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일간 현지 조사가 끝난 무렵 다시 찾은 바그다드. 교통체증,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신문과 집집마다 달린 위성안테나...전쟁 후 바그다드의 달라진 모습들이다. 이라크인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준다고 믿는, 이라크 최대 일간지이자 정론지인 <아자만>의 편집장을 만나 전후 이라크인들의 일상과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군 파병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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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후 4만 5천대 가량이 한꺼번에 늘어난 이라크의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숨을 쉴 수가 없다. 기름 값이 1리터당 30원 정도인데다가, 전쟁 직후 지금까지 국경이 열려있어 세금 없이 차를 들여올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2년간 경제재제로 묶여 있던 차에 대한 욕망이 이토록 거리를 꽉 메우며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도 요르단의 아카바 항에는 3만대의 차가 이라크로 오기 위해 쌓여있다고 한다. 교통체증은 전후 이라크 상황처럼 누구의 통제도 조정도 없는 사회상황 속에서 계속 더 크고 깊어질 듯 하다.
교통체증으로 차가 정체되어 있으면 꼭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한쪽은 구걸을 하는 여자와 아이들, 그리고 한 쪽은 과일을 파는 잡상인과 신문을 파는 사람들이다. 한쪽 팔 가득히 수십 종류의 신문을 들고 서 있는 그에게 몇 가지 신문을 산다. 사담의 얼굴이 전면에 있는 신문부터 가수들의 얼굴까지.. 그에게 묻는다. 지금 이라크엔 몇 개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느냐고, 통역을 해주는 라이드도 그도 웃는다. 지금 이라크엔 1백80개가 넘는 신문이 발행되고 있고 지금 이 숫자를 이야기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아마 하나의 신문이 더 생겨나고 있을 것이라고....
전쟁 전과 전쟁 후 이라크의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언론의 자유일 것이다. 거리에서는 수십종의 신문들이 팔리고 있고 도심의 전자상가들에는 위성안테나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웬만한 집들은 이미 위성안테나와 수신기를 갖추고 있다. 아직 이라크 방송국은 복구되지 않았지만 TV를 켜면 아랍어 방송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집트, 사우디, 쿠웨이트, 레바논 등에서 만들어진 드라마, 알자지라 등 중동지역 아랍어 방송을 맘껏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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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전 위성을 보다가 발각되면 최소 6개월을 감옥에 가야 했던 이 사회에서 그 금지된 것을 즐기는 맛이 그리 작지 않다. 또 어느 거리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인터넷 카페 역시 전쟁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일 것이다. 3월까지도 정부가 사이트를 제한해 두고 있고 팔레스타인이나 쉐라톤 같은 호텔의 인터넷 센터에서도 이메일을 보내는 것 정도 외에는 허용되지 않던 인터넷이 지금은 그 바다를 맘껏 누리도록 열렸다.
그러나 다른 것들이 외부의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계적 허용이라면 신문의 경우는 조금 그 색깔이 다르다. 일간, 주간, 격주간, 각 정당이 발행하는 신문을 다 합한 것이라 해도, 전쟁 전 정부가 발행하는 신문 외에는 어떤 정보도 접할 수 없었던 이들이 겨우 7개월만에 2백 개에 달하는 신문을 만들어 주체적으로 다양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에도 주요한 두 개의 데일리 영자신문이 따로 발행되고 있다. 이라크 투데이와 바그다드 나우. 이라크 투데이는 일반언론처럼 보이지만 발행처를 자세히 살펴보면 CPA의 지원을 받아 발행되는 관변신문, 그리고 바드다드 나우(Baghdad Now)는 연합군에 의해 만들어 질 뿐 아니라 매일 아침 군인들에 무료 살포되고 있는 명확한 군홍보물이다. 그러나 두 가지 신문 모두 얼핏 보면 그저 평범한 하나의 신문일 것이다.
이토록 다양한 신문들이 쏟아져 나오는 바그다드의 아침, 한국대사관에 근무하는 움단은 매일 네 개의 이라크 신문을 영어로 번역해 스크랩한다. 그녀가 선택한 이라크 내 주요 신문은 4개의 데일리다. Azzaman, Al-Taakhi Al-Ittihad, Al-Baghd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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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1일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신문번역을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심지어 9월, 10월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도표로 만들어 통계를 내기도 했다. 대사관의 업무가 아니라 이라크 사람으로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죽어가는 자의 퉁계를 만들어 보고 싶었을 뿐이라고 한다. 그녀에게 이 수많은 신문 중 어떤 신문이 이라크 사람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녀는 서슴없이 한 개의 신문을 가리킨다. 아자만(Azzaman). 이라크 내에 현재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제1의 언론이라 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 유심히 살피니 방문하는 주요한 사무실들에서, 또 거리에서 사람들이 아자만 신문을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현재 자유는 우리의 성취물이 아니라 불안정의 결과"**
아자만의 편집장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카라데 거리 한 주택을 통째 빌려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아자만 신문사에 찾아갔다. 그러나 "편집장은 긴급한 일로 오늘 아침 영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대신 바그다드판 책임 편집국장인 모하메드씨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아자만은 현재 바그다드 뿐 아니라 영국, 바레인, 바그다드, 바스라 4곳에서 동시에 발행되고 있는 이라크내 최대의 일간지다.
모하메드씨는 1백여개가 넘는 신문이 발행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지금의 이라크에 언론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비유로 답한다.
