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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농민'은 어디로 가란 말이오?

<농민 천호준씨 기고> 업자는 '꽃놀이패', 정부는 "나 몰라"

한 농민이 지난 4일자 기사 '남양유업 욕하며 남양우유 먹으라 홍보하는 기막힌 사연'을 읽고 낙농가의 현실과 대응방안 관한 장문의 기고문을 보내왔다.

'경북농민'이라는 ID로 그동안 여러 의견을 보내주었던 천호준씨(49)는 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17년째 농사를 짓고 있으면서 십여년간 젖소를 기른 경험이 있다 했다. 지금은 젖소를 포기하고 한우와 복숭아농사를 짓고 있다 했다. 젖소기르기에 관한 한 그야말로 '프로'인 천호준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편집자주

***'잉여농민'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소를 잃어버리고 난 후에 외양간을 고쳐 봐야 소용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틀린 말이다. 소를 잃어버린 후에도 외양간을 고침으로써 다시는 그러한 불행을 방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지금 우리나라 낙농가들의 피울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까?

이 나라의 농민들에게는 '희망'이라는 말이 잊혀진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 그 말이 뜻하는 의미조차 모른다. 우리 농민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절망'의 벼랑 끝밖에 없다.

불신의 늪에 빠진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확한 증거에 의하지 아니하면 설득할 수 없다.
믿을 수 없는 이 나라의 농림부 통계(농림업 주요통계, 농림부, 정기간행물 발간등록번호, 31000-51060-26-12)에 의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젖소 사육두수는 1989년을 기점으로 50만 마리를 넘어섰다. 그리고 2002년 현재의 젖소 사육두수는 송아지까지 포함하여 십수년 전과 거의 변함없이 54만여 마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우유가 남아돌아 소위 '우유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물론 그 근본원인은 수입개방에 있다. 그러나 낙농가들도 이제 수입개방 대세론에 대해서는 이미 두 손을 든 지가 오래되었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한창 막바지였던 1993~94년의 김영삼 정권 시절에 김영삼대통령과 농정당국자들은 농민들에게 이렇게 강요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속에서 우리나라의 농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쌀 농사는 과감히 포기하고 축산, 과수, 화훼, 시설채소 등 4대 품목의 농사만 지으라"고 했다. 그리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대규모화하라고 강요했다.

젊은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이 잘못된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현재의 4대 품목이 과잉생산이 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의 생산과잉은 '과잉 아닌 과잉'이다. 지금도 우유만 보더라도 총 소비량이 총 생산량보다 많다.

농림업을 위해야 할 농림부가 '농림업 파괴부'가 된지 오래 되었듯이 낙농의 진흥과 발전을 위해 설립된 낙농진흥회가 '낙농진흥 하지말자회'가 되어 버렸다. 이들은 경찰력을 동원하여 농민대표의 회의 참석을 강제로 막는 광태까지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낙농가들은 낙농진흥회 해체 운동을 벌이려고까지 한다.

수입개방은 대세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시장근본주의자들에게 묻고 싶다. 이 지구상에 어느 나라가 농업을 시장의 원리에만 맡겨 놓는 나라가 있는가? 시장근본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신주단지 모시듯 한다. 미국만 보더라도 매년 수백억달러의 돈을 농민들에게 농업보조금으로 지불하고 있다. 이런 미국의 농민들과 보조금 한푼 없는 우리나라 농민들이 경쟁하라고 말한다면 어불성설이다.

***상주(喪主)도 곡(哭)을 멈추고 젖을 짜러 간다**

이제는 비록 소를 잃어 버렸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쳐보자.
그 논리야 어쨌든 낙농가들도 우유를 감산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우유생산량을 줄이려면 우선 젖소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그 첫번째 대안이 될 것이다.

지금 낙농가들이 유업체에 우유를 납품하면 1Kg당 약 6백원 남짓의 돈을 받는다. 부부가 공동으로 1일 8시간 이상의 중노동으로 그것도 3백65일 휴일도 없이 하루에 두 번씩 또는 세 번씩 젖을 짜야 하는 것이 낙농이다. 80년대 중반에 후배 집에 문상을 갔다. 그런데 갑자기 상주내외가 상복을 벗더니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주위의 문상객에게 물어보니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저렇게 해야하는 일이 낙농이라고 했다.

이 때 낙농의 비참함을 처음 알았다. 많은 도시민들은 낙농이라 하면 푸른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젖소를 상상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젖을 짜면 되는 것만으로 생각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이다. 천하고 천한 농업 중에서도 가장 천한 것이 낙농업이다. 이렇게 해봐야 젖소 한 마리당 수입이 고작 한 달에 4~5만원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구당 평균 젖소 사육두수가 30~40두 정도이다. 낙농가의 가구당 월 평균소득은 기껏해야 1백50~2백만원 정도 될 것이다.

젖이 나는 어미 젖소 구입비용이 대략 2백30만원에서 2백50만원이다. 우유를 감산하려면 젖소를 도축할 수밖에 없다. 낙농가에게 젖소는 생명줄이다. 그런데 이 젖소를 도축하면 30~40만원 정도밖에 못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사육두수를 줄이는 정책은 불가능한 것이다. 젖소 구입 비용과 도축수익의 차액은 정부가 전액 보조금으로 지급해야만 우유감산정책은 그 실현이 가능하다.

