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재전쟁 상황을 선포한 뒤 이라크 현지 안전상황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매일 아침 10시 미군은 전날 미군 희생자와 이라크인 범인 체포 현황을 발표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10여명의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1백여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을 무단 검거하는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고 이라크 현지 조사 중인 임영신, 김박태식씨가 전해왔다.
두 사람은 해방군으로 들어온 미군이 자행하고 있는 약탈, 납치, 살해 등 범죄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그 실상을 전해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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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후 구금돼 돌아오지 못한 이들만 4천여명"**
하루에도 몇 건씩의 사건과 사고들이 터져 나오는 바그다드, 드디어 최근의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사건 사고의 소식 이후 하루 이틀 정도가 지나면 미군이 그들이 체포한 바트당 잔당이나 전 사담의 세력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하기 시작한 것이다.
11월 12일 재 전쟁 상황을 선포하며 거리에서는 수십 발의 폭격소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고 아침마다 거리는 미군의 조사로 인해 이곳 저곳이 막혀 있다. 11월 1일 저항의 날과 함께 시작된 사건들이 증폭하며 미군의 범죄자에 대한 수색도 한층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매일 아침 10시 Conference Palace 에서는 미군 언론 담당자가 어제 하루 몇 명이 미군이 죽거나 다쳤는지, 혹은 몇 명의 범인이 잡혔는지에 대한 보도자료를 외신에 제공한다. 그러나 바그다드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그 사건들의 행간, 10여 명의 범죄자를 체포하기 위해 1백여 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을 영장도 없이 검거하고 있는 의도된 침묵 속의 폭력, 그들이 말하지 않는 점령의 그늘이었다.
지난 6월부터 미군 점령 이후의 미군 범죄에 대해 감시활동을 하고 있는 International Occupation Watch 의 사무국장 이만(53세, Iraqi)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5월 이후 이미 구금된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4천명에 이른다. 불법적인 구금과 억류 자체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군이 이라크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이 조사와 수색을 진행하며 엄청난 이라크인의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여자들을 외부인에게 보여주지 않는 이라크의 사회에서 그들은 한 밤중 들어와 옷도 스카프도 쓰지 않은 여자들을 수색하고 심지어 여자들마저 그 상태 그대로 체포해간다. 이라크의 여자들에게 그리고 남편들에게 이것은 강간만큼이나 큰 모욕인 것이다.”
***"새벽 1시 습격해 세 아들과 5천불 빼앗아 가기도"**
지난 10월 31일 친미 시장을 임명에 대한 팔루자 시청 습격 사건, 이틀 후인 11월 2일 미군은 팔루자의 한 주택가에서 한밤중 수색작전을 펼쳤다. 새벽 1시, 미군들이 들어와 집을 온통 난장판으로 만들고 그 집의 세 남자를 체포해 갔다는, 하물려 돈까지 약탈해 갔다는 팔루자의 한 가정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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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세 아들, 세 명의 며느리와 아이들이 함께 살고 있던 그 집에는 여자와 아이들만이 오롯이 남아 있었다. 얼굴을 펴지 못하는 어머니 대신 며느리중 한 명이 그날의 일을 증언하기 시작했다.
“밤 1시쯤이었어요. 갑자기 바깥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나더니 미군들이 30여 명이 현관유리를 깨고 집으로 들어왔어요. 대문에 작은 그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거실과 부엌의 유리들을 깨고 냉장고며 가구들을 부수더니 마침내 마당에 있던 차 유리까지 깨려고 했어요. 열쇠를 주겠다고 열고 수색하라고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어요.
안방까지 들어와 TV를 부수고 장롱 안에 있던 잠겨진 가방을 꺼내 그것을 총으로 억지로 열었어요. 그 안에는 그날 마침 차를 팔고 난 후 가지고 있던 5천불 정도의 현금이 있었어요.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온 쿠웨이트 통역에게 제발 그 돈은 가져가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 이야기를 듣자 그들은 우리를 보고 웃기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마침내 돈 뿐 아니라 우리 집의 모든 남자들을 데리고 떠나버렸어요. 왜 한 밤중 사람들을 데려가느냐고 어머니가 매달리며 물었지만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떠나버렸어요. 그리고 난 후 3일 동안 우리는 백방으로 식구들의 행방을 알아보고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사진 5> 샬람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한 이웃 샬람(45, 경영학 박사)씨는 설명을 덧붙인다.
“그날 들었다는 폭발음, 그리고 한쪽 대문이 완전히 날아간 대문 상태를 보면 아마 그날 소형 폭발물을 장착했던 것 같다. 그날 이 동네에서만 10명이 인근 지역에서 7명이 그렇게 한 밤중에 끌려갔다. 이 집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정당이나 어떤 정치적 조직과도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장남인 파룩 아비드(45)는 엔지니어였고 심지어 그 동생은 이라크 민간경찰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날 밤이 팔루자 시청 습격사건이 있던 다음날이라 아마 그들은 팔루자 지역의 테러범을 잡기 위해 그런 수색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추측일 뿐이디. 이 지역은 테러범과 상관없는 교사나 엔지니어, 시청 공무원 같은 사람들이 사는 집단 주거지다. 그런데도 미군은 영장은 커녕 이유조차 이야기하지 않은 채 이 집에서 삼형제를 체포해갔다.