“맞아요. 지금 이라크엔 거의 하루에 한 개씩 정당과 신문이 생겨나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일컬어 언론의 자유라고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자유란 마치 온 몸에 35년된 중병을 가진 대 수술과 긴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단 한번의 수술을 받고 병실을 뛰쳐나와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그런 자유예요. 자유로워보이지만 너무나 위태로운...자유의 모양은 있지만 자유의 힘은 없는...”
잠시 후 그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것을 자유라고 부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자유가 우리의 성취물이 아니라 불안정의 결과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아자만이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4월부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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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은 그쳤지만 종전선언이 있기 전이었던 4월, 전기도 교통도 통신도 마비되어 있던 그때 우리는 신문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지금의 이라크엔 약이나 식량보다 이라크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아낼 이라크의 신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때나 지금이나 이라크 내에 전력사정이 워낙 불안하고 기계들을 다 들여오지 못하기 때문에 기사를 영국으로 송고하고 영국에서 전자재판을 한 후 다시 그것을 받아 이곳에서 인쇄를 하는 형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바그다드 사무실에만 40여명의 기자와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던 4월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급속도로 아자만을 키워온 것은 영국 아자만 본부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1992년까지 이라크 방송과 라디오, 주요신문등의 책임자를 거쳤던 이라크 언론인 사드 아바자즈(Saad Albazzaz, 53세)가 언론의 자유를 찾아 1992년 영국으로 망영한 후 1997년 4월 10일부터 발행하기 시작했던 아자만 뉴스가 지금은 잡지, 사진, 기사, 신문 등을 발행하는 언론기업이 된 것이다. 그들은 97년부터 축적한 그 노하우와 시스템을 가지고 기술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라크 아자만을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아자만은 어떤 정부나 기업이 도움없이 독립적으로 발행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의 감시도 지원도 받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립 가능한 기반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낼 자유를 스스로 담보하고 있는 것입니다. 재원은 광고, 신문판매수익, 출판 등 다른 매체로부터 오고 있고 이라크 아자만으로서가 아니라 전체 아자만의 운영 속에서 이라크 아자만의 경제적 정치적 독립성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이 사회적 공간 속에서 담보된다 하더라고 경제적 종속 혹은 정치적 종속 속에서 빼앗길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라크 내 대부분의 신문들은 바그다드 외에는 사무실이 없고 바그다드 지역에 한정된 취재의 폭을 가지고 있지만 아자만은 바스라판을 별도로 발행하고 있고 또 전국에 취재기자를 상주시키고 있어 전 이라크 뉴스를 커버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절반 밖에 못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전역에 취재기자들이 상주하고 있지만 어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취재원 자체가 미군의 통제에 의해 차단됩니다. 그것을 취재할 수 있는 것은 CNN이나 BBC같은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그들의 목소리를 내 줄 언론들입니다. 우리가 진실을 보도하려 하면 할수록 취재원에서 차단되는 웃지 못할 결과가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사건과 사고들에 대한 정확한 보도, 그리고 사건과 사고 이면에 이라크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보도를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라크는 이미 한국 파병에 관해 충분히 얘기하고 있어"**
아자만에 관한 물음을 정리하고 최근의 저항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을 던졌다.
“우리는 진실과 사건 사이에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채널을 듣기 위해 열어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라크의 모든 사람들 안에 저항이 담겨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모든 이라크 사람들이 그 저항을 두려움없이 자신의 목소리로 내길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 사건들은 저항의 신호이지만 아직은 이라크의 진실한 저항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라크 사람들 역시 이 사건들로 인해 두려워떨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저항이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지 않아요 다만 최선을 다해 현장을 찾아가고 사실을 보여줍니다. 만약 지금 이라크 내에서 어떤 신문 정당이나 단체가 만든 것이라 하더라고 그들이 저항을 선동한다면 그들은 연합군의 법에 근거해 감옥에 가야합니다.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지켜보는 것, 사건과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진실에 다다르도록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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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에 관한 물음에 그는 답한다.
“그 역시 우리가 말하는 방법은 똑같습니다. 나시리아에서 이탈리아 군이 죽은 것, 하루에 한 건 이상씩 연합군이 죽어 가는 것, 이라크 사람들이 더 이상의 외국군대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 이라크는 이미 한국의 파병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합군은 이라크내에서 그들의 많은 실수들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 힘을 어떻게 다룰 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라크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무지가 그들로 하여금 수많은 실수를 저지르게 하고 이라크 사람들에게 깊은 반감을 갖게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군대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라크에 필요한 것은 군대와 총이 아니라 35년의 병을 씻고 일어설 치료와 회복의 시간들입니다. 우리 스스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유를 가눌 자유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시간을 얻기 위해 우리는 국제사회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희망 혹은 전망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지난 4월 바그다드 아자만은 1만부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그다드 아자만은 7만 5천부가 발행되고 있습니다. 밖에서 보기엔 참 작은 숫자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숫자는 기적입니다. 7만 5천의 기적, 그 혼란하고 힘겨웠던 7개월의 시간 동안, 아니 겨우 7개월 동안 이라크 사람들은 아자만을 자신들의 목소리라고 믿어준 결과니까요. 지금 우리의 목표는 1년이내에 25만부를 돌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절반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지금 가진 힘과 자유지만, 그 절반 속에 담긴 우리의 온전한 뜻과 노력, 희망은 거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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