***'꽃놀이패' 잡고 즐기는 우유업체들**

현재 우유의 생산과잉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잉여원유차등가격제'는 즉각 철폐되어야 한다. 약간의 차이들은 있지만, 유업체들이 농가당 생산량의 약 20%에 해당하는 양을 '잉여원유'로 일방적으로 지정해버림으로써 낙농가들은 1Kg당 6백원 하는 우유대금을 2백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업체들은 분유 및 모조분유를 수입해서 돈벌고 낙농가들에게 폭리를 취해서 돈버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잡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유업체들은 낙농가들에게 우유대금의 일정 부분을 분유로 강제지급하고 있는 실정이다. 분유의 판매처가 없는 낙농가들은 강제배분된 이 분유를 다시 유업체들에게 헐값으로 반납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대규모 기업적 낙농가들은 교섭력이 크기 때문에 교묘히 빠져나간다. '잉여원유차등가격제'는 한마디로 일부 기업적 낙농가만 살리고 농민적 낙농가는 모조리 퇴출시키려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사진2>

우리나라 낙농가들은 품질 좋은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해 왔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배합사료 위주의 사육체계에서 벗어나 양질의 조사료를 비싼 값으로 구매하여 먹이고 있다. 양질의 조사료를 먹이면 우유의 품질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리당 우유생산량도 늘어나기 때문에 양질의 조사료를 먹이지 말라는 유업체들의 이상야릇한 권고에 낙농가들은 할 말을 잃고 있다.

더욱이 우리 농촌에서 50대 미만의 농민들을 찾아보기란 가뭄에 콩 나듯 할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유업체들은 55세 이상의 낙농가들은 이제 낙농을 그만 하라는 권고까지 하고 있다. 낙농가들에게 있어서 전 재산은 젖소이다. 이들로부터 젖소를 빼앗아버린다면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대안은 없는가.

이제는 폐지되었지만 '농지소유 상한제' 즉, 3정보 이상의 농지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을 낙농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낙농규모 상한제'를 법제화함으로써 대규모의 기업적 낙농가들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고용인 없이 부부만의 노동력으로 1백두 이상의 낙농은 불가능하다. 국토면적이 좁은 우리나라의 농업 특성상 가족농 규모 이상의 농업은 가급적 배제하는 정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직업선택의 자유를 운위하면서 위헌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 제도의 정신을 낙농업에도 도입하자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 논리가 낙농업에는 적용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낙농업에는 '규모의 불경제'의 논리가 적용된다.

***아무 걱정말고 우유만 짜라던 이들은 지금 어디에**

1990년도에 어미젖소 한 마리의 가격이 약 3백50만원 정도였다. 그 당시 초유떼기(생후 1개월 미만의 젖소 송아지를 말함) 한 마리의 가격이 1백만원 정도였다. 2002년말 현재의 어미 젖소 가격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2백30~2백50만원 정도이고, 초유떼기 송아지의 가격은 30~40만원이다. IMF사태 직후에는 송아지를 공짜로도 가져갈 사람이 없어서 고의로 죽이기까지 했다.

1998년 이후 농민들의 우유판매대금(이를 유대라고 한다)은 인상된 적이 없다. 그리고 우유의 품질 측정은 엄청나게 까다로워졌다. 동물약품 가격을 비롯한 낙농 농자재 가격이 크게 인상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사이의 물가인상율을 감안한다면 모든 농민들이 다 그렇지만 특히 낙농가들은 한 마디로 모두 죽으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나라 낙농가들은 근근히 그 생명 줄을 이어왔다.

이제 1만2천의 낙농가들은 어디로 가란 말인가? 정부 당국자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아무 걱정말고 양질의 우유만 생산하라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우리 농민은 무슨 특혜를 바라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비록 미봉책이긴 하지만, 국산 우유와 유제품을 정부에서 대량으로 수매하여 북한에다 무상 지원함으로써 우유적체를 해소하고 난 후, 시간을 갖고 정부당국과 낙농가 대표가 모여 지혜를 짜낸다면 그 해결책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국가라는 존재의 원초적 책무가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의 농업에 대해서 특별한 보호정책을 시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 농민들이 무슨 특혜를 바라지는 않는다. '시장'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농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분노도 슬픔도 없고 오로지 한숨만이 황량한 겨울들판을 뒤덮고 있다.

나이 지긋한 농민들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뭐든지 정부가 시키는 반대로만 해야 농사꾼은 살 수 있다"는 말이 이 땅의 모든 농민들에게 진실로 다가오고 있는 기막힌 현실을 어찌 해야 할까?

논어 자한 편의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한 겨울의 추운 날씨가 된 후에야 소나무와 전나무의 절개를 안다)"라는 말처럼 농업이 다 망하고 난 후에야 농업의 소중함을 아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실업수당도 받을 수 없는 없는 '잉여농민'들은 정녕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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