 가운데서 가장 시원하다고 알려져 있다. 시원하므로 찌개라도 좋아질 것 같다. 여기서 시원한 것과 온도가 낮다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그러니까 기온이 낮아져서 그에 걸맞는 생태찌개를 찾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두 사내가 탄 차는 경기도 무슨무슨시 아무개면 면사무소 앞에 도착한다. 당신이 어느 도시에 초행이고 배가 고픈데 그 도시의 음식 중에서 특출하고 유명한 것을 모른다면, 그런 건 말고라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한다면 관공서 뒷골목 식당으로 가보라는 충고에 따르도록 하시라(내 경험으로는 설렁탕, 곰탕은 경찰서, 정식은 행정관서, 요정은 세무서 주변이 좋던데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강호제현의 연구를 바란다). 아무나, 아니 아무개면 같은 면 단위 동네에서는 그럴 것도 없는 것이 엎어지면 코 닿을 듯 한 길가에 그 집이 그 집으로 어느 집이 조금 나아봐야 그저 그런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태찌개를 하는 집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있다. 있지 않으면 애초에 이 글이 시작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생태찌개를 하는 집도, 동태찌개를 하는 집도 있다. ‘태’ 자가 들어간 ‘찌개’를 하는 식당은 면 전체를 통틀어 단 두 집이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자칫하면 삼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읍으로 나갈 뻔 하지 않았는가.

사내들은 동태와 생태를 두고 잠시 의견을 교환한다. 생태찌개와 동태찌개는 찌개라는 점에서 같고 국물 잡는 것이나 양념도 비슷하다. 그러나 생태는 쫄깃거리는 살의 맛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 동태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격 역시 차이가 난다.

이윽고 사내들은 생태찌개라는 글자가 적힌 유리문을 민다. 안에 들어서는 순간, 사내의 안경에는 김이 자욱이 서린다. 천장이 낮고 훈기와 음식 냄새가 강렬하게 느껴지는 실내는 부엌을 빼고는 탁자가 하나 있을 뿐이다. 그 탁자에는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사십대의 사내들이 앉아 있다. 앞에 선 사내는 멈칫거린다. 그러자 일흔 쯤 돼 보이는 노파가 손을 닦으며 사내들에게 안으로 들어가라고 소리친다. 과연 부엌 왼편에 창호지가 발린 여닫이문이 있고 그 문을 열자 선풍기가 달린 작은 방이 나타난다. 그 안에서 어떤 젊은 여인이 전화를 하고 있다가 황급히 일어선다. 노파는 손님이 자꾸 오는데 전화에만 매달려서 어쩔 거냐고 여인을 나무란다. 사내들이 신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방이 하나가 아니고 둘이다. 안쪽에도 나무로 만든 문이 있고 그 문 안에는 장롱 같은 세간이 엿보이는데 세상에, 그렇게 작은 장롱도 있던가. 명태로 치면 노가리다. 노가리와 자매결연을 맺어도 좋을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그러나 오래된 장롱이다.

‘우리 이 집 생태찌개가 유명하대서 충청도에서 일부러 왔슈. 잘 부탁드려유’
나이든 사내는 고향인 경상도 사투리의 억양에 억지로 충청도 사투리의 어미만 꿰어맞춘 말투로 너스레를 떤다. 노파는 대범하게 받아넘긴다.
‘응, 뭐 그러면 잘해줘야것네. 마침 아침에 생태가 존 게 들어왔거들랑.’

사내는 자리 주변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본다. 때 묻은 목침이 있다. 곽성냥이 있고 소주병에 꽂힌 양초가 있다. 정전이 잦던 시절의 유물인가 싶은데 아직 치워지지 않고 있다. 나무로 만든 커다란 재떨이에 껌 자국인지 가래 자국인지가 여러 군데 남아 있다. 사내는 그걸 보고 우두 자국을 떠올린다. 이윽고 생태찌개가 날라져 온다.

지름이 한뼘 반쯤 되는 낡은 양은냄비 안에 불그레한 국물이 끓고 있다. 얇고 넓게 썰어넣은 무가 먹음직스러워 보이고 파, 마늘, 양파 같은 양념도 푸짐하다. 사내는 숟가락을 국물에 집어넣고 천천히 휘젓는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저어지고 섞이는 것은 찌개만은 아닌 것이다. 가스 버너 위에서 찌개냄비가 끓는다. 나이 든 사내는 다 겪어본 일이라는 듯 빙그레 웃으며 소주병을 집어든다. 그런데.

‘어허! 일로 내여!’
사내와 나이든 사내가 깜짝 놀란다. 노파가 가지 않고 오두마니 앉아 있다가 소리를 친 것이다.
‘왜 그러세요, 할머니.’
‘일루 내라니깐, 그 쏘주병.’

언제나 무엇인가 끓은 실내에 있어서인지 한겨울인데도 노파는 내복과 속옷의 중간쯤 되는 셔츠밖에 입지 않았다. 그 셔츠 아래로 쭈그러진 젖가슴이 언뜻 보이는 듯도 해서 사내는 얼굴을 돌리고 만다.

‘왜요, 뭐 잘못 됐어요?’
‘좌우당간에 조여, 일루. 젊은 사람들이 이러키 사람 말을 못 알아 묵어.’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치고 만다. 뭔가 방해를 받은 듯한 언짢은 기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 왜 그러시느냐고요, 할머니. 술이 어쨌다구요?’

할머니는 기어이 술병을 나꿔채고는, 동태살처럼 온 얼굴을 흐물어뜨리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술이란 지집이 따러야 맛이제. 자, 받어, 이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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