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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날' 바그다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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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날' 바그다드에서

[현지 르포] 평화운동가들, 이라크 현지를 가다 <1>

종전을 선언한지 6개월이 지난 이라크. 그러나 미국의 점령에 저항하는 무장세력의 부단한 공세로 전시때 이상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한다. 정부가 추가 파병을 결정, 전투병 파병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현지 상황은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라크 사람들은 현재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들은 한국의 추가 파병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또 이라크에 와있는 외국인들은 이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지난 9월 '피스보트'에 승선, 아시아 지역의 평화운동가들을 만나 교류활동을 벌였던 '피스 프로젝트팀'의 임영신(평화가 강물처럼), 김박태식(비폭력평화물결)씨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이라크였다.

이들은 10월30일 요르단에 도착해 하루를 묵은 뒤 이라크로 출발, 이라크 무장세력이 미군에 대한 '저항의 날'이라고 선포하고 대대적 공세를 펼쳐 더없이 치안이 불안한 지난 2일 바그다드에 입성했다. 이들은 바그다드, 모술, 남부 바스라 등을 찾아 이라크의 정당, 종교지도자, 독립언론, 바드다드 대학, 병원 등의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예정이다. 또 이라크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들의 현지 조사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이 보내올 매일매일의 기록을 연재한다. 편집자.

***11월2일 - 이라크 첫날의 기록: 저항의 날, 바그다드에서**

지난 밤 12시에 암만을 출발했다. 일행은 모두 6명, GMC라 부르는 승합차 한 대와 승용차 한 대를 2백30불에 빌려 사막을 달렸다.

며칠 동안 뉴스를 통해 접한 이라크 소식은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라마단(금식) 첫 날(10월26일)의 적십자사 앞 폭탄테러, 한국대사관과 한국인에 대한 위협, 유엔 직원의 철수.. 그리고 결정적으로 미국 정부가 종전 선언을 한 지 6개월이 되는 11월1일을 기해 총궐기를 선포한 것이었다.

예정대로 1일 밤에 출발을 해야할지, 며칠 기다려 주말을 암만(요르단)에서 보낸 뒤 상황을 보고 바그다드로 들어가야 할지 어려운 판단을 해야 했다. 가능한 대로 정보를 모으고 회의를 통해 예정대로 출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어차피 기다리면 한도 끝도 없고 오히려 틈새를 잘 이용하여 가급적 안전한 장소를 골라 움직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었다.

사진 1. <새벽의 이라크 국경>

자정에 출발한 차는 새벽 4시30분 이라크 국경에 도착했다. 통행세를 내고 비자를 받아 국경을 넘었다. 전쟁 중에는 몇 시간씩 기다려야 했던 통관절차가 의외로 신속하게 처리되었다. 사소한 실랑이도 있었다. 통관 직원들이 운전기사를 통해 약간의 돈을 요구해서, 쫓아가서 물어보니 피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초행이 아니며 규정을 잘 알고 있다", "책임자를 부르라"고 항의하자 그제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보내주었다.

***일상으로 전쟁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는 바그다드**

바그다드로 오는 길. 전쟁기간중 목격해야 했던 도로 위에 널부러져 있던 폭격 맞은 차들, 불타버린 버스들, 뒹굴던 돌덩이들, 총성들, 불타오르던 방화의 검은 연기, 엿가락처럼 휘어진 고가도로들... 외형상 모든 전쟁과 폭격의 흔적들이 깨끗이 치워진 이 거리가 도리어 생경하다.

작은 시장에선 닭을 팔고, 가난한 소년들은 다시 버스의 안내원으로 일하고 밝게 소리치고 있다. 차 한 대 찾아보기 어렵던 거리는 이제 차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언제 전쟁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은 전쟁의 흔적들을 일상으로 고스란히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그다드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가 묵기로 한 교민 박상화씨 댁에 도착하니 한국대사관에서 20년이 넘도록 일하고 있는 박상화씨의 아내 움단도, 그의 아들 단도 모두 집에 있었다. "오늘이 휴일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며칠 전부터 나돌기 시작한 '저항의 날' 전단 때문에 11월 1일과 2일 두 사람 모두 학교도 직장도 가지 못한 채 집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을 위해 호텔을 예약해 주기 위해 함무라 호텔에 갔던 박상화씨는 예약을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고 한다.

