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강면(가상 지명임.이하 모두 가상임-편집자) 면소재지에 들어서면 면소재지를 관통하는 국도변의 울긋불긋한 현수막의 붉은 글씨가 눈을 어지럽게 한다.
‘납골당 결사반대. 사수하자 우리 명산 와우산. 대대손손 누려온 남강의 맑은 자연 우리가 지켜낸다.’
그 아래에 현수막을 내건 이들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예를 들면 남강면 이장단, 새마을지도자협의회, 부녀회 외에 남강초교 동창회, 해병대 전우회 등등 이런 일이 있으면 으레 등장하는 단체들의 명의다. 그런데 면사무소를 지나 사람들의 출입이 뜸한 농기계 주차장 앞에 걸려 있는 현수막이 이채롭다. 아니 어찌보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른 현수막과 뚝 떨어져서 설치가 되어 있는 데다 ‘납골당 반대한다. 우리 모두는 일치단결’이라는 어색한 문구가 손으로 씌어 있는 것이다. 공중에 걸려 있는 다른 커다란 현수막에 비하면 이 현수막은 반도 안 되게 작은 데다 명의 또한 흥미롭게 ‘용미리 주민 일동’이다. 어째서 남강면의 스물네 개 마을 가운데 단 하나, 용미리 마을 주민들만 따로 현수막을 내걸었을까.
원래 울서시 남강면 용미리(龍尾里)는 납골당과 아무 상관도 없었다. 용두사미(龍頭蛇尾)와 용미리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또 용미리는 납골당이 들어선다는 와우산(臥牛山) 아래 고정리(高亭里)와는 평소에 내왕도 거의 없었다. 사돈의 팔촌도 걸리는 사람이 없다. 그러니 용미리 사람들이 고정리고 와우산이고 간에 특별히 생각할 일이 없었고 평소에도 닭이 소 보듯 소가 개보듯 해왔다. 그런데 용미리의 현 이장이, 현재의 이장이자 성이 또한 현 씨이니 현현이장(玄現里長)으로 불린다, 고정리에 납골당이 들어오는 데 찬성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고정리는 마을이 속한 남강면(南江面) 전체와도 별 내왕이 없던 마을이었다. 고정리 사람들은 오히려 군 경계를 넘어 와우산 반대편의 장성시 수월면 사람들과 사돈을 맺는 경우가 많았고 장날에도 수월면으로 가는 편이었다. 남강면에서 이장단을 소집한다든가 시에서 시장이 초도순시를 나온다든가 하여 고정리 이장을 호출하면 마지못해 나오는 편이긴 해도 내내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앉아 있다 가곤 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 고정리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불과 여섯 달 전이었다.
고정리 출신인 사람이 서울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그 아들 되는 이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러 고정리에 왔다 그만 와우산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와우산이 잘 생겼거나 천하명산의 지세를 가지고 있어서, 또는 무슨 엄청난 전설과 명소를 가지고 있어서 반한 건 아니다. 그랬더라면 진작에 다른 사람들도 다 반했을 터이고 와우산을 상찬하는 시인묵객들의 침과 가래 로 만든 문장이 만발했을 것이니까. 그런 건 없다. 전설도 명소도 고적도 없다. 면소재지 쪽에서 바라보면 소가 누운 듯한 형상의 와우산은 수월면에서 바라볼 때는 험난한 절벽의 악산이다. 고정리 출신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이는 산에 반한 게 아니라 산이 가지고 있는 사업성에 반했다.
그는 곧 회사 직원들을 내려 보내 와우산 주변의 지세와 형편을 알아보게 했고 마침내 산 아래 엉성한 수풀을 밀어내고 납골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허가를 얻기 위해 시청을 방문했을 때 시장이 버선발로 뛰어나와 그를 맞아들였다는 소문이 있다. 남강면은 울서시 전체에서 가장 낙후된 면이었고 남강면이 낙후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와우산 때문이라고 시장은 믿고 있었다. 와우산은 누운 암소의 엉덩짝처럼 푸짐하기는 했지만 그저 면적만 많이 차지했을 뿐 뭐 하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런 산에 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이 나섰으니 시장은 초등학교 동창인 남강면장과 함께 만세 삼창이라도 부를 자세를 취하는 게 당연했다.