물론 그들은 이 집에서 테러와 연관된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나흘이 지나도록 어디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연락조차 해 주질 않고 있다. 이라크에서 여자들끼리 집에 머문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는 일 이다. 그들이 체포된 후 남아있는 여자들은 망가진 채 열린 집에서 두려움에 떨며 기다리고 있다. 여자들 뿐인지라 어디에 찾아가 호소를 하지도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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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가 거의 끝날 무렵 들어온 그들의 사촌 알리 압둘라(32세, 가명)는 팔루자 미군부대에서 일한다고 했다. 때문에 그는 이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그날 밤 그는 그 폭발을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사촌 형들이 체포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했다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날 나와서 그들을 위해 묻거나 통역해 주지 못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오면 바로 미군에 의해 저격을 당한다. 사람들은 그 수색의 현장 근처에 수십명의 스나이퍼들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해서 어떤 비명소리가 난다고 해도 나와 볼 수도 도와줄 수도 없다. 다만 자기 집에 그 일이 닥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것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 사건이 있고 난 후 그는 그가 일하는 팔루자 인근의 부대에서 아는 장교를 통해 구금자 명단을 확인했고 해서 그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들은 조사중이라며 다만 기다리라고 했다. 하물며 돈에 관한 것은 묻지 조차 못했다고 하다.
그러나 만약 그처럼 미군내부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는 일반적인 이라크 사람들은 그들의 형제가 잡혀갈 경우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전 사담의 감옥이었던 아부그레이 감옥 앞에는 미군에 의해 체포된 가족들의 신원을 찾기 위해 사람들이 날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말없이 이곳 저곳 파괴된 곳을 보여주던 어머니는 이야기한다. “한 밤중이라 옷도 신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끌려갔어. 날은 점점 추워지는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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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살해한 민간인 시체도 되돌려주지 않아**
이만(Occupation Watch 사무국장)의 증언에 의하면 미군들이 범하고 있는 가장 큰 범죄 중 하나는 그들이 죽인 이라크 사람들의 시체를 돌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몇 개의 파일을 보여주며 말한다.
8월 11일 죽은 여성의 시체를 넣어둔 채 불태워 버린 미군에 의한 차량 방화사건, 8월 30일, 미군의 수색 중 총격으로 죽은 아들과 아버지의 시체를 아직도 찾지 못해 인권단체들에 신원하고 있는 한 가족의 케이스, 이만은 죽은 시체들을 찾기 위한 이라크 인의 요청을 무시하는 미군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라크 인은 모슬렘의 방식에 따라 죽은 자를 장사 지내고 가문의 묘에 묻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죽은 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연합군 본부로 쓰고 있는 대통령 궁 앞에서 만난 압둘 하지즈(53세)씨는 한 달째 그 아들의 시체를 찾고 있는 중이라 했다. 미군의 무차별 총격으로 그의 아들은 집 앞의 거리에서 즉사를 했다. 그러나 미군은 아들의 시체를 그들의 차에 싣고 그대로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도록 시체조차 돌려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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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통령 궁 앞에 있는 미군병원에 아들의 시체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군에 의한 모든 사상자 혹은 부상자들은 일반병원에 가지 못한 채 연합군에 속한 두 개의 병원 Airport Hospital, 그리고 대통령 궁 안 연합군 병원에서 다루어 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곳 모두 들어가기 위해서는 CPA로부터의 허가가 필요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평범한 이라크 사람들은 그 허가란 것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심지어 NGO활동가들도 그 허가를 받기 어려운 터였다. 그 허가를 받으려면 방송사나 신문사가 발급한 ID카드 혹은 공식 문서들이 필요하다.
“나는 보상을 원하는게 아니라고 여러 번 설명을 해도 그들은 믿질 않아요. 다만 아들의 시체를 찾아 내 손으로 가족의 무덤에 묻어주고 싶은 것 뿐이라고 제발 시체라도 돌려달라고... 한 달째 모든 미군부대와 병원을 찾아다니며 호소하고 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요. 왜 그들은 죽은 아이의 시체조차 돌려주지 않는 겁니까?”
한달째, 두달째, 석달째 죽은 가족의, 사랑하는 이들의 시체라도 찾기 위해 거리를 헤메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 혹은 한밤 중 잡혀간 가족들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 생사라도 확인하기 위해 연합군의 부대를, 감옥을 찾아다니고 있는 이라크 사람들.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 이후 그들의 일상은... 그들이 견뎌내야 피점령국 국민으로서의 수모는...해방의 그늘은 그토록 깊고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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