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바그다드 교외 아부 그리브 지역에서 미군의 차량이 이라크 어린아이를 치어 숨지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양측간 총격전이 발생했고, 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미군의 무차별 총격은 또다른 소년의 생명을 앗아갔다. 총격전을 피해 숨어있던 오마르(16세)군은 미군의 총에 이마를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 11월 4일, 이라크 현지 조사 중인 임영신, 김박태식씨가 오마르의 아버지를 찾았다. 편집자
<사진1> 오마르 아버지.
***“저항은 우리의 권리다”**
“우리가 초대한 친구로서 손님으로서 온다면 언제든 한국인을 환영한다. 그러나 미군을 돕는 군대로 온다면 우리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기사를 들고 바그다드에서 조금 떨어진 아부 그레이브를 찾아갔다. 미군에 의한 한 아이의 죽음,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시장에서의 봉기, 그리고 부상당한 17명의 사람들... 그러나 기사의 메인 타이틀은 다만 '미군 또 죽어, 바그다드 시장에서 자연 봉기 일어나기도'였다.
바그다드 교외 아부 그리브 지역에서 가두 상점 진열대를 철거하려던 미군 차량이 어린아이를 치어 숨지게 하자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즉각 궐기, 양측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이라크 경찰관 1명과 시위대 3명이 숨지고 미군 2명과 이라크인 17명이 부상당했다. (10월31일자. AP/연합)"
<사진4> 사건 현장.
인구 50만의 아브 그레이브는 꽤 넓었다. 그러나 단 몇 번의 질문으로도 우리는 희생당한 아이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아이의 집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찾아와 가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함께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 방에는 그날의 시위와 미군의 진압으로 가게를 송두리째 잃은 이웃, 아이와 함께 있다가 손에 총을 맞은 아이의 삼촌, 다리에 총을 맞아 목발을 짚고 다니는 아이의 할아버지, 그리고 31일 미군이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발사한 총격에 숨진 오마르(16세)의 아버지 하비프(42)가 앉아 있었다. 오마르의 아버지에게 물었다. 그 날의 사건에 대해, 그리고 그 날 이후 아들을 잃은 그들의 삶에 대해....
<사진3> 오마르 삼촌.
하비프 : 금요일 낮, 갑자기 미국 탱크와 군인들이 시장을 밀고 들어오며 야채들을 짓밟고 상점문을 닫으라고 외치며 사람들에게 소리치고 때리기 시작했다. 누가 그런 모욕적인 사건 속에서 가만히 있겠는가. 미군의 거센 철거작업에 화가 난 상인들은 바닥에서 돌을 주워 던지며 저항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저항으로 미군의 진압이 더욱 거세지자 우리 가게로 7명의 사람들이 뛰어들어왔다. 우리는 그들을 숨겨주었고 거기엔 동생과 아들 오마르도 함께 있었다.
그 때 사람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미군은 무차별 발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격으로 숨어있던 오마르가 이마 한 가운데 총을 맞았다. 그리고 여의사를 포함 몇 사람이 죽고 여러 사람이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사람들은 모스크로 숨어들기도 했고 마침 금요일 예배를 드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 사건을 알고 예배 후 모스크에서 나와 미군에게 소리치며 사격을 그만두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그들을 향해서도 총을 쏘았다. 그들 역시 땅바닥에서 돌을 주워들고 미군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결국 4명의 이라크 인이 죽고 20명이 부상당했다.
<사진 5> 사건 현장.
문 : 애초에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하비프 : 미군은 그런 식으로 시장을 돌아다닌다. 사람들을 밀치고 나쁜 말을 하기 일쑤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부들이다. 미군은 우리들을 장물아비나 폭도쯤으로 여긴다. 미군은 우리들의 존엄성을 짓밟고 언제나 먼저 폭력을 행사한다.
문 : 사고에 대해 보상이나 사과는 받았는가?
하비프 : 사고나 보상은 커녕 그들은 장례식조차 금지했다. 시신을 들고 모스크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총과 탱크로 저지하며 어떤 장례도 하지 말고 곧장 공동묘지로 가서 시신을 묻으라고 했다. 그리고 사고 직후 미군은 작은 전단과 방송을 통해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어제 시장에서 저항세력과 범죄자들에 의한 폭력시위가 있었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자는 죽음에 직면할 것이다.”
<사진 7> 전단지
부상자들에 대해 그들은 그들의 병원에서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이미 그날의 시위가 시민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범죄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한 이상 치료를 받기 위해 찾아가면 치료 후 그들은 체포될 것이다. 누가 미군에게 치료를 받고 보상을 받으러 찾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보상을 요구하기는커녕 손에 총을 맞은 동생을 피신시켰다.
평소에도 미군은 주민들을 폭도로 몰아 무조건 검거하고 있다 그날 사건 이후에도 이 지역에서 이유없이 검거를 당한 주민들이 30여 명에 이른다. 새벽 3시에 집으로 들어와 검거를 해 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사진 2> 오마르
문 : 오마르의 죽음과 관련해 항의를 하거나 보상을 요구할 계획은 있는가
하비프 :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위해 어떤 시위나 정치적 행동을 만들어 낸다면 미군은 다시 더욱 거세게 발포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피해자가 아니라 저항세력이며 범죄자라고 선포했다. 만약 우리가 거리에 나가 오마르를 위해 부상자들을 위해 시위를 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폭도라며 발포를 할 것이다. 그들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다. 우리는 지금 그들을 향해 힘으로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이 죽음을, 이 치욕을 기억할 것이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셰흐(씨족장)와 논의를 하여 끝까지 대응을 할 것이다.
문 : 11월 1일부터 ‘저항의 날’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건과 연관이 있는가?
하비프 : 사고가 난 것은 그 전날이었다. 11월 1일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시장에서는 무장세력의 저항이 일어나지 않는다. 주로 시위나 저항은 큰 광장이나 도로변에서 일어난다. 시장에서의 사건은 미군의 무차별한 상점철거에 대한 시민들의 반발이었던 것이다.
문 : 그렇다면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저항’의 사건들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가
하비프 : 저항은 우리의 권리다. 미국은 점령자이고 우리는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물론 저항은 하되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는다. 무슬림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공격의 대상은 오로지 침략자인 미국이다.
우리는 이라키(이라크 민중)들에 의한 통치를 원한다. 수니파든 시아파든 쿠르드족이든 기독교도든 상관없다. 그러나 외국에 의한 통치나 간섭은 원치 않는다.
최근 적십자에 대한 공격이 있었는데 이라크 사람들이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우리들은 적십자가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한 테러는 아마도 사담의 군대가 했을 것이다.
문 : 한국군 파병에 대해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하비프 :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방어하고 지킬 수 있다. 지금 있는 미군도 나가야 하는데 다른 외국군대가 왜 들어오려 하는가. 우리가 초대한 친구로서 손님으로서 온다면 언제든지 환영한다. 그러나 군대로는 올 필요가 없다. 우리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사진 6> 총격당한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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