이어서 납골당을 지을 회사가 정식으로 설립되었다. 회사의 대표는 물론 고정리 출신인 망자의 아들, 길어서 부르기가 불편하니 김회장, 아니 김말구라고 부르겠다, 김말구였다. 김말구는 기왕에 아버지와 문중의 명의로 되어 있는 땅 이외에 납골당을 세우기로 예정한 부지 인근의 토지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평당 3만 원도 하지 않던 땅에 만 원씩을 더 붙여 일괄적으로 구입했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 안 날 수 없었고 마침내 고정리 사람들 전부가 모여 평당 7만 원 이하에는 단 한 평도 팔지 말자고 결의하게 됐다. 김말구는 달라는 대로 덥석덥석 돈을 퍼주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이만큼 가까운 곳에, 이만한 가격의 땅을 구하기도 어려운 일이었고 납골당을 짓기만 하면 수십 배의 이득을 취할 수가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었다. 김말구는 그 외에도 납골당이 생기고 나면 주민들이 그 주변에서 화원이나 음식점 따위의 장사를 하려고 할 경우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땅이 없어서 팔 게 없는 주민들은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고만 있었는데 어느날 김말구는 그들에게도 큼직한 선물을 해주었다. 납골당 허가를 내주기 전에 주민들의 여론을 살피고 있는 도청을 방문할 사람들을 모집하고 버스편을 주선하는 한편 도지사를 면담하고 ‘와우산 납골당 만세!’를 외치고 나온 뒤 한 가구 당 이천만 원인가의 돈을 나누어 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도지사는 고정리 주민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님비 현상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모두가 승자가 되는 윈윈 게임’의 사례로 도청 현관에 사진을 내걸기까지 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을 때, 남강면의 다른 마을 사람들이 반대하기 시작했다. 남강면 이장단이 김말구의 회사에 발송한 편지에 들어 있는 반대 이유는 아래와 같고 그에 대한 김말구의 회신을 함께 달았다.
1) 허가된 장소가 경관이 수려한 녹지이다.
답 : 경관이 수려하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다. 할아버지가 선산을 샀을 때 문중에서 이런 악산을 사서 뭐하느냐고 원성이 대단할 정도였다.
2) 납골당으로 끝나지 않고 화장장까지 유치하려고 하는 음모가 있다.
답 : 화장장이 들어서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각서를 썼다. 나를 산 채로 화장해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
3) 마을에서 불과 5백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보건상 위해하다. 추석이나 한식 등의 성묘철에는 교통체증과 도로 훼손이 우려된다.
답 : 마을 사람 전원의 동의를 얻었다. 환경영향평가에서도 큰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성묘철의 교통체증은 어디나 비슷하며 도로는 새로 건설할 것이고 기존의 도로로 사용하게 되는 것은 확장 포장할 예정이다.
여기에다 더하여 김말구는 남강면 사람들이 납골당을 이용하기를 원할 경우 분양가의 반값에 분양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그러나 면민들 대부분은 김말구의 회신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그냥 계속 반대했다. 납골당이 들어서면 땅값이 떨어질 수 있는 사람들은 반대할 이유가 있었다. 면민 가운데 다섯 명은 그럴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무리 땅을 팔라고 해도 팔지 않고 값이 더 오르기만 기다리다가 결국 김말구가 포기하고 만 땅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친척과 친구, 친지가 있었다. 그래도 다 합쳐서 백 명이 넘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이 반대하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왜 우리들에게는 돌아오는 게 없는가, 하는 것이었다. 왜 누구는 돈을 이천만 원인가 주고 누구는 안 주느냐. 우리는 배가 아프다. 단체로 환장하겠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런데 용미리의 현 이장이 이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의연히 이런 의견을 내놓았던 것이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묘지로 간다. 지금 전국적으로 묘지가 모자라 야단이다. 기왕의 묘지는 금수강산을 덮고 있다. 묘지 때문에 후손들이 농사도 못 짓고 집도 못 짓고, 자신들이 묻힐 곳이 없게 되면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납골당은 우리의 현실에서 최선의 대안이다. 나는 납골당에 찬성하고 납골당을 짓는 것에 찬성한다. 납골당이 우리 면에 지어진다면 환영을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장단은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하나씩 둘씩 헤쳐서 다른 술집에서 모였다.
“용미리 현달수가 뭘 먹어도 단단히 먹었다.”
“용미리 현달수가 뭘 잘못 먹어도 단단히 잘못 먹었다.”
의견은 두 가지로 갈라졌지만 용미리 현 이장을 성토한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 술집에서 먼저 술을 마시고 있던 용미리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동네에 가서 다른 동네 이장들이 용미리를 잡아먹으려고 이를 갈고 있다고 전했다. 용미리 사람들은 이장에게 가서 의견을 바꾸라고 했지만 이장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배운 사람으로서, 상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염치가 있는 사람으로서 한 입으로 두 말을 하겠느냐, 아울러 자신은 얻어먹은 것도, 잘못 먹은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난처해진 동민들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현수막을 써서 면소재지 앞에 내건 것이었다. 용미리 이장의 의견은 용미리 마을 사람들의 뜻이 아니다. 제발 우리를 소외시키지 말아달라. 현수막에 담긴 뜻은 그런 것이었다.
하여튼 납골당 공사는 시작되었다. 이제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장단 회의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열렸다. 그런데 납골당 공사가 시작된 뒤에 벌어진 회의에서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용미리 현 이장을 본 다른 동네 이장들이 모두 현 이장을 외면하는 것이었다. 그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런데 고정리 이장에게는 전에 없이 인사를 청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남강면에서 나고 남강면에서 살며 깃발을 날리고 있는, 전생과 미래를 꿰뚫어 알고 있다는 어느 현자, 이렇게 해석했다.
‘고정리 사람들이 졸지에 부자가 되었으니 다른 마을 사람들이 잘 보이려고 하는 거지. 용미리 이장? 똥고집밖에 남은 게 없지, 뭐.’
현자여, 그대가 모르는 게 있다. 소신이 남았다. 납골당은 소신의 뼈로 세워질 것이다. 그러니 그대는 현생에 대해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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