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신 재경부 차관이 지난 1월 "영화인 집단이기주의" 발언에 이어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 관계없이 스크린쿼터는 없어져야 한다는 발악적 발언을 내뱉었다. "영화소비의 선택권은 소비자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며 우리 사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에 관계없이 스크린쿼터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 논지다. 그의 논리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사회를 붕괴위험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는 무한경쟁의 구조에 대한 무조건적 옹호다.
***승자독식 구조의 카지노 경제…하다 안되면 공적자금 들이붓는 재경부**
좋다. 그의 주장대로 우리 영화의 경쟁력 높이기 위해서는 편당 평균 제작비가 800억 원이고, 세계영화시장 85%를 장악하는 미국 영화와 당당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재경부는 왜 부실 금융을 살린다며 IMF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 168조 원을 투입했는가.
같은 논리라면 부실 은행들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 소생하거나, 건실한 경영을 하는 외국은행에 의해 대체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실 은행들과 그들을 부실하게 만든 재벌들은 국민들의 피땀으로 만든 공적자금으로 살아나고, 재경부에 밉보인 영화는 자력갱생해야 하나?
***스크린쿼터 폐지한 나라 모두 자국 영화산업 붕괴돼**
그의 주장과는 반대로 미국의 협박에 못 이겨 스크린쿼터를 축소, 폐지했던 나라들(멕시코, 대만, 뉴질랜드 등)은 하나같이 자국 영화산업의 붕괴를 맛보았다. 98년에도 스크린쿼터는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제도이니 폐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재경부는 들이댔다. 그러나 스크린쿼터가 잘 지켜져 온 바로 그 때부터 한국영화는 탄력을 받아 고도의 양적, 질적 성장을 이룬다. 재경부의 논리는 더 이상의 논의조차 필요 없는 허구임이 입증된 셈이다.
정부의 논리 그대로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어버린 이 사회에서 수혜자는 과연 누구인가? 은행 빚으로 덩치를 키워온 재벌들이 중소기업들을 삼켜버리며 압축성장해 온 한국 사회가 그 기형적 성장의 대가로 맞이한 것이 IMF 대란이 아니었던가? IMF 대란 이후, 정부는 또 무엇을 했는가. 신자유주의 논리 그대로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정규직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며, 중산층들이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도록 했고, 소비촉진을 위해 신용카드 남발을 묵인해서 신용불량자를 양산했던 이 일련의 국가적불행이 결국은 시장주의자들의 논리 속에서 착착 진행되어 온 일들 아닌가?
***우리나라 재경부만 모르고 전세계가 다 아는 문화다양성 협약**
왜 미국과 이스라엘을 제외한 전 세계 147개 국이 문화다양성의 논리에 미국의 온갖 협박과 회유에도 불구하고 찬성의 표를 던졌는가? 이는 자본의 힘에 이끌려 온 자본을 위한 잔치였던 현재의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삶, 독점과 소유가 아닌 교류와 공유에 기반한 삶, 소수자의 문화가 차별받지 않는 삶의 질서를 창출하고 이러한 대안적인 삶의 질서를 모두가 갈망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빈부격차 세계 제1위를 달리는 미국식의 삶을 이젠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우리의 대안도 운명도 아닌 것이다.
***영화인들은 고마운 줄 모른다고? 재경부는 그들의 무지를 모른다**
권 차관은 정부에서 700억 원을 들여 남양주 영화종합촬영소를 지원해준 것이 마치 영화인들에게 선물로 준 시혜성 행정이었다고 착각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문화산업이 21세기 성장산업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투자 차원에서 마련한 기반시설이고, 한국 영화는 정부의 이 같은 기대를 뛰어 넘는 성장으로 보답했다.
한류를 통한 경제효과가 4조5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국산업정책연구원이 밝힌 바 있다. 문화상품이 가져다주는 효과는 단순히 수치로 드러나는 경제 효과뿐 아니라, 국가 전체의 브랜드 이미지의 상승으로 이어져, 상상을 초월하는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는 일이다. 영화에게 스크린쿼터가 있었다면 방송에는 방송쿼터가 있었고, 이들은 공히 우리나라 방송 영화산업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어 왔다. 정부는 미국영화 한 편의 제작비에 해당되는 돈을 지원해서 촬영소를 지어준 것으로 생색을 낼 형편이 아니다.
권 차관은 또 문화 분야에는 국악이나 연극 등 다른 분야도 많다는 지적을 했다. 물론이다. 정부는 문화산업 분야에 치우친 지원에서 벗어나 당연히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권 차관의 시장경쟁 논리를 따르자면 국악이나 연극은 이 사회에서 도태되어 버린다. 이러한 분야는 시장경제 구조 속에서는, 존재조차 할 수 없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가능케 하는 것은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문화의 정신적,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정과 사회의 다원적 가치를 가능케 하는 다양성의 논리일 뿐이다.
***더 이상 미국의 하수인을 자처하지 말라**
자본의 자유만이 무한대로 존중되는 신자유주의 질서에서 유일한 최종 승자는 미국일 뿐이다. 양극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러한 미국식 경제 질서에 종속되어 있는 거의 모든 나라들이 공동으로 겪는 불행이다. 경제 관료들에 의해 점점 더 가속화 되는 미국 경제 예속현상을 겪고 있는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체감하는 것 보다 심각하다. 심지어는 미국 언론도 '사회적 시한폭탄'이라는 특집기사(2006.1.23, 뉴스위크)를 통해 "한국의 사회안전망은 갈수록 늘어나는 빈민층을 지원할 만큼 강력하지 못하다"라면서 "한국의 양극화 문제는 한국사회 전체를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시한폭탄'이다"라고 진단하고 있다.
스크린쿼터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질서에 버티며 저항해 왔던 우리사회의 거의 유일한 대안이었고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에 휘말리지 않고 자립적인 노선을 유지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전세계에 웅변해 준 문화적 쾌거다. 우리는 재경부에 반대로 경고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스크린쿼터는 축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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