"함무라 호텔에 며칠 전 경고장이 날아왔어요. 곧 그곳을 공격할 터이니 모두 피하라고. 지난 10월 내내 그러한 경고가 있은 며칠 후 어김없이 테러가 일어났지 않습니까? 경고를 받은 며칠 후 터키 대사관이 차살차량 테러로 공격 당했고, 알마시뗄의 작은 학교 하나도 폭탄공격을 당해 초등학교 아이 40명이 죽었어요. 저항의 날이든 테러의 경고장이든 그것이 날아들면 누군가가 죽게 돼 있어요."

***저항의 날, 저항의 풍경들**

함무라 호텔엔 지금 미국의 NBC며 각종 외신들이 묵고 있고 프랑스며 미국 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미국과 함께 일하며 머물고 있다.

도심 한 가운데의 함무라 호텔에 날아든 경고장으로 호텔에 묶던 모든 사람들이 대피를 하고, 함무라 호텔 바로 옆에 있던 한국 대사관에서 일하던 한국 직원들 및 현지 직원들 모두 테러 위험 때문에 이틀간 휴무를 한 것이다. 더욱이 시월 말 한국 대사관 직원 1명이 납치를 당해 직접 경고를 받았던 사건을 생각하면 그리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게릴라들은 이미 어떤 다국적군이든 미군을 도와 이라크로 들어오는 이들은 물론 그들과 협력하는 어떤 이라크 인들도 미군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공격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공언하는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준 수하드 아주머니의 견해는 달랐다.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묻는 우리 질문에 언성을 높이며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난 미디어를 싫어하게 되었단 말이야. 모든 문제는 그들이 만든다구. '저항의 날'이라고 떠들어댔지만 도대체 누가 무슨 일을 벌였단 말이지? 어제는 다들 두려워서 학교도 가지 않고 거리에도 나가지 않았었는데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구. 거리는 보시다시피 안전해."

고단한 전쟁속에서도 흔들림없이 하루하루 삶을 관철해나가는 민초의 강인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은 미국 의도대로 군대 보내선 안돼"**

사진 2.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인권센터 활동가들>

짐을 풀자마자 수하드 씨와 함께 찾아간 곳은 이라크 인권활동센터(Human Activity in Iraq). 후세인의 아들 우다이의 집을 사무실로 쓰고 있는 이 단체는 1994년 국외에서 설립되었다가 다시 국내로 들어와 반인권사례 조사활동, 인권옹호운동을 펼치고 있다.

회원은 30여 명이며 주로 변호사와 교수들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중 그리고 전후 미군범죄에 대해 실증적으로 조사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여 법적 대응을 모색하고 있다. 그 밖에 다른 NGO들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사진 3. <미군들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모아놓은 자료>

이 단체의 회원이자 정치학 박사인 쉐이크 나아마 알 아바디는 미국의 통치와 한국군 파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미국은 이라크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이라크를 통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고 둘째는 다른 나라에 군대를 요청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라크 시민사회를 약화시켜 계속해서 의존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우리의 전통이나 종교, 문화에 따라 다시 시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한국군을 비롯한 외국 군대의 파병문제를 자생성과 독립성을 해치려는 미국의 의도로 파악하고 있는 그는 한국 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한국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면 미국의 의도대로 군대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극복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낸 한국의 역사적 경험을 나누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사진 4. <"미국이 원하는 것은 이라크가 계속 의존적인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하는 쉐이크 나아마 알 아바디>

***저항의 날이 저무는 바그다드의 저녁**

저녁에는 라아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바그다드 시내를 둘러보았다. 간혹 차를 세우고 검문을 하는 경찰도 눈에 띄었다.

거리의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셨다. 전기가 하루에도 몇 번씩 중단되어 상점들은 자가 발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조금 잘 사는 가정에서도 이런 자가 발전기를 사용한다.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 않은 라아드에게 묻는다.

"살 만 한가요?"
"별로. 요즘 같아서는 다른 나라로 가고 싶어요."

사진5. <티그리스 강 건너편 전 대통령궁이었던 자리에 점령의 상정처럼 미군은 그들의 본부를 만들었다. 일반인들은 그 방향을 향해 사진조차 맘대로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사담이 간 자리를 그들이 고스란히 대신하고 있다.>

일상은 언제나처럼 펼쳐지고 있다. 언론에서의 호들갑처럼 거리 곳곳에서 활극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어김없이 사건이 터진다. 오늘도 공항에서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비행기가 추락해서 16명이 죽고 20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사건을 저녁뉴스를 통해 전해들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불안감과 미래를 알 수 없는 암울함이 일상의 저편에 드리워 